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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Jan 30. 2024

運七伎三

사자성어가 적힌 골목을 걸었다

너는 맞춰 보자고 했다

멀리서 커다란 한자를 먼저 읽고

조금씩 가까이 걸어가 작은 한글을 읽었다

나 아는 한자가 몇 없어


모르는 글자는 다음 글자에 의해 나타났다

칠, 기, 삼… 아, 운칠기삼?


어떻게 밟혔는지 심히 마모되어

못 읽는 글자도 있다

꿈에서 본 걸 적어두는 공책처럼


공책은 숨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다

직접 고른 자리도 아닌데


공책을 움켜쥐러 뒤척이는 동안

시간이 먼저

나를 움켜쥔다

꿈이 훼손된다


눈사람을 벗는 것처럼

이 문장은 어떤 장면에서 파생됐을까

눈사람

안에 들어있는 사람

을 떠올려본다


아유 손이 징그럽게 차네

손을 끌어 이불 밑에 넣는

할머니,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은 걸 가진 것 같아


눈사람은 차가워진 기억이 없고

나는 어떻게 내가 됐지?


공책처럼 누워

그 골목을 생각했다


여러 명의 네가 걸어 다닌다

멀리서

다 읽을 수 있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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