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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뷔 Sep 16. 2024

아빠존의 눈물

5. 아이들과 친해지기 프로젝트

아내가 해외로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세 부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서로가 조금씩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저와 아이들 사이에 뭔가 투명한 벽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그 벽을 허물고 아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Project 2) 아이들과 친해지기.

뭔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세 부녀가 생사고락을 함께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5성급 스페셜 경험(남중-남고-공대-군대-건설회사) 상 나쁜 짓을 함께하면 무리들끼리 끈끈한 뭔가가 생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묵과 햄을 잔뜩 시켰습니다.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잔뜩 샀습니다. 

아내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좀처럼 아이들에게 사주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저 조차도 아내님과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몰래 편의점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편의점 직원은 한밤중에 40살 넘은 아저씨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탐하는 모습을 보며 분명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금단의 음식을 시킨 후, 저는 이동식 TV를 식탁 옆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님은 TV, 미디어, 게임을 사탄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신나게 TV를 보며, 과자, 아이스크림을 먹어댔습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엄마 몰래 저지른 비행은 끈끈한 전우애를 가져다줬습니다.

이제 저희는 햄이나 어묵 반찬을 마음껏 탐하는 것은 물론, 맛있는 녀석들의 재방을 보며 ‘한 입만!’을 함께 외치는 불량배들이 되었습니다. 

죄의식 따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TV 앞에서 깔깔대며 과자를 쫩쫩대는 비행 부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운명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순수한 작품을 아빠는 '타락'의 이미지로 써먹고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저희의 시크릿(Bimil)은 영상통화로 금세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영상통화 도중 둘째 딸에게 저녁 뭐 먹었냐는 기습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옆에서 “김치~ 김치 먹었다고 해!”라고 다급히 속삭였지만, 딸은 햄이라고 해맑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세 부녀는 함께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저는 용감하게 제가 주도했다고 전우애로 아이들을 감쌌습니다. 사실 그건 감쌌다기보다는 진실이었죠.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저였드랬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애꿎은 아이들은 제 꾐에 빠져 괜히 혼난 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고귀한 희생이 감동스러웠는지, 결론적으로 저와 두 딸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도 얼떨결에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남은 것들은 자질구레한 것들이었습니다. 차를 팔았고, 가구와 가전을 나눔이나 당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필요한 것들을 샀습니다. 특히 필리핀은 가전제품이 비싸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한국에서 구입했습니다. 선풍기 4대, CCTV 4대, 금고, 자동차 블랙박스, 플스5(필수품). 그리고 아이들 학교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필리핀에 가져갈 짐들을 챙겼습니다. 해외 포장이사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텅 빈 집안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텅 빈 집안을 둘러봤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땅, 낯선 곳에서 나는, 우리 두 딸들은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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