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동동 Nov 02. 2024

한강 작가 노벨상 소식에 싱가포르 서점에 갔더니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 밤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카톡을 확인하고 있는데  카톡 메시지 하나가 떴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 회원분 한 분이 "드디어 노벨상을 타네요"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흘깃 눈길을 주며 지나쳤는데, 좀 있다 또 다른 회원분이 길게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다른 회원분들도 하나둘씩 길게 톡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무슨 일인가 싶어 제대로 읽어봤더니, 이게 웬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생각지도 못하다가 이게 웬 경사인가 싶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했다. 동시에 명색이 독서 모임 리더이면서 이런 소식도 체크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서둘러 축하 메시지를 단톡방에 올리고는 들뜬 기분에 여기저기 뉴스창과 SNS 채널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박, 이 장면을 실시간에 보다니' 하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현재 일본에 있는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서점 측에서 가판대의 책을 한강 작가의 책으로 쫘악 까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글만 봐도 어깨가 절로 올라가고 흥분되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결심했다.


'내일 키노쿠니야에 가서 싱가포르에서도 한강 작가의 책이 깔린 모습을 봐야겠다!'




키노쿠니야는 일본계 대형 서점으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서점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중심부 오차드 거리에 있는 니 안 시티(Ngee Ann City) 3층에 위치해 있다. 같은 건물에 역시 일본계 백화점인 다카시마야가 입점해 있으므로 다카시마야 백화점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찾아가면 찾아가기 쉽다. 다카시마야 백화점이나 키노쿠니야, 또 거리는 좀 있지만 이세탄 백화점 모두, 싱가포르의 중심부 오차드에 당당히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규모를 볼 때 과거 싱가포르에서 일본 자본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듯하다. 


(그래서 잠깐 니안시티에 대해 찾아보니 니안 시티를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레이몬드 우인데, 만리장성에서 영감을 얻어 니안시티를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이 웅장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던 거다. 니안시티의 A와 B, 두 타워는 힘과 자비, 통합을 대표하는 중국의 문지기 신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니안시티는 1993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었다고 한다. 오픈식에는 고촉통 수상까지 참석했다고 하니 싱가포르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단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교보문고와 같은 종이책 서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키노쿠니야는 내가 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싱가포르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그 모습에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서점에 들어가면 여전히 압도적인 종이책의 산이 펼쳐진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일본계 서점이어서 그렇겠지만 특이하게도 일본어 서적과 애니메이션 굿즈들이 많다.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는 모습이 한편으론 든든하게도 보이면서도 어쩐지 자기만의 시간 흐름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오랜만에 키노쿠니야를 들러 책 매대를 흝어봤다. 매장이 넓고 서가 사이 통로는 꼬불꼬불하고 매대가 여기저기 있어 아시아-한국 서적이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좀 의아하기도 했다. 아시아인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것 같은 흥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싸했다.


싸했던 기분은 정확했다. 마침내 찾아낸 아시아책 코너. 반가운 한국 책들이 보였다. 하지만 진열된 것은 한강 작가의 책이 아니었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김지은 작가의 <연남동 빙굴빙굴 세탁소>가 진열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그 외에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등이 보였다. 서가를 샅샅이 뒤져 한강 작가의 책을 마침내 발견하긴 했지만 그 책은 단지 진열되어 있는 여타 한국 서적들 중 하나일 뿐,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파친코>, <연남동 빙굴빙굴 세탁소>, <휴남동 서점>은 보이지만 한강 작가의 책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찾은 한강 작가 책. 노벨수상자라고 특별히 취급받는 듯한 느낌은 전혀 없다.


어쩐지 김이 샜다. 

'노벨상 수상이 우리만의 잔치인 걸까' 하는 의심마저 살짝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독서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회원분들이 말하길,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난히 노벨상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항상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몇 년째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더욱 예민했을 거라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싱가포르에서의 아쉬움이 조금 풀렸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알아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강 작가의 수상은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그 기쁨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알아주었으면 했다. 내 자식 잘난 걸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잠시 김새고 실망했던 이야기.



(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싱가포르를 여행한다면 키노쿠니야는 한번 방문해 볼 만하다.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을 한번 둘러보고 아래층 '생 폴'(프랑스의 '파리 바게트', 하지만 아시아에 와서 고급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다)에 가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에서 사 온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