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검찰청 실무관. 퇴사를 하였습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까지.
검찰청에서 보낸 나의 계절은 이러하다. 살짝 부족한 두 바퀴의 계절들.
계절과 무관하게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이곳에서 나는 꽤 행복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공공기관, 몹시 바라던 정규직, 안적정인 월급, 적당한 노동량, 우수한 복지, 인간적인 대우, 무난한 동료들, 수월하게 꽂히던 대출금, 언제나 정돈되어 있는 정갈한 사무실과 복도, 검찰청 이름만 대면 쉽게 예약할 수 있던 리조트까지. 흩날리는 바람 없이 언제나 안전하게 보호받는 이곳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좋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몇 번을 생각해도 결국 퇴사를 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아마 지금보다 급여가 조금 더 높았거나 정규 공무원이었다면, 조금 더 많은 고민을 하다가, 망설이다가, 주저하다가, 그래도 결국 퇴사를 했을 것이다. 나는 바람을 쐬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봄, 문득 계절이 있었던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과 있던 곳에는 매일매일이 계절이었다. 봄이면 싱그러운 새싹들이 만나는 선생님마다 자기소개를 하고, 여름이면 매미처럼 떠들며 화채를 만들어먹고, 가을이면 낙엽을 주워 낱말을 속삭이고, 고새 키가 커 마음마저 들뜬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정말이지 바람이 불지 않는 검찰청은 정말 좋았다. 아무리 잔인한 사건도 창밖 넘어 부는 남의 일이었고, 인사이동이나 종합감사 등으로 안에서 바람이 분다고 한들 그건 타이머가 맞춰진 선풍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졌다.
그러나 안전한 이곳이 정말 좋으면서도, 바람이 담고 오는 계절이 너무 그리웠다. 알고 있다. 바람은 언제나 살랑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끔은 태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하고, 살을 에는 칼바람이 머리카락을 때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러나 한번 그립기 시작한 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머리카락을 흔들었고, 결국 바람을 쐬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까지 검찰청 실무관. 퇴사합니다.
2020년 가을. 검찰청 실무관에서 사회적기업가로, 다함께돌봄센터를 꾸려나가는 선생님으로 다시 아이들 앞으로 갑니다.
계절을 그리워한 지난봄부터 이곳을 기억하려 쓴 글들이 브런치이다. 퇴사를 앞둔 나의 입사기를 읽고 고마워 해준 예비 실무관님들, 진짜 퇴사하냐며 어리둥절 쪽지 주신 수사관님들 (정작 우리 지청은 아직까지 내가 이걸 쓰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두 소중한 기억입니다. 사실 써둔 에피소드가 몇 개 더 있어서 퇴사기를 천천히 쓸까 생각도 했지만, 더 이상 오늘은 검찰청 실무관이 아니므로,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