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동동 Sep 07. 2024

압구정에 살아서 뭐가 좋은가요?

교통이, 아니, 위치가 좋아요

  압구정에 이사 와서 좋은 게 없었다. 남들은 못 들어와 안달인 동네라지만, 집은 낡고 통장은 텅 비고…. 개인적으로 안 좋은 것투성이였다. 매일 이래서 안 좋다, 저래서 안 좋다 노래를 불러댔더니 남편이 어느 날 물었다. 


  “압구정에 와서 좋은 건 있어?” 


  나는 즉시 대답했다. 


  “있지, 그럼.” 


  남편은 깜짝 놀랐다.


  “아니, 좋은 점도 있어? 뭔데?”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교통이 너무 좋아.”


  은근히 ‘집값’과 같은 답을 기대하던 남편은 금세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마디 더 날렸다. 


  “위치 좋은 거 하나는 나도 인정!”     







  압구정은 교통이 좋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압구정이 교통이 좋은 이유는 위치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압구정으로 이사를 했는데, 우리 가족이 살던 곳 이외에는 죄다 모르는 동네인 아들은 통화 중 이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묻곤 했다. 


  “그런데 압구정이 도대체 어디예요?”


  그런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서울의 배꼽이야.”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압구정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다. 전통적인 수도, 사대문 내 한양 도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니겠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커진 현대 서울의 관점에서 압구정의 위치는 딱 서울의 한가운데다. 그래서 서울 어디를 가려 해도 편하다. 명동도, 잠실도, 강남도, 다 버스 한 번에 가능하다. 버스도 자주 온다. 버스 한 번으로 가기 힘든 여의도 같은 곳은 지하철 환승 한 번이면 문제 해결이다. 지하철역도 두 개 있다. 노선도 좋다. 남북으로 서울의 주요 요지를 관통하는 오래된 3호선, 그리고 주요 환승역과 계속 연결되는 수인분당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림픽대로 바로 옆이라 올림픽대로로 간단하게 진입할 수 있다. 압구정에서 이어지는 한강 다리는 세 개나 되어서 한강을 건너기도 편하다. 또 한남대교를 통해 바로 경부 고속도로를 탈 수도 있다. 그야말로 사통팔달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우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대중교통도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훨씬 낫다. 자동차로 움직인다면 지옥 같은 교통 체증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는 문제가 된다. 그저께 오후 남산도서관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압구정에서 남산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버스가 최선이다. 굳이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할 수야 있지만 많이 돌아가는 셈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밀릴 시간에 때아닌 소나기까지 내려 도로는 차로 꽉 막혀 있었다. 버스는 금방 탔지만 압구정을 벗어나는 데만 10분, 15분, 20분…, 나는 그만 잠들어 버렸다.  


압구정 로데오 사거리. 갤러리아 백화점 앞. 오전에는 한산하다. 


주말 오후 같은 장소. 차량이 빼곡하다.

 

 

  그래도 만약 꼭 차를 가지고 움직이고 싶다면 오전에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시계 바늘이 오후 3시가 넘어간다면 차를 가지고 나갈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게 좋다. 버스를 이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사당 쪽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집에 오려고 버스를 탔는데 마침 퇴근 시간대였다. 아직 압구정 교통의 실체를 잘 몰랐던 나는 사당에서 압구정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길래 짐도 무겁고 해서 덥석 올라탔다. 러쉬아워인데도 버스전용차선의 도움으로 고속터미널도 잘 통과하고 잠원 지구도 그럭저럭 수월하게 지나갔다. ‘곧 집에 도착하겠구나. 생각보다 괜찮은데?’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압구정 초입에서부터 버스가 슬슬 막히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은 ‘이 시간대는 원래 그렇지 뭐’라고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도무지 가지를 않는 거였다. 움직이나 싶으면 서고 이제 가나 싶으면 다시 섰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버스에서 내렸다. 차라리 걷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 끝없이 늘어선 차량을 옆에 두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낯익은 번호를 단 버스 한 대가 꿀렁꿀렁 옆을 지나갔다. 좀 전에 내가 내렸던 버스였다. 결과적으로 버스가 나보다 정류장에 먼저 도착하긴 했다. 한 5분 정도긴 하지만. 



그럼, 압구정이 교통이 좋다는 게 맞는 이야기인가?


  이곳에 살면서 경험해 보니, 압구정은 옛날에는, 그러니까 내가 압구정에 이사 오기 전 시절에는 분명히 ‘교통이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이 좋은 게 아니라 ‘위치’가 좋은 곳 같다. 그게 그 말 같지만, 사실은 다른 말이다. 요즘은 서울시 전체가 거미줄 같은 교통망으로 연결되어 교통이 좋은 곳이 많아졌다. 지하철 환승역이 있는 곳들은 대체로 교통이 편리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교통의 요지로서의 압구정의 강점은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위치 이야기라면 좀 틀리다. 아무리 서울이 커지고 수도권이 확장되었다 하더라도 서울 가운데에 자리한 이점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고, 나중에는 신기했으며, 끝내는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 남쪽 신도시와 인천 서구, 그리고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살아봤는데 각기 그 지역 안에서만 살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특히 신도시의 경우, 여유로운 생활 환경과 편의 시설 때문에 서울에 살 때보다 만족도가 클 때가 많았다. 하지만 서울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이야기가 틀려졌다. 무엇보다 서울에 들어가고 나가는 일이 너무 불편했다. 멀기도 멀거니와 지옥 같은 차량 정체를 각오해야 했다. 한번은 인천에 살 때 아산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병문안 간 적이 있었다. 운전을 하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이 서울 바로 옆 도시라지만 영종도 바로 옆, 인천 서구에서 잠실 끝, 풍납동까지 가려니 마치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기분이었다. 서울에 살 때는 사정이 또 달랐다. 서울로 드나드는 데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서울 내에서의 움직이는 게 불편했다. 차가 많고 주차할 곳이 없어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장소에 따라 여러 번 환승해야 하거나 버스 노선이 많이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서울 내에서 움직이는 게 신도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시간보다 더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압구정에서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다. 어디를 가도 시간이 비슷하게 걸린다. 이사 와서 처음 버스를 타고 명동성당에 갔을 때였다. 버스를 타고 내리기까지 불과 20 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 금방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압구정은 시내와 가까이 있었다. 


  압구정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결국 압구정의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현재 압구정 재건축을 둘러싼 뜨거운 관심에 불을 지피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런 첨예한 부동산 문제에까지 뛰어들 능력이 없다. 그저 어쩌다 압구정에 살게 된 압구정 주민으로서 압구정이 가지는 위치의 이점을 누리는 데 만족할 뿐이다. 






  마침 추석이 곧이고 해서 경동시장에 갔다 왔다. 가는 길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집 앞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한번 환승,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경동시장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끝이었다. ‘경동시장’ 하면 주변에선 대단한 장을 보러 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그냥 동네 시장에 마실 가는 기분이다. 이게 다 따지고 보면 압구정의 위치가 좋은 덕분이다.     



  그래서 결국 압구정이 뭐가 좋은가 하면, 교통이 아니라, 위치가 좋다.      

작가의 이전글 구독자가 생기니 부작용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