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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뷔 Nov 15. 2024

당연한 것에도 같이 감사해 볼까?

아빠존의 눈물겨운 육아 이야기

큰일입니다. 

쓸 유머가 떠오르지 않아 글 쓸 맛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유머에 목매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잘 안됩니다. 

자고로 처음에는 헛소리를 좀 해줘야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보시는 분은 제 유머가 괴로우실지 모르지만...

어쨌든 제 첫째 딸은 좋아라 해줍니다. 그거면 됐습니다.(설마, 의리로 웃었니?)


오늘은 당연한 것과 당연 치 않은 것, 큰 감사와 작은 감사에 대해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쓸까 합니다.



얼마 전 필리핀 저희 콘도(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고가 붙었습니다.

크리스마스라서 불우이웃 돕기 하나보다 했습니다.

아, 또 영어입니다. 왠지 뜻깊고 교훈 가득한,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자세히 읽어봅니다.

이런, 이제 보니 여기서 일하는 스탭을 위해 돈을 기부하라는 내용입니다. 

최소 2,000페소(약 5만 원). 

황당합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그랬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여기서 근무하는 스태프들 크리스마스 파티, 보너스 등을 위해 매년 돈을 기부받는다고. 

그리고 돈 안 낸 가정은 스태프들이 기억했다가 한동안 째려본다는(루머)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필리핀에서 가장 큰 명절이고, 의미 있는 건 알겠는데, 

돈으로 너희가 신나는 파티를 열고 어깨춤을? 게다가 최소금액 5만 원은 뭐람? 싶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필리핀.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 봅니다. 

중앙선 침범하던 운전자가 떠오릅니다.

'그래, 그걸 용서했는데, 이걸 못하랴.' 싶었습니다. 

미국 문화권, 팁 문화, 연말 보너스 문화를 떠올리니 어찌어찌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1년간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도 해주고, 택배도 받아주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최소금액 정도로 해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이런 공고가 엘리베이터에 또 붙었습니다.


 

더 황당합니다. 

각 호수 별, 각 동별로 누가 얼마씩 냈는지를 게시했습니다.

무슨 경쟁시키려는 듯 떡 하니 붙여놨습니다.

고얀 것들. 이러니까 더 하기 싫어집니다. (아직 안 했지만) 

다시 마음을 억지로 넓힙니다.

며칠 전 역주행하던 오토바이들이 떠오릅니다. 

그걸 용서했는데... 힘들지만, 이것도 용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계획을 설명합니다.

1년간 고생한 스태프들을 위해 너희 이름으로 2,000페소를 기부하겠다.

그걸로 뭐 하는데요? 10살 첫째가 묻습니다.

스태프 분들 크리스마스 때 파티도 하고 하는 것 같더라.

그걸 왜 우리가 줘야 해요? 6살 둘째가 묻습니다.

고맙잖아. 1년 동안 가드도 해주고, 택배도 받아주고, 청소도 해주고 했잖아. 했습니다.

그거 돈 받고 하는 거잖아요. 첫째가 말합니다.

역시 우리 두 딸들, 똑 부러집니다. 자랑스러운 코리안입니다.


노력한 만큼 받는다. 일한 만큼 받는다.

노력의 대가로 주거나 받는 건 감사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당연한 통념입니다. 

5,6년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저도 그 이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존, 아이들에게 공짜 가르침을 마음먹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 갈 때 자동차 타고 가지? 엄마 아빠가 번 돈을 대가로 산 거지. 

이 차 덕분에 우리 가족 시원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

네! 귀여운 이구동성입니다.

근데, 이렇게 생각해 볼까?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옷도 마찬가지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작 옷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목화 따기부터 시작해야 해. 시간과 노력을 엄청 들여서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해. 

그리고 아마 형편없는 옷을 만들겠지. 

다들 자기 먹고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첫째가 말합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근데 엄밀히 따져보잖아, 우리는 물건과 서비스를 엄청 싼 가격에 이용하고 있어. 

자유무역,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덕택에 말이야. 조금 어렵지?

만약에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아마 거의 모든 비싸질 거야. 

하지만, 각 나라마다 다 사정이 다르지. 어쨌든 그 차이 덕분에, 그리고 적은 돈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끼면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 

아이들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곧 잠들 기세입니다.

다시 스태프들 얘기로 돌아와 볼까? 이 분들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아빠가 복도 청소해야 돼요. 둘째가 대답합니다. 느낌이 좀 이상하긴 한데 맞는 말입니다.

그, 그래. 안전문제, 건물관리 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거야. 

게다가 이분들 일은 이곳 경비, 관리뿐인데 항상 도와주려고 하시지? 무거운 거 들고 있으면 엘리베이터도 잡아주고, 항상 반갑게 인사도 해주시잖아. 

1년 동안 우리한테 친절하게 해 주셨는데, 우리도 감사를 표현을 해볼까?

아이들이 네!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생각을 잘 들어줬습니다. 

간식 안 사줄까 억지로 대답했나 싶기도 하지만, 딸들을 믿어야 합니다.


유독 감사에 박절한 우리 문화를 생각합니다. 언젠가 감사 공익 캠페인도 했지만 얼마 못 갔던 같습니다.

아마, 능력주의, 성과주의가 너무 독하게 들어박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여유와 감사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잘 없습니다. 

내가 돈 냈으니, 당연하지. 그 마음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세상에 공짜가 없듯, 당연한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노력을 우리는 작은 돈으로 쉽게 누리고 있습니다. 

물, 전기, 도로, 대중교통시스템, 하수시스템 등등 너무 당연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중 하나라도 안 된다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합니다.

너무 억지 감사 아니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30분만 눈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음이 열립니다.


또 우리는 사소한 감사는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작은 감사, 큰 감사가 따로 있지 않으며, 나눌 기준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애매하면 우리는 안 하고 맙니다.

감사하다고 하면 왠지 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빚지는 기분도 듭니다.

그런 거 조금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고맙다 할 걸 후회하기도 합니다.

감사의 순서나 인사의 순서로 고저를 나누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멀리하면 됩니다.

작은 감사를 고맙게 여기고, 잘 표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도 부족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딸들을 뭐라 했을 때 내가 더 자랑스럽고, 더 기분이 좋을까? 자문해 봅니다.

공부 잘하고 능력도 월등해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긴 하지만잘난 맛에 사는 딸?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 아끼는 딸?

정답은 각각 다를 겁니다. 

저는 후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보니 결국 다 자신에게 다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사는 딸들을 바라봅니다.



모금함에 아이들 이름과 봉투를 넣었습니다.

바이블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했습니다.

덕분에 스태프들께 감사는 물론, 아이들과 좋은 교훈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빠존은 오늘도 배웠습니다.) 

다 아는 건데, 당연한 건데 돌아보면 저도 썩 잘하고 있진 않습니다. 

이참에 저도 잘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감사합니다!, 땡큐, 살라맛 포!"


아빠가 살아보니, 

당연한 건 없더라. 그리고 큰 감사, 작은 감사도 따로 없더라.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같이 당연한 것에도 감사해 볼까?

아빠가 해봤더니 그러면 마음도 예뻐지고 기분도 좋아져. 

출근길 버스가 좀 늦어도, 저분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운전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네 하면

화도 훨씬 덜 나더라.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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