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졔 Dec 07. 2023

나의, 너의 그 불안정함 까지도

영화 '어바웃 타임' 3회 차 관람 리뷰

 얼마 전 갑자기 따뜻한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저의 감정 변화에 따른 영화 선택은 다음과 같아요.


 '극심한 스트레스받음'

1. 뭘 보거나 집중할 힘도 없음 -> 냅다 잠 -> 잊으면서 좀 나아짐 -> 자책이 수그러들면서 분노가 약간 차오름

2. 자극적인 영화 보고 싶음 -> 좀비가 나오거나 세계가 멸망하는 류의 영화를 많이 봄(이번에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정주행 했답니다.) -> 도파민 뿜뿜 -> 차올랐던 분노 및 부정적 감정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음 -> 차츰차츰 다시 인류애 약간 충전됨

3. 잔잔하면서도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찾음 -> 집중해서 잘 봄 


 그렇기 때문에 잔잔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이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의미이지요. 


 어떤 영화를 볼까, 여러 날 동안 머릿속 한 부분에 넣어두고 생각하던 어느 날. 불현듯 레이철 맥아담스와 남자 주인공이 어둠 속의 식당을 나와 처음 눈빛을 마주하던 그 장면이 보고 싶어 졌어요.


 그렇게 영화가 개봉한 2014년에 극장에서 한 번 보고, 2020년 겨울에 당시 남자친구와 두 번째로 봤던 이 영화를 2023년 여름 끝자락에 세 번째로 만났습니다. 


 아, 잘 쓴 각본이란 이런 것일까요. 좋은 스토리 텔링이란 이런 것일까요.

 ‘시간을 되돌린다’라는 어쩌면 뻔하디 뻔한 주제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구나,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게 되더군요. 


 사실 별 것 없는 스토리인데 왜 몰입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일까요? 배우? Ost? 연출? 


 결국에 그건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어요.  


 영화를 봤던 처음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하루하루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날처럼,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충만히 누리고 즐기며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고, 두 번째로 보았을 때는 팀과 메리의 만남과 사랑에 집중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놀랍게도, 팀의 보라색을 좋아하는 여동생, 킷캣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 이유는, 킷캣을 보며 저를 떠올렸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남자에게 자꾸 끌려하고, 일하던 직장은 자꾸 그만두는 킷캣.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맨발로 와다다 뛰어가서 매달린다거나, 뽀뽀를 퍼붓는 등 아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그녀. 계속해서, 끊임없이 불안정해 보이는 그녀이죠. 


 저는 불안정함이 싫었어요. 빨리 안정되고 싶었죠. 불안정하다는 것은 제게 곧 연약하다는 의미였거든요.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주 여린 꽃 한 송이가 연상되었죠. 저는 여리고 싶지 않았어요. 강하고 싶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평온히 사는 삶을 꿈꿨어요. 그렇게 살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불안정함을 없애고자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직업을 택했죠. 하지만 우습게도 그 직업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불안정해지자, 오히려 그 역풍은 엄청났어요.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것은 모두 허상이었구나, 싶어 배신감이 들었거든요. 나는 순진하게 뭘 믿고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도 그랬고, 지금도 저는 불안정합니다. 어쩌면 평생 불안정할지도 몰라요. 이곳을 떠나 서울에 가면 안정이 되겠지. 시험에 붙으면 안정되겠지. 연애를 하면 안정되겠지. 돈이 훨씬 많아지면 안정되겠지. 결혼을 하면 안정되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정신이 없으니 자연스레 안정되지 않을까. 나이가 많아지면 안정되지 않을까. 


 아뇨. 안정을 찾으려 하는 자에게, 안정을 위해 한 선택에 역설적으로 안정은 없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어요. 오히려 “이쯤 되면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왜 안정이 안되는 거야?”라는 물음에 답답함만 더해졌죠. 


 그래서 저는 이제 항상 불안정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려 합니다.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불안정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웃음을 찾아나가는 제가 본 이 영화 속 사람들처럼요.  


 적어도 제게 좋은 영화란, 이렇게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인가 봅니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한 저에게 만족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달해 준, ‘좋은’ 영화 한 편이었습니다.






- 사진 출처 : 영화 '어바웃 타임' 스틸컷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