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납작콩 Feb 04. 2023

미지근하다.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라고 어제 사다 놓은 잡곡으로 잡곡밥을 지었다. 그리고 나물 몇 가지를 했다. 시금치나 콩나물이 아닌 시래기, 취나물 등의 건 나물 요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괜히 얕보았다가 실패감만 맛보았다. 머리로는 맛난 정월대보름 나물에 예쁜 빛깔의 오곡밥을 함께 먹는 것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건 생각일 뿐이고 결과는 영 아니었다.      


이틀 전부터 왜 이렇게 몸이 금방 지치는지 10시만 넘으면 아무런 의욕조차도 없고 몸도 지쳐서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제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것저것 또 찾아볼 일이 있어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아프다. 잠을 잘못 잔 건지 허리 근육이 온종일 불편하다.      


몸만 불편한 게 아니라 나의 감정 상태도 무기력하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그런 상태라고 해야 할까. 입꼬리가 내려간 무표정의 상태로 오늘 대부분을 보낸 것 같다.      


2월이 가기 전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내가 여행을 계획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아마 여행을 같이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제는 계획을 짜고 이끌고 갈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1월에도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게으름을 피우다가 여행을 가지 못했다.     


‘다들 그냥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여행을 가야 한다고 설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우리 모두 ‘같이’ 어디를 가고 ‘같이’ 무엇을 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의 틀을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런 생각은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해 주고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이 지금까지도 힘들 때가 있다. 어찌 보면 다들 각자의 삶들을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내가 제일 독립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그들과 붙어있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미지근함이 어찌 보면 나만의 재미와 즐거움을 망각하고 가족들만 바라보며 살고 있어서 발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감정의 미지근함이 싫다.      


가족 구성원들만을 응시하던 그 눈길을 이제 나 자신에게로 옮기면 조금씩 나아지려나? 

작가의 이전글 편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