written by 장미
나는 올해 처음으로 정신과를 가보았다. 약 10년을 이름 모를 병과 함께 살아가다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했던 선택이었다. 나는 그때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내 병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이 이름 모를 병이 나에게는 꽤 큰 공포로 다가오곤 했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나는 공황장애로 인한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킬 때를 포함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기면 그 이후에 당시의 상황과 내 상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 때문에 더욱이 그랬다.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기억을 잘 못 하면서도 병원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된, 병원 가기 직전의 공황 발작은 무엇 때문인지 나름 정확히 기억하는 편이다.
그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때였다. 나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당장 죽을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했고, 살려달라고 빌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약 1년 전의 일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친구들이 공황장애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해주었다. 원래 알고 있던 병이기도 했고, 나도 혹시 그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 번도 그게 맞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가 추천해준 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은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친절한 편이었다. 확실히 다른 환자들에 비해 빈도는 적지만 공황장애라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고, 너무 오래 묵은 병이어서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는 것을 추천받았다. 그래서 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아침 약, 자기 직전에 먹는 약. 이렇게 두 가지를 처방받았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약을 먹고 있다. 약을 처음 먹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약을 먹어도 우울했고,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마음이 불안해서 지금만큼이나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싫었다. 약을 먹어야 괜찮아지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나는 솔직히 약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큰 사람이었다. 내가 공황장애란 것을 모를 때, 숨이 막혀서 당장 죽을 것처럼 기침할 때면 나는 늘 기관지 약, 혹은 기침약을 챙겨 먹었다.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아본다는 생각 이전에 당장 내 기침이 문제니까 그 약이 나에게 맞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병원에 대한 믿음도, 약에 대한 믿음도 나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괜찮아지려면 먹어야지,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병을 알고 있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극성으로 약을 챙겨서 따라 먹었을 뿐이었다. 약을 먹지 않았다고 혼나거나,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 의지로 약을 잘 챙겨 먹기 시작한 것은 병원에 다니고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던 것 같다. 나는 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약에 대한 것은 더 모르지만, 의사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약을 먹는다고 공황장애가 낫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약을 더 잘 먹기 시작한 것은 그 외에 다른 상황들이 더욱더 괜찮아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약을 좀 오래 먹었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나는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게으르지 않게 잘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고, 목표한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게 기꺼워서 약을 잘 챙겨 먹은 것 같았다. 친구들과 아침 운동을 나가는 내가, 이전보다 더 잘 움직이는 내가,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를 더 살아간 내가 장해서 그 맛으로 약을 챙겨 먹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했다.
그런 상황이 다시 뒤집힌 것은 그러한 약의 수명이 다했을 때부터였다. 주변의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하니 약의 수명은 끝이 나버렸다. 약을 늘 그랬던 것처럼 꾸준하게 챙겨 먹었지만, 그전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움직임이 다시 굳어져 버리기 시작했고, 목표는 다시 미루는 일이 되었다. 쉬이 불안해져서 숨이 턱턱 막히고, 발작에 대한 두려움도 다시 커졌다. 병원에 가서 즐겁게 떠들던 내가 다시 속상한 일만 잔뜩 내뱉고 약을 늘려오기만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기간은 꽤 길게 유지되었다. 공황장애 하나로도 버거웠던 상황에서 성인 ADHD 판정을 받아서 새로 약을 더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병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나는 너무 우울했는지 그때 내가 남겨놓은 메모들은 모두 하나같이 어둡기만 하다.
그때 떠올랐던 것 중 하나가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도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말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꽤 오래전부터 그 이야기를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는 직접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먹기 전까지는 그 말이 정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공황장애약을 먹는 게 감기약을 먹는 일처럼 금방 끝이 날 줄 알았다. 근데 그렇지 않았다. 약을 먹는 시간은 한 달, 한 달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 1년을 바라보고 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1년을 넘긴 후에 더 안 먹는 것도 아니다. 병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직 낫기엔 한참 멀었다는 것은 안다. 심지어 모르던 병까지 늘었으니 아마 더욱 긴 시간을 약과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상태가 나빠서인지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와도 같다는 말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다. 감기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기생하면서 사람을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우울증이, 그러니까 마음의 병이 사람들의 생각보다 감기만큼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이란 의미로 그렇게 비유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감기처럼 금방 털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를 굉장히 농락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쁜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그 생각들이 차근차근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불안을 덜기 위해서, 발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먹는 약인데 약을 먹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꼭 내가 실패작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괜찮아지는 거라면 병원에 갈 때마다 약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나는 약이 자꾸 늘어나서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 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신을 굳건하게 붙잡을 수 없었다. 다시 약을 먹기 싫었고, 당장의 상황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왜 계속 나빠지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가 점점 괜찮아져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라고 설명하시면서 나를 달랬다. 솔직히 그때는 그거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졌다기에는 그 당시의 나는 상태가 너무 나빴다.
한창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하루하루를 겨우 넘길 때 쓴 메모에는 그런 말이 있다. 나는 정신과에서 약을 먹고 있지만, 그것이 크게 많은 양이 아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약을 모두 털어 넣어도 미디어에 나온 것처럼 죽지 못할 거란 이야기이다. 당장 발작이 오면 아무나 붙잡고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약을 먹어 오고 있으면서 그렇게 원할 때 마음대로 죽지 못하는 게 그때의 나에게는 꽤 억울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울하고 나쁜 생각을 해서 푹 가라앉을 때면 약도 제대로 먹지 않고 그냥 괜찮아질 때까지 버텼다. 밤을 꼬박 새울 때도 있었고, 종일 아무것도 안 하기도 했다. 없는 돈을 충동적으로 아무 데나 쓰고 혼자 괴로워한 날도 많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요즈음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푹 가라앉았던 기분을 어떻게든 조금씩 끌어올리니 약을 먹는 게 몹시 나쁜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약을 잘 챙겨 먹고, 일찍 잠이 들고, 아침에 가뿐히 눈을 뜨면 그것만으로도 약을 먹는 이유가 충족된다. 괜찮아지는 나에게, 긍정적이기 시작하는 나에게 온갖 짐을 얹고 더 많은 것을 바라던 상반기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하루를 우울해하지 않고 행복하게 보낸 나를 칭찬한다. 약을 먹는 게 나쁜 것이고, 나는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고,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지난날들을 다 내려놓고 하루를 조금 더 밝게 보내고, 어제보다 좀 더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나를 좀 더 살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을 무조건 챙겨 먹어야 해. 약을 못 먹으면 내일은 힘들 거야. 약을 먹어야, 약을 안 먹으면, 약을, 약을…. 나를 괴롭히면서까지 꼭 약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집착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오늘 약을 먹는 것을 놓치면 내일 더 잘 챙겨 먹으면 되는 것이고, 그날 우울하면 다른 날보다 조금 힘든 날이었을 뿐이다. 약이 잘못한 게 아니라.
약이 나의 기분을 모두 지배하고 있어서 그게 나를 잘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더니 긍정적이고 활동적이었던 올해 초반의 나보다 훨씬 건강한 생각을 한다. 약을 못 먹은 날은 실패한 날이 아니고, 약을 먹어도 우울한 날도 그럴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아직도 나쁜 소비 습관을 고치지 못했지만, 그것 또한 괜찮아질 거라 믿고 있고, 예전만큼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언제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까지 미뤄지더라도 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직접 몸을 움직이고 한 발짝이라도 내디딘다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들 눈에는 아직 게으르고, 아픈 사람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하루를 조금 더 잘 살아낸 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작년보다 나는 나를 스스로 더 아끼고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 가끔 의사 선생님이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꾸짖을까 봐 걱정되는 날이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해서라도 하루를 더 잘 보내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다. 당장 희망을 다 꺾어버리고 쓰러져있다면 나는 일어날 수조차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혹시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사람 중에 나처럼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마음을 조금씩 내려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약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병에 관한 생각을 조금 멀리하는 것이 아픈 나에게 조금 더 이롭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조금씩 괜찮아지는 중이니까. 아마도 계속 더욱 괜찮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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