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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동성 Jun 18. 2021

'오아시스'는 '카타르시스'


내가 원래 사람들이 검색 유입으로 많이 들어오는 밴드 얘기는 무서워서 잘 안 쓰려고 하는 편이다. 국내 인지도가 보통 높아야 말이지... 다만 당장 나만 해도 락을 좋아하기 시작한 근본이 오아시스에 있었고, 그러다 앤디 벨을 통해 라이드로 넘어간 케이스라. 또 또 말이 길다. 내가 락을 듣게 만든, 더 나아가 슈게이징을 듣게 만든, 음반 수집과 콘서트를 비롯한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그 근원, 오아시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검색 유입이 무서운 쫄보지만 아무래도 애정이 워낙 크긴 하다보니까... 그냥 넘기기엔 또 아쉽지. 글을 쓰면 어렴풋하게 느끼던 곡에 대한 감정들을 언어로 재정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해당 곡을 다시 듣게 되는데, 이를 통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나에게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다. 반짝이던 곡들이 더욱 내 안에서 반짝이게 되는 순간.



노엘 뒤통수 찍을 날이 올 줄은 몰랐다는거지


리암 갤러거가 내한했을 때는 이제 막 오아시스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때로, 입덕부정기라 콘서트를 안 갔다. 지금 와서는 후회스럽다. 그러나 입덕을 인정한 후부터는 빠르게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다. 이 블로그에도 자주 언급했지만 2018년 하플버 내한이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스탑 더 클락 CD에 사인을 받았지. 그리고 잔잔하게 흘러갔다. 다른 밴드들 콘서트를 다니면서 콘서트 짬을 올렸다고 해야 하나? 2019년 내한 때는 일렉 기타를 들고 입국 마중을 나갔는데, 정중앙에서 일렉기타를 내밀고 있어 눈에 띄었는지 노엘이 입국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기타로 직행하여 첫 번째로 사인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 얘기는 전에 블로그로 게시글 쓴 적이 있기 때문에 궁금하면 보면 되겠다(근데 별 내용 없다).




그리고 2019 내한은 운도 좋게 티켓팅에 성공하여 B구역 3번, 즉 펜스를 잡고 콘서트를 즐겼다. 하루는 펜스, 하루는 좌석이었고, 2019 내한 콘서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며 입증된 콘서트 아닌가? Live Forever의 첫 소절을 노엘이 끊어 줄 때의 카타르시스를(오늘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카타르시스!) 잊을 수 없다. 음,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제 후딱 넘겨서, 약 2~3개월 뒤 나는 오클라호마(미국)행 비행기를 탑승한다. 예전에 거기서 잠깐 산 적이 있기 때문에 그리운 사람들을 보러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 때까지는 몰랐다. 8월 말, 내가 또 다시 하플버를 보러 텍사스에 가게 된다는 사실을. 다소 즉흥적으로 리세일 티켓을, 공연 약 일주일 전에 산 나는 홀로 오클라호마>댈러스(텍사스)행 기차에 또 다시 몸을 실었다. 그리고 노엘을 만나게 된다. 콘서트는 재미 없었지만, 아주 즐거운 기억을 많이 남기고 왔고, 무엇보다 제시카 그린필드(하플버 크루)에게 둘둘 감기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역시 블로그에 글이 있으니 궁금하다면 확인해 보라.




그러나 2019년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11월 말, 방콕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결국에는 방콕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사실 5월의 내한 공연때도, 8월의 텍사스 공연 때도, 그리고 이 때도, 최애밴드는 라이드로 바뀐지 오래인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이번엔 하플버 내한공연 다니며 절친이 된 친구 둘과 함께. 그리고 묘하게 비행기 착륙 시간이 겹쳐서 공항 짐 찾는 곳 근처에서 노엘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2019년에 나는 사랑하던 오아시스의 사랑하는 노엘을 세 번 마주쳤고, 그렇게 오아시스에 대한 사랑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행복했다. 이 이야기도 블로그에 있으니 궁금하다면 보면 된다.


https://blog.naver.com/doo_bab/221725563987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죄다 자랑이다. 나를 트위터에서 알고 있다면 이미 지겹도록 본 이야기일테니 또 끌어와서 미안하다는, 심심찮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다. 그러나 검색해서 유입되는 사람들은 다르지! 그래, 내가 블로그에서 검색유입이 무서워 자주 말하지 못할 뿐, 나의 오아시스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다. 입덕 이후에 리암이 내한을 하지 않고, 리암의 해외공연을 가기에도 매번 묘하게 스케줄이 어긋나서 리암을 한 번도 못 본 것이 그저 슬프기만 하다. 노엘, 겜, 크리스, 앤디 모두 봤는데 리암만 못 봤다. 그래서 훗날 리암이 내한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달려갈 예정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오아시스에 미친 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라이드에 더 미쳐 있을 뿐이지, 보통 이쯤이면 충분히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검색유입이 두렵지만, 오아시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빼 놓겠느냔 말이야?



보통 오아시스 음악 이야기를 Turn Up The Sun 같은 곡으로 열지는 않지. 하지만 나한테 뭘 바라나? 나는 앤디 벨의 팬이고, 턴업더썬은 앤디 벨 작곡이다. 앤디 벨 스스로가 오아시스 시절 작곡한 곡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 곡. 서두를 떼기 위해 문단 분절 식으로 큰 의미 없이 넣은 영상이니 이해하길 바란다.


다들 오아시스의 음악을 언제, 어디서 처음 들었는가? 처음 들은 곡은 뭔가? 대개는 원더월, 슈퍼소닉, 돈 룩 백 인 앵거? 더러는 샴페인 슈퍼노바? 진짜 우습게도 나는 She's Electric이었다. 2009년, 내가 지드래곤을 좋아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 이렇게 말하면 이미 열에 아홉은 알아챘을 텐데, 당시에 지드래곤이 오아시스를 표절했다는 말이 있었다(엥?). Butterfly라는 곡이 She’s Electric을 표절했다는 거지. 지금은 지드래곤이 뭐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지만 나는 그 때 그에게 꽤나 진심이었다. 그러니 씩씩대면서 유튜브에서 오아시스 음악을 찾아 틀었을 수밖에. 감상은? ‘딱히 표절 아니지 않나?’ 어느 부분이 비슷하다는지는 알겠는데, 이걸 표절이라기엔 좀... 싶었다. 지금도 생각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냥... 당시의 플로우를 타서 지드래곤한테 시비 걸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게 아닐까? 더 웃긴 것은, 그 곡은 내 mp3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드래곤이 표절했고 어쩌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 노래가 좋아서 다운받아 넣었다. 나는 mp3를 꽤나 오래 써서 2016년까지도 그걸로 버텼으니, 나와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한 오아시스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기가 상당히 얄궂다.



그렇게 인생 첫 오아시스 곡을 얻게 된 후 8년이라는 공백이 흐른다. 여전히 mp3에서 쉬즈 일렉트릭을 들으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아담 램버트를 좋아하기도 했고, 악동뮤지션을 좋아하기도 했고, 완전히 새로운 데로 튀어서 합창곡, 가곡, 뮤지컬곡을 들었다. 돌고 돌아 2017년, 노엘 갤러거의 어록 모음을 보는 것을 기점으로, 그의 말재주와 단단한 멘탈에 홀려 오아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게 되고, 하플버로 시작하여 마침내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게 된다. 내가 뒤통수 한 대 맞은 느낌으로 기억하는 말, ‘냉소적이긴 쉽죠, 하지만 사랑하려면 강해져야 해요’. 그 말 하나로 나는 그를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좀 더 그에 대해 찾아보았고, 불우한 가정사를 알게 된 이후에는 존경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알 필요 없는 정보까지 너무 자세히 알게 되어... 그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존경해 마땅한’ 사람이 되기에는 좀 애매하다고 느끼게 되었지만...(흐린 눈) 그렇다고 그가 말했던, 내가 위로받은 그 말들이 그의 말이 아니게 되진 않으니까. 오아시스를 한순간 내쳐 버리기에 그들의 노래와 어록은 내 삶 전반에 이미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뭐... 노엘도 본인 입으로 그랬지 않았나, ‘누구에게나 X같은 면은 있다’... 하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아직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산다. 정말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 글이 길어지고 말 것이라는 감이 왔다. 오아시스는 나의 수많은 ‘처음’ 을 책임지고 있으니까... 음악 얘기는 널리고 널렸고, 나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써왔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과 주관에 비추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오아시스 음반을 제일 좋아하는가? 객관적으로 명반, Definitely Maybe? (What’s The Story)Morning Glory? 아니면 B사이드라기엔 말도 안 되게 좋은 B사이드 모음집, The Masterplan? 내 취향으로는, 유종의 미(?) 를 거둔 앨범 Dig Out Your Soul이다. 귀찮으니 이하 딕아솔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1집, 2집에 대한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접했을 것 같아서 그냥 스킵할 것이다.



7집은 1, 2집 이후 다소 전에 비한 임팩트가 줄었다고 평받던 오아시스에게 평론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오아시스가 돌아왔다’ 며 열광하게 만든 앨범이다. 뭐 그러고 나서 해체길을 걷기는 했는데...(나 안 울어) 확실히 1집의 락킹함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연륜이 붙었다. 초기의 음반이 치기어린 락킹함이라면, 7집은 섹시한 락킹함이었다. 억지로 섹시함을 쥐어짠 음악이 아니라 그냥 존재가 섹시했다. 죄책감이 드는 이야기지만, 나는 ‘상한 목’ 에서 나오는 리암의 보컬마저 사랑했다. 7집의 상한, 그르렁대는 보컬이 역설적이게도 7집의 섹시함을 가중시켰으며 더 어울리기까지 했다. 7집 수록곡들을 젊은 시절 리암의 맑은 목소리로 부르면 지금보다 나을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니다. 이 앨범은 Bag It Up으로 망설임도 없이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다. 대비할 시간도 없다! 디스토션이 짱짱하게 걸린, 드롭 D 튜닝의 기타 리프가 이마를 한 대 치고, 맹수같이 낮게 그르렁대는 리암의 보컬이 멱살을 잡는다. 그 뒤로는 허스키하게 노엘의 백보컬이 깔린다. 형제의 보컬은 정반대의 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이끌린다. 리암이 부르는 멜로디는 기묘하다. 기타는 쉬지 않고 달리고, 드럼도 사람 패 죽일 것같이 달린다. 하이라이트가 지나면, 갤러거 형제는 나란히 내려오는 음계를 부른다. 하-아-아-아-아-아-아이-, 리암은 목소리에 힘을 빼지 않고 그대로 락킹함을 이어가며 낮은 음을 깔고, 노엘은 목소리에 힘을 빼고 나긋하게 높은 음을 맡는다. 백잇업에 나긋이라고? 싶다면 악기와 리암 보컬 다 떼놓고 노엘 보컬만 남았다고 생각해보라. 바람 가득 묻은 그 목소리는 나긋에 가깝다. 다만 리암의 보컬과 밴드셋으로 인해 그 보컬이 락앤롤로 편입된다. 섹시함이 극대화되는 순간! 내가 백잇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 곡은 유튜브에 보컬+백보컬만 떼놓은 영상이 있는데, 이걸 원곡보다 더 좋아한다. 둘의 화음이 잘 들리기 때문. 노엘의 챳! 챳! 챳! 챠~ 하는 추임새가 킬링포인트. 위에 걸어둔 유튜브 링크가 그 영상이다.



I’m outta time으로 넘어가자. 오아시스, 비디아이, 리암 솔로 커리어를 통틀어 리암이 작곡한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이것과 Born On A Different Cloud다. 리암이 스스로의 작사 작곡 실력에 대해 조금 더 신뢰와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솔로 커리어를 거치며 전에 비해 좀 생긴 것 같아서 좋다. 오아시스 7집의 수록곡을 모두 좋아하지만, 백잇업, 암아우타타임, 폴링다운, 네이쳐옵리얼리티 네 곡은 죽어도 놓을 수가 없는 곡이다. 그러고 보면 작곡자가 골고루도 있다. 노엘, 리암, 다시 노엘, 앤디 벨. 하여튼 암아우타타임으로 돌아와서, 정말 리암만 쓸 수 있는 멜로디와 가사이다. 가사 전반이 리암의 내면을 잘 드러낸다. ‘내가 추락하면, 거기서 박수 칠 거니? 아니면 그들 뒤로 숨어 버리겠니?’ 라는 가사는 황색지와 편견에 시달리던 리암의 불안정함을 대변한다. 그의 불안정함, 폭발을 목전에 둔 분노에서 기인하는 음악성과 아름다움을 팬으로서 사랑하지만, 리암이 이로 인해 괴롭다면 나는 또다시 팬으로서 그 아름다움을 기꺼이 포기하겠다. 불안과 흔들림이 예술로 극대화되는 이 곡은, 정말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빠르게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가녀린 꽃잎 한 장이 바람에 흩날려 아래로, 아래로, 누군가 잡아끌듯 추락한다. 그래서 더 힘겹다. 다소 관조적인 어투의 가사가 사시로 인해 알 수 없게 풀린 리암의 푸른 눈을 떠올리게 한다. 본인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곡 속에 수도 없이 ‘I’ 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표출함에도 그렇다. 리암의 곡은 대개 리암 스스로가 명쾌히 드러나는 편이다. 솔로로 와서, Once나 For What It’s Worth, Misunderstood를 들여다보면, 거기 리암이 ‘나 여기 있소’ 한다. 가장 리암다운 부분이다. 피하지도 않고, 굳이 숨기지도 않고 때론 필요하다면 들이받아버리는 그 자아의 표출. ‘나는 락스타다’ 라는 자신감. 그것이 우리가 익숙하고, 또 사랑하는, ‘락앤롤 스타’ 이자 ‘두 번은 없을 프론트맨’ 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 뒤에는 반드시 이면이 있는 법이다. 암아우타타임은 이런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 풀어낸다. 나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등장하지만 꼭 남의 이야기같다. 왜일까? 차이가 무엇일까? 조금 덜 직설적이어서? 이상하게 목소리에서 처절함이 묻어나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이 곡이 더 와닿는다.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나-나나-나-나나 부분은 리암이 곡에 따온 존 레논의 인터뷰 음성과 겹치는데, 오노 요코에게 리암이 직접 연락을 해서 이용 허락을 얻어냈다. 인터뷰는 존 레논이 미국에 살고자 할 때 '영국인이 미국에 산다' 는 이유로 듣지 않아도 될 욕을 들었을 때 존 레논의 반응인데, "처칠이 그랬다. 어디 살든 그건 영국인의 권리라고. 영국이 사라지기라도 하나? 내가 돌아갈 때가 되면 영국이 없어져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리고 암아우타타임의 가사를 보자. '내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저 바다 바깥' '내가 떠나야만 한다면, 내 마음속에서는 네가 자랄 테고, 너 있을 곳은 거기잖아' 라는 구절들이 나온다. 존 레논의 인터뷰, 리암의 가사 둘 모두에 '회귀' 'belong' 의 개념이 등장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리암은 아주 오랫동안 본인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맨 것 같다. 그가 불안정했던 것은 결국 마음 내맡기고 편안히 있을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컸다. 그의 모든 것은 밴드에 있었다. 밴드가 삶이었는데, 그 밴드가 사라지자 굉장히 괴로워했고(비디 아이가 리암의 safety blanket이었다는 말만 봐도), 비디 아이까지 해체하고 나서 오랜 기간 쉬게 된다. 리암 갤러거 영화를 본 사람들이면 다 알겠지만, 그 기간 리암은 심적 방황을 했고, 결국 일어서서, 제 자리를 찾았다는 듯 당당하게 솔로로 돌아와 성공한다. 그가 이제 '있어야 할 곳' 을 찾은 것일까? 음악과 무대가 결국 where he belongs 인 모양이다. 음, 생각보다 말이 더 길어졌다. 너무 좋아하는 밴드라 별 수 없는 거겠지 아마?



Falling Down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이 곡으로 처음 딕아솔을 듣게 됐다. 듣는 순간 매료됐다. 허스키한 노엘의 보컬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 곡은 노이즈로 시작한다. 이내 노엘의 작지만 힘찬 원, 투, 쓰리, 포! 와 함께 아주 중독적인 드럼 비트, 그리고 E마이너 코드가 들어온다. 이 드럼 비트는 꼭 이런 느낌이다. ‘박자적으로틀 리지않으 나묘하게절 고있는느낌.’ 텍스트로 최대한 표현한 것인데 감이 올지 모르겠다. 몽롱하고 느른한 노엘의 보이스가 천천히 Is all that I've ever known 이라는 가사를 부르는 순간, 브릿지 부분부터 베이스, 오버드라이브 기타, 바이올린이 한꺼번에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온다. 드럼은 ‘계속기묘 한박자로힘 차게절고’, 성당 중앙에서 사제복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 떠오를 정도로 노래는 웅장하며 얼핏 성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다가갈 수 없는 성역이 아니라, 붕괴 직전의 망가진 성역이다. 당장 손을 뻗어 부서뜨릴 수도 있는 성역 말이다. 곡의 전체적 내용 때문일까? 내용을 적어 보겠다. 의역이 심할 것이다.


The summer sun

It blows my mind

It's falling down on all that I've ever known

Time to kiss the world goodbye

Falling down on all that I've ever known

여름의 햇볓이

내 정신을 뒤집어엎고

내가 알던 모든 것 위로 쏟아져내리네

세상에 작별의 키스를 할 시간이야

내가 알던 모든 것 위로 쏟아져내리네


Is all that I've ever known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A dying scream

It makes no sound

Calling out to all that I've ever known

Here am I, lost and found

Calling out to all

죽음의 비명은

소리가 없고

내가 알던 모든 것들에게 구원을 외친다

여기 나, 길 잃고 발견되어

모든 것에 구원을 빈다


We live a dying dream

If you know what I mean

All that I've ever known

It's all that I've ever known

우리는 죽어가는 꿈에 살고 있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것이 내가 알던 모든 것


Catch the wheel that breaks the butterfly

I cried the rain that fills the ocean wide

I tried to talk with God to no avail

Calling my name and out of nowhere

I said "If you won't save me, please don't waste my time"

가망 없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

나는 눈물을 흘려 이 바다를 채우네

신과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무의미했고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나의 이름으로 구원을 부르짖네

"구원해주지 않을 거라면 시간 낭비 시키지 마소서"

나는 그렇게 말했지


Catch the wheel that breaks the butterfly

I cried the rain that fills the ocean wide

I tried to talk with God to no avail

Calling my name and out of nowhere

I said "If you won't save me, please don't waste my time"

가망 없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

나는 눈물을 흘려 이 바다를 채우네

신과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무의미했고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나의 이름으로 구원을 부르짖네

"구원해주지 않을 거라면 시간 낭비 시키지 마소서"

나는 그렇게 말했지


The summer sun

It blows my mind

It's falling down on all that I've ever known

Time to kiss the world goodbye

Falling down on all that I've ever known

Is all that I've ever known

여름의 햇볓이

내 정신을 뒤집어엎고

내가 알던 모든 것 위로 쏟아져내리네

세상에 작별의 키스를 할 시간이야

내가 알던 모든 것 위로 쏟아져내리네


모든 가사는 종말을 예견한다. 건물이 무너지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정말 오타쿠같은 비유이기는 한데,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ㅋㅋㅋ)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가 흘러나오는 순간을 연상케 한다.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종말에 역설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영화에 쓰여도 괜찮을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 곡은 끝날 때 마지막에 악기가 자연스럽게 빠지고, 노엘의 목소리를 제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든 게 끝나고 無로 돌아간 황폐한 느낌을 준다. 부서진 건물이 눈 앞에 보이는 것도 같다. 또 한가지 사소한 포인트가 있다면, Catch the wheel that breaks the butterfly 부분의 드럼 비트는 실제로 드르륵, 하고 나비 날개를 어떤 기구로 고문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Breaks a butterfly on a wheel은 wheel으로 불리던 고문기구로 기껏 나비를 죽인다는 의미로, 쓸데없는 데 힘 뺀다/가망없는 짓을 한다는 관용어로 쓰인다) 이 곡이 리암 보컬이었다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좋았겠지만 이러한 '종말의 허무'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그의 보컬이었다면 '종말의 처절' 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곡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하플버 곡에도 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렇게 느꼈다. 형식상의 유사성보다는 내가 주관적으로 느낀 분위기가. 무엇일지 감이 조금 오는가?



The Man Who Built The Moon이 그 주인공이다(이하 후빌문). 성직자나 인도자, 여행자가 떠오른다는 점이 폴링다운과 바이브가 비슷하다고 느낀다. 또한 '전능한 누군가' 가 느껴지는 점, 음악이 웅장한 점,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토해내듯 고하는 점이 두 곡을 연결짓게 만든다. 사실 딕아솔 앨범에는 하플버와 유사한 느낌이 드는 곡들이 있는데, 아마 오아시스 끝자락에 쓰여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하플버 초기의 음악에는 오아시스가 느껴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폴링다운은 딕아솔 앨범 중에서 가장 하플버와 비슷하다. 중독적인 박자와 전체적인 단조 진행이 그렇다. 그럼 후빌문 가사를 한 번 볼까?


She was there

Diamonds in her hair

Singing out a dead man's song

Here am I

With the mighty and the high

Feeling like I don't belong

그녀는 거기 서 있지

머리에 다이아몬드를 매단 채

죽은 자의 노래를 하네

여기 나는

높고 전능한 분들과 있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Yeah it's you and your book of Who's Who

Acting like you just don't care

We would lie low

Got nowhere to go

And any road will get us there

그래 너, 여기 명부에 적혀 있는 당신

전혀 신경쓰지 않는 척 하고 있구나

납작 엎드려서

갈 곳도 없는 우리

어느 길이든 이끌어 주리라


We never should have left town in the first place

Now we gotta walk like they talk in the rat race

You keep your eyes on the prize if you want it all

애초에 마을을 떠나지 말아야 했네

이제 무의미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한다니

보상을 받고 싶다면 잠시도 눈을 떼서는 안 돼


You and I

Spider and a fly

Will meet where the shadows fall

너와 나

거미와 파리는

그림자가 지는 곳에서 만나네


Make room for the man who built the moon

He arrived on a knackered horse

Made no sound from the day he left town

No one said a word of course

I believe he was wearing on his sleeve

Her heart made of black and stone

여기, 달을 만든 자를 위해 자리를 내어 주게

녹초가 된 말을 타고 온 그를 위해

그는 마을을 떠난 뒤 한 마디도 하질 않았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쥐죽은 듯 있었고

내 보기에 그는 노골적으로

무감하고 검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군


I said, "my love,

I think I've had enough

I'm gonna find my way back home"

"내 사랑,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나는 그렇게 말했지


We never should have left town in the first place

Now we gotta walk like they talk in the rat race

Keep your eyes on the prize 'cause you want it all

애초에 마을을 떠나지 말아야 했네

이제 부질없는 경주를 하며 살아야 한다니

보상을 받고 싶다면 잠시도 눈을 떼서는 안 돼


You and I

Spider and a fly

Will meet where the shadows fall

너와 나

거미와 파리는

그림자가 지는 곳에서 만나네


We never should have left town in the first place

Now we gotta walk like they talk in the rat race

Keep your eyes on the prize if you want it all

애초에 마을을 떠나지 말아야 했네

이제 부질없는 경주를 하며 살아야 한다니

보상을 받고 싶다면 잠시도 눈을 떼서는 안 돼


You and I

Spider and a fly

Will meet where the shadows fall

너와 나

거미와 파리는

그림자가 지는 곳에서 만나네


You and I

Spider and a fly

Will meet where the shadows fall

너와 나

거미와 파리는

그림자가 지는 곳에서 만나네


어떤가?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일종의 신화, 혹은 성직자, 혹은 여행자의 서사시인 것처럼 쓰여졌다. 가사 면에서는 폴링다운이 조금 더 절망하는 성직자 느낌이 들긴 하는데 형식 면에서는 후빌문이 좀 더 성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배경에서 웅장하게 합창하는 소리는 이 곡에 신비감과 서사를 부여한다. 영화 OST로 쓰여도 손색없을 정도의 스케일이다. 하플버가 유독 음악이 영화 OST같은 구석이 있는 밴드다. 노엘 갤러거가 곡을 쓴다는 점은 같은데, 오아시스 노래에서는 영화 OST같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 반면, 하플버는 그렇다. 오아시스 곡 중에 영화 OST같은 느낌이 드는 곡들은 상당수 '하플버스럽'다. 하플버의 음악은 오아시스보다는 차라리 노엘 갤러거가 썼던 X파일 삽입곡 테오티우아칸에 가깝다. 노엘은 오아시스에 있을 시절 '오아시스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고, 하플버를 한 이후에는 정말 '하고 싶은 거'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곡과 폴링다운은 상당히 유사하지만 다르다. 폴링다운은 '하플버스러운' 오아시스 곡이지만 결국 오아시스다. 그러나 후빌문은 '하플버'다. 듣는 입장에서는 또 그 미묘한 차이가 즐겁다. 내가 지금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후기 오아시스 좋아하니까 후기 사진을 봐라


앨범 하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는 좀 그렇다. 딕아솔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오아시스' 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자. 락을 오아시스로 처음 접한 사람이지만, 오아시스조차 내겐 처음에 장벽이 있었다. 이게 바로 락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락 없이 자란 사람의 전형이다! 한국에서도 부활이나 김경호 등의 로커 덕에 잠시 락이 반짝한 적이 있었으나, 나는 그 세대보다 조금 늦다. 2세대 케이팝 아이돌과 함께 자란 젊은이다. 살면서 락 들어볼 일이 거의 없었으니 오아시스처럼 투명한 락앤롤 기타 사운드가 얼마나 적응 안 됐겠는가? 디스토션 빵빵히 걸린 월 오브 사운드는 이제 막 락앤롤을 들으려는 락린이에게 과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하플버 곡을 먼저 듣기 시작할 수밖에. 하플버 곡을 들으며 기타 사운드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러고 나서 오아시스로 넘어가자 전에는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다. 기교 하나도 없이 막 지르는 것 같아 적응 안 되던 리암의 목소리가 카타르시스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장벽이 깨졌다. 앨범을 모았다. 어느새 나는 리암이 전무후무한 보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오아시스가 벼락같이 나타난 영국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오아시스는 노동계급의 히어로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런 시대 배경이 받쳐 주었기 때문에 오아시스의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멤버들의 실제 정치 스탠스를 떠나서(노동당을 지지하긴 했지만), 밑바닥 워킹 클래스가 '샴페인 슈퍼노바' 처럼 등장하여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음악을 '내질렀'다. Some Might Say의 가사에 들어있는 냉소는 그들이 워킹클래스가 아니었다면 써내지 못할 가사였다. 거기에 노엘 특유의 시니컬이 덧붙었고, 리암의 호소하는 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붙는다. '비 온 뒤에 날이 갠다고 누군가는 그러지, 어디 한 번 빛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 소리 해 보시지' 나,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며 역에 서 있었지' 같은 소리는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다가온다. 오아시스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긍정이다. 유명세 얻기도 전부터 '오늘 밤 나는 락앤롤 스타' 라고 노래했고, 사랑에 대한 찬가로 가득하다. 그러나 나이브한 긍정이 아니다. 때로는 이렇게 차가운 냉소가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긍정은 배로 빛난다. 가난한 노동계급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해 냉소하지만, 사랑과 긍정은 잊지 않고 날아오르며 노래하기 때문에 더욱이 사람들에게 와닿고, '내가 차마 내뱉지 못했던' 감정을 내뱉는 것 같이 느껴진다. 거기에서 오는 해소감은 가슴을 시원해지게 만든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음악'! 신스팝 시대를 지나 다시 돌아온, 꾸밈없는 락앤롤이 주는 폭포같은 시원함도 있지만, 역시 들었을 때 나의 감정을 대신 뱉어놓는 것 같은 가사와 음악이 한몫한다. 덮어놓은 긍정은 대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오아시스는 냉소하는 긍정이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다. 노엘은 '냉소는 쉽고 사랑은 어렵다' 고 하지만, 창작자에게는 냉소와 사랑의 적절한 공존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식의 나이브한 창작물이 나올 뿐이다.


그의 얼굴이 오아시스 시대에 한 몫 했을 것... 원래 락은 얼굴로 하는 거다


오아시스의 카타르시스는 상당수 리암의 보컬에 빚지고 있다. 기교라곤 하나도 없이 정직하게 토해내는 그 목소리는 오로지 리암 갤러거만이 타고났다. 듣는 사람이 곡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건 그 감정을 저 끝까지 극대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본인의 평소 말버릇과는 정반대로, 놀라울 정도로 선명한 발음이 때려박는 듯한 보컬과 어우러져 날카롭게 나를 자극한다. 그의 불편해 보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는 듣기로는 최적의 보컬을 뽑아내는 자세란다. 그 자세와 진성만 쓰는 버릇, 지병이 맞물려 리암의 목이 많이 상하고 말았지만, 그는 매 순간 그렇게 최선이었다. 목이 상하는 것을 스스로 몰랐을까? 국내에서는 그가 술담배를 끊지 않고 '망나니처럼' 산 탓에 목이 상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꽤 많이 퍼지고 말았는데, 그는 이미 오아시스 시절에 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진단받았고, 이에 컨디션에 더 예민하게 목소리가 오갈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도 지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안 나와 콘서트를 중단해야 할 때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속상해한다. 누구보다 락앤롤에 진심이고, 음악에 진심인 사람이다. 목소리가 상해가는 것을 알고도 처절한 보컬을 내었다. 인이어를 쓰지 않던 시절에는 월 오브 사운드에 묻혀 제 목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망설임 없이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고 내달렸다. 그게 리암 갤러거의 락앤롤이고, 그의 세상이었다.


우리 엄마는 락이 시끄럽다며 좋아하지 않지만 오아시스 노래를 틀 때마다 매번 리암의 보컬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정작 나는 처음 들을 때 장벽이 있었는데, 나보다도 더 '락알못' 인 우리 엄마가 듣기에도 그의 보컬엔 뭔가 있다. 심장에 곧장 때려박히는 무언가가. 어떤 감정이든 극대화시키기 때문에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으면 카타르시스가 차오른다. 그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려면 어느 한 쪽도 없어선 안 된다. 노엘의 냉소하는 긍정, 리암의 특별한 보컬. 둘이 만나 말도 안 되는 시너지가 일어난다. 하플버에는 하플버 특유의 느낌이 있고, 리암 솔로나 비디아이에는 그들만의 느낌이 있어 좋아하지만, 최소한 '카타르시스' 에 있어서는 오아시스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건 오로지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불꽃 같은 거다. 그들의 미묘한 경쟁관계와 정의내릴 수 없는 애증은 형제관계와 밴드를 좀먹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오아시스였는지도 모른다. 완벽히 다르면서 닮은 형제의 대비와 유사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밴드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전부 젊으니 가능했겠지. 나이든 그들은 더이상 스스로를 좀먹게 해서는 안 되고, 그렇기에 너 따로 나 따로인 지금이 팬 입장에서도 좋다. 나에겐 즐길 오아시스가 있고, 하플버도, 리암 솔로도, 비디아이도 있다. 따지고 보면 즐길 거리가 네 배!


후기 오아시스를 안정적으로 받쳐 준 주역들


대개 오아시스를 논하면 초기의 오아시스를 논한다. 당연한 일이다. 초기의 오아시스는 전설이 되었다. 맨체스터의 다섯 젊은이가 모여 터진 밴드다. 토니 맥캐롤이야 금방 퇴출당했으니 그렇다 치고(이 과정이 좀 불쌍했긴 하다), 귁시와 본헤드는 명명백백히 오아시스의 팔다리였다. 리암이 심장을, 노엘이 뇌를 담당했다면, 귁시와 본헤드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될 팔다리였다. 특히 본헤드가 그랬다. 본헤드는 갤러거 형제와 더불어 오아시스의 핵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밴드를 떠났고 새로운 사람이 필요했다. 헤비 스테레오 시절부터 노엘과 가까웠던 겜 아처를 기타로, 전부터 알고 있었던 기타리스트 앤디 벨을 갑작스레 베이시스트로 들였다. 둘 모두 같은 소속사라는 인연이 있었다. 팔다리 없는 밴드는 존재할 수 없으니 새 팔다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앤디 벨의 팬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베이스라곤 손대 본 적도 없는 앤디 벨더러 갑작스레 베이스를 잡으라고 한 노엘과 리암의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수많은 베이시스트들이 있고, 오아시스의 베이시스트를 하라고 하면 기꺼이 했을 것인데, 갑자기 그게 앤디 벨에게로 넘어간다. 그러나 갤러거 형제의 안목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생각이 있었든 없었든 그들의 판단이 맞았다. 앤디 벨은 해냈다. 한 달, 하루종일 베이스만을 붙들고 있었던 결과, 그는 오아시스 곡을 숙달했다. 겜 아처도 매한가지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노엘이 탈주하는 일이 일어나고, 노엘 파트까지 완벽히 연주하는 기적을 이뤄낸다. 그들은 이미 그 때부터 '팔다리의 대체' 가 아니었다. 그 이상이 될 것이라는 예고장이었고, 오아시스의 일부로 서서히 자리잡는다. 마치 원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였다는 것인 양 녹아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앨범에 그들의 곡이 실렸다. 그저 기계팔 기계다리였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노엘 갤러거가 먼저 '좋은 곡이 있으면 가져와 보라' 고 말했지만, 기본적으로 노엘이 그들의 실력에 있어 의심이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이다. 겜 아처나 앤디 벨이나, 각자가 몸담고 있던 이전의 밴드에서는 작곡을 도맡아 하였으니 이상할 일도 아니긴 하다. 그들의 재능은 그저 세션으로만 썩히기 아까운 재능이었다.



겜 아처가 이전에 몸담고 있던 밴드, 헤비 스테레오의 곡이다. 난 바이닐 있지롱! (헤비스테레오가 글램락 밴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단 헤비스테레오 본인들이 글램락밴드 아니라고 했다... 왜인지 '글램락 정통밴드' 같은 걸로 인식이 박혀 있지만 애초에 글램락 장르구분 자체가 모호한데다 본인들이 아니라고 하는데야) 겜 아처의 보컬이다. 이런 보이스에 그런 작곡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아시스에서 세션으로만 있기는 당연히, 당연히 아깝다. 사실 내 기준에 지금도 조금 아까워서, 하플버 세션 하면서 본인 곡도 내 주면 좋을 것 같다. 궁금하기도 하다.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같이 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여하간 그런 걸 노엘도 알았나 보다. 리암이 먼저 곡을 쓰는 걸로 포문을 열었고, 이에 노엘이 타인의 곡을 앨범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오아시스는 각자의 포지션을 명확히 가지고 있되, 네 명의 작곡가로 구성된 밴드가 된다. 그래서 후기 오아시스를 더 좋아한다. 단순한 톱니바퀴로서의 밴드 멤버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밴드가 되었으니까. 물론 여기서의 시사점은... '톱니바퀴로서의 역할' 도 개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톱니바퀴의 개성이 너무 강해 삐걱이다 결국 전체가 멈추지 않았는가... 하하... 여하간! 음악성에 있어서는 초기 오아시스가 나았을지 어쨌을지 몰라도, 후기 오아시스에서는 어른의 맛이 난다. 젊은 시절 샴페인처럼 터져 수놓아진 그들의 혈기는 슈퍼노바가 되었지만, 나는 젊은 오아시스보다 나이들어 연륜이 붙은 오아시스가 좋다, 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아시스 재결합을 전혀 바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연륜 붙어 각자의 길을 잘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고 해서 계속하지 말란 법은 없는 거잖아?' 정말 리암 갤러거다운 말이다


리암 갤러거의 말을 빌려, 오아시스는 하늘에 입맞추고 키스마크를 남겼다. 관객수로 기네스를 기록했고, 앰프 소리는 공식적으로 로켓 소리보다 컸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누군가는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박수칠 때 떠나면 재미가 없다. 밴드는 '뇌절' 해야 재미있다. 다음 앨범에서 실망스럽다고 욕을 들어처먹든 아니든간에, 누군가는 그 앨범이 최애앨범이 된다. 오아시스는 욕을 그렇게 먹은 3집을 몇백만 장 팔아치웠다. 1절 2절 뇌절까지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락밴드 좋아하는 맛이다. 그러다가 불쑥, 또 하나의 레전드 앨범이 튀어나오는 법이다. 박수칠 때 떠나는 밴드만 있으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락을 듣겠어? 본의아니게 박수칠 때 떠난 밴드가 있다. The La's라고. 근데 정말 박수칠 때 떠나니까 다들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너무 일찍 끝난 밴드란다. 동의하긴 한다. 아쉽다. 더 했다면 좋았을걸.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정말 박수칠 때 떠나면 다들 또 뭐라고 한다는 거지. 그럴 바에야 하늘에 키스마크 찐하게 남기고, 거기서 파닥대다가 서서히 내려오는게 낫지 않나? 그 고양감, 해방감, 카타르시스를 팬들 말고 밴드도 즐길 만큼 즐기다 다음 세대에 내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 돌아보고 '빌어먹을, 100% 좋았지!' 하는 게 진짜 락스타답지 않을까? 오아시스는 진정한 락스타의 길을 걸었고, 걸을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남아 락스타의 길을 걷게 되겠지. 결국 남는 것은 음악이다. 변함없이 누군가에게 전에 없던 세상을 제공하고, 또 누군가는 오아시스로 말미암아 미래의 락스타를 꿈꿀 것이다. 오아시스는 냉소하는 사랑과 꿈으로 약동하는 카타르시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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