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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수 Jun 19. 2020

타이베이를 걷다 :  중정기념당

2018 대만 여행 #2

 여행을 와서도 나의 늑장은 여전했다. 그전까지 늦게 일어났던 사람인데 여행지라고 새 다짐이 들지는 않았다. 오늘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중정기념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숙소이기에 아침식사는 기대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도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어나서 1층으로 가보니 우유와 잼 그리고 3, 4가지의 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시리얼과 우유도 있었다. 사실 조식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내가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나에게 물어봤다. ‘오믈렛 해 줄까요?’ 나는 내가 늦었으니 저기 남은 빵을 먹겠다고 했다. 직원들은 그래도 오믈렛을 만들어서 챙겨주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들이 더 좋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간단하게 먹었던 아침. 직원들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침에는 밀크티와 빵으로 간단하게 보냈다. 그래도 뭔가를 먹으니 힘이 났다.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움직이자.


 숙소를 메인 역 주변으로 선택해서 중정기념당은 정말 가까웠다. 걸어서 대략 15-20분 정도를 가서 중정기념당에 도착했다. 그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사람들은 태극권?으로 보이는 동작들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정말 새벽에나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무에 가려진 따뜻한 햇살 속에서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참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중정기념당


 그리고 서서히 보이는 큰 건물. 처음부터 입을 딱 벌렸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요즘 말로는 크고 아름답다고 하지. 큰 문을 지나고 나서는 양쪽에는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 안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부터 식당까지 있다. 일단 이 두 건물 역시 꽤나 큰 규모이다. 또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 중에 건물 안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분명 저기서 밥을 먹으면 여행은 여기서 그만 멈춰야겠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섯 개의 지붕이 감싸는 문에는 한자로 '자유광장'이라고 쓰여있다. 원래는 장제스의 본 이름인 중정을 따온 '대중지정'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더 거대한 느낌이었다. 자타공인 대만의 랜드마크 중 하나의 입구는 정말로 거대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꽃보다 할배' 방영 후 여행객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주변에 한국분들이 정말로 많았고 어떤 분들은 나에게 사진을 부탁하셨다. 그리고 엄청난 햇볕 아래에서 점점 중앙에 있는 기념당으로 발을 향한다.


 정말 많은 관객들이 있었다. 기념당은 1980년 4월 5 한국의 식목일에 개관을 했다고 한다. 장제스는 1975년 4월 5일에 사망했으므로 정확히 5년 만에 기념당을 완성한 것이었다. 모든 공사비용은 기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장제스라는 인물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큰 기념당을 만들 정도인가?라고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장제스는 쑨원과 함께 대만의 국부 격으로 추앙받는 인물 중 하나이다. 물론 독재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 역시 존재한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의 리더였던 그는 처음에는 기세 좋게 공산당에게 이기는가 했지만 결국은 본토를 모두 잃고 남쪽에 대만 섬까지 후퇴를 하게 된다. 심지어 지금 대만의 명목상 수도는 북경이다.


 또 하나 인터넷 서칭을 하면서 본 이야기는 미국의 링컨 기념관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규모는 중정기념당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한다. 그리고 기념당에 있는 장제스의 동상을 보려면 8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장제스가 죽은 나이가 89세이다.


날씨가 사진의 절반이다. 정말 웅장하다.

  햇볕을 가르고 계단 89개를 오르면! 장제스의 동상이 보인다. 대략 6미터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그 주변에는 곧 진행될 중정기념당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근위병 교대식의 주인공들이 엄청나게 각을 잡은 자세로 서 있다. 마치 마네킹처럼 그들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蔣介石 | 장개석

 장제스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중국 본토 방향이라고 한다. 끝내 본인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웃고 있는 동상이지만 대만의 전후 사정을 알고 보니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해서 국제사회에서 나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을 보면서 그는 죽어서도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6미터가 넘는 동상에서 나오는 아우라 같은 것이 있었다. 분명.


천장을 바라보면 대만의 국장이 보인다.

 우리의 눈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정교하게 조각되어있는 대만의 국장이라고 들었다. 역시 규모가 남달랐다. 정말로 거대했다. 


 

장제스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들

그리고 시간이 다 된 것인지 큰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우리가 아니 모두가 기다린 근위병을 교대하는 시간이다. 정말 돌처럼 서있는 근위병들이 마치 우리가 티비에서 보던 북한의 큰 행사같이 각을 맞추어서 교대식을 진행하였다. 정말 넉을 놓고 봐서 교대하는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옆에 있는 타이베이 시민이 나에게 저 근위병을 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신청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기만 해도 저걸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것 같았다.


 근위병 교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내부에 있는 장제스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의 생애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장제스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는다던지 학생들이 그와 관련되거나 중정기념당의 건물을 그려놓은 전시를 보고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뉠지라도 그가 '대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넉 놓고 바라본 근위병 교대식과 그의 걸맞은 엄청난 규모의 기념당과 그 주변 건물들을 마음껏 구경했다. 지금 왔으면 참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봤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공원을 다시 나오면서 태극권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했다. 들어갈 때나 나갈 때나 기를 잔뜩 받고 나갔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2018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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