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유나 Jan 29. 2024

인터넷편지

이 언덕만 넘으면 중학교가 있다고 했다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철망 너머로

운동장도 보이고 체육관도 보이고

농구골대도 개수대도 있는데

이걸 다 보는 동안 철망이 끝나지 않았다

출입문이 어디지 교문이


후문도 있고 정문도 있지 않나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조금 움츠러들다

건물을 기준으로 사방을 돌았다

빈틈을 찾겠다고 귀퉁이에 서 보았다

빠져나갈 구멍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운동장에 사람이 서 있다

비도 안 오는데 다 젖은 채로

입김이 나는 이 날씨에


방금 종 쳤는데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으면

몇 번은 저런 사람을 생각해 본 적 있다

책상에 오른팔을 얹어 놓고

팔 위에 오른쪽 귀 대고


창밖에 재미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빨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호명된다

상체를 일으켜 펜을 쥔다

하루치 공부를 정해두는 학생이 아니었으나

나는 조용하고 착하게 생겨서

학교에선 미움받지 않았다

아닌가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있었다

편지 말미에 꼬박

행복하길 바라요 하고


그 사람 잘 모르는데

그 사람도 날 그냥 좀 알고

서로 얼굴은 모르고

같은 책을 읽었다


여기 왜 들어가려고 했더라

저기요

불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

이쪽을 본다

저쪽도 무어라 말하는데

목소리가 없어


저 사람

얼굴이 궁금한데

내가 갇힌 건지 당신이 갇힌 건지


주일이면 할머니는 성당으로 도망가고

나는 온종일 방 안에 갇혀 있어도

답장을 기다리느라 괜찮았다고 적었던가

보고 싶다고 적지 않았어도

그런 거 다 알았겠지


또 종 쳤는데

몇 계절이 여러 번 흐른 것 같다

저 사람 옷자락이 말라간다

손에 책을 쥐고 있다

저건 말라도 티가 나는데


내가 떠나야 저 사람이 들어갈 것 같다

행복하길 바라요


학교를 떠나며 생각했다

책은 말라가며 새 무늬를 가질 거라고

기다리지 않는 법은 당신에게 배웠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여러 몫의 행복을 빌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운 시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