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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Jan 10. 2021

혼자여서 좋고, 혼자여서 싫다

혼자보다는 둘

생각보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훨씬 좋았다. 내가 하고 싶고 원하는 대로 일정을 짜고, 배가 고플 땐 내 입맛대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으며, 길을 잃었을 땐 미안해하며 눈치 볼 상대방도 없었다. 여행하다가 피곤해지면 일정을 바꿔 일찍 숙소로 돌아갔고, 하루 종일 원하는 쇼핑을 하며 마음껏 시간도 보냈다. ‘왜 이제야 혼자 여행을 왔을까.’라고 생각했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여행을 한 지 3주 차쯤 되었을 때 파리에서 체코 프라하로 넘어왔다. 프라하의 풍경은 정말 완벽했다. 디즈니 성을 닮은 뾰족한 성들 주변으로 크리스마스 마켓들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앞으로 하얀 백마가 마차에 사람을 태운 채 지나다녔다. 현실 속 동화가 있다면 틀림없이 여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라하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펍을 찾아갔다. 가게의 크기는 엄청 넓었고,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가게는 체코의 대표 음식인 꼴레뇨(한국으로 따지면 족발)와 필스너 맥주가 제일 유명했다. 잠시 후 내가 주문한 세트 음식이 나왔고, 양으로 따지면 2인분의 양이었다. 혼자서 먹기 과분한 양은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다 남기게 되었다. 남겨진 음식을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외로움이 사무쳤다. 문득 ‘누군가와 함께 있었으면 맛있게 다 먹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위기 좋은 펍에서 맛있는 안주와 맥주까지, 정말 완벽한 조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맛있지 않았다.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김지훈이 나온 적이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혼자서 예쁘게 트리를 꾸미고, 분위기 있게 집안을 세팅한 뒤 정성스럽게 구운 스테이크와 함께 와인을 따라 마셨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있다. “아, 너무 맛있는데 너무 맛이 없다.” 딱 이거였다. 그때 내가 프라하에서 느낀 감정은 이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오히려 지쳐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그런 유형이다. 그래서 여행도 혼자 떠났다. 여행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만 해도 마냥 좋았다. ‘역시 혼자 있을 때가 제격이야.’라며 앞으로 늙어서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타지에서 혼자인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차 알게 되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는 사실을.


혼자 하는 여행이 편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감은 반으로 줄어들었고, 줄어든 공간으로 외로움과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황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나는 점점 무덤덤해져 갔다.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친한 언니와 같이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가 있었다. 그 여행은 모두 내 취향으로 이루어진 일정은 아니었지만, 서로 양보하고 협의된 각자의 취향이 어우러진 일정이었다. 우린 노을 지는 선셋을 바라보며 같이 뭉클해했고, 시답잖은 이야기로 깔깔대며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같이 마셨던 맥주 한 잔은 정말 꿀 맛 같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라는 말처럼 같이 감정을 공유했던 것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가 SNS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것들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고 산다. 슬픔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우리의 삶은 두 배로 더 풍족하고 즐거워진다.

여행을 하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것도 혼자보단 둘이 낫다. 그게 혼자 여행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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