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손자는 행복할 것이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만 91세의 생일을 지내신 지 얼마 안 된 여름, 장마가 계속되던 날 밤, 배가 좀 아프구나 하셨다가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가셨다. 119의 긴급출동과 대학병원 의사들의 조치는 신속했지만 3시간 만에 나를 제외한 아들들과 조카들이 보는 가운데 운명하셨다. 사인(死因)은 응급수술조차 할 수 없는 복부 대동맥 파열이라고 했다.
병원 응급실로 가는 중이라는 형님의 연락을 받고 내려가는 도중 정읍 즈음에서 운명하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몸에서 그대로 기운이 빠져 새벽 한 시의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앉아 호흡했다.
전례 없이 세계적으로 번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정부의 방역지침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회동은 무엇이든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었고 자발적인 사회적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빈소에 문상객의 조문은 내내 이어졌다.
돌아가신 날부터 이틀간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다행히 발인(發靷) 날 새벽, 하늘은 맑게 개이고 떠오른 초여름의 강렬한 햇살은 질퍽대던 선산의 흙 길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말려주었다.
건장한 손자들의 손으로 할아버지의 관이 운구되고 당신은 32년 전 홀연히 먼저 간 아내를 묻을 때 옆에 마련해 둔 자리에 묻히셨다. 아들 다섯에 손주 열명에 증손을 본, 일견 다복해 보이나 인생의 말년 내내 홀로 외로우셨을 노인이 영면에 드신 것이다.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일상의 날짜는 무심히 지나가고 어느덧 탈상 제사일이 되었다. 당신의 기쁨이던 장성한 손녀 손자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제사를 모시고 나자 안주로 차려낸 음식을 놓고 숙질(叔姪)이 모처럼 여유롭게 둘러앉았다.
백부와 숙부. 그러니까 이 글의 화자인 나의 형제들과 여러 조카와 질녀들이 함께 둘러앉아 각각의 아버지와 각자의 할아버지를 회고하였다.
손자와 손녀들이 아이에서 청년이 되기까지 할아버지는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인자함과 엄격함의 복합체이셨다.
자연스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들인 우리 형제들의 어릴 적부터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하나 둘 피어날 때마다 나의 조카와 질녀들은 눈동자 반짝이며 재미있어했다. 컴퓨터와 IT와 AI에 주로 관심 있을 디지털 세대이자 MZ세대의 청년들이지만 그들은 백숙부의 켜켜이 쌓인 아날로그 적인 옛이야기에 빠져들며 즐겁게 매혹되는 것이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동안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요?’라고 불평하는 조카들의 성화에 이야기 꽃이 줄줄이 피었지만 자리를 파하고 헤어지며 다음을 기약하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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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겨울에 큰 조카의 성능 좋은 스캐너를 빌려 몇 권의 두꺼운 앨범에 갇혀 누렇게 바래 가던 옛 필름 인화 사진을 한 장 한 장 스캔하여 디지털 이미지 파일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염두에 두었지만 후순위로 미루고 미루던 작업이었다. 몇 세트를 복제하여 메모리 반도체에 담아 분산 보관하겠다는,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숙원 사업을 한 셈이다.
빛바랜 흑백 사진과 지난 세기 80년대 이후의 칼라 인화된 사진을 모아보니 구두 상자 하나로는 부족했다.
창밖에 하얀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이던 밤,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에 새삼스레 취하며 어릴 적 나의 아이들과 형제들, 가족 친지들의 종이 사진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스캔하며 겨울밤을 새웠다.
그중에 한 장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우울한 감상에 잠겼다.
큰 고모부, 작은 고모부, 외숙부, 아버지, 백부와 아버지의 사촌이자 절친이신 당숙께서 잔칫날 교자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진이었다.
세월 앞에 인생이란 무엇일까? 지금 세상에는 이분들이 한 분도 안 계신다는 사실에 숙연한 기분으로 뭔가 깨달은 것처럼 주변을 잠시 잊게 했다.
일상에 매몰되어 한 계절, 한 해를 반복해 지내온 그 사이에 한 세대가 완벽하게 지나며 잊히고, 형제들도 나도 사진 속의 집안 어른들처럼 시나브로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휘발된 시간과 박제된 순간’을 숙연하게 들여다보며 나의 아이들과 조카들이 가까운 친척 어른인 이분들을 얼마나 기억할까, 이분들을 모두 한 번이라도 뵙기나 했을까 생각했다.
조카 항렬 보다도 우선 나 자신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의 사촌과 진외가의 어른들과 할아버지의 누이에 대해 알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았다. 한세대를 밀어 올려 보니, 나의 할머님의 형제들, 외할아버지의 형제들, 아버지의 고모와 고모부에 대해 나 자신도 아는 것이 너무나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외가 어른들을 뵌 적도 아득하지만 외가의 이야기는 더 드물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누군가 차분하게 얘기를 해 주신 적도 없었다.
촌수로 가까운 친척 어른이라도 자라면서 한 번도 뵙지 못했던 분을 떠올리고 행적에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 자라면서 그분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나 인품을 전해 들었다면 그 느낌과 감응이 아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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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현장에서 근무하다 휴가를 얻어 아버지를 뵈었던 어느 날, ‘내가 살아있을 때 고향마을 송동에 사는 일가의 가승보 (家承譜)를 출판하여 모두가 나누어 갖게 하고 싶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방대한 문중 족보와 별도로, 고향집의 뒷산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의 조부, 즉 나의 증조부 아래의 모든 자손과 자손의 배우자와 그 배우자의 부모를 서로 알 수 있게 대강을 정리한 가족관계보를 낼 것이니 네가 발행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즉 비용을 대어라는 하명을 받았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왜 내시려 하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출간 취지에 공감하였고 큰돈 들일 일은 아니라 흔쾌히 분부대로 ‘예, 알겠습니다.’ 하니 아버지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편찬의 실무자로서 단연 적임인 큰 형님을 재촉하셨다. 아버지의 고집과 형님의 노고는 참으로 의미 있는 가승보를 아버지 생전에 완성하였고 일가 모두에게 무상으로 나누셨다. 한 장의 사진이 새삼 말년의 아버지 고집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하였다.
나와 형제들은 우리들의 할아버지를 모른다. 막내 숙부가 세 살 무렵 갑자기 돌아가셨다 한다. 내가 젖먹이일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나와 동생들에게는 없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 손자가 부러웠고, 나이 드니 이제는 그런 할아버지가 부럽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손자 손녀는 인생의 선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남기고 싶은 글모음은 아버지가 남기신 작은 가승보에 더해 이제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가까운 집안 어른들을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성장기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싹을 돋게 한 소중한 씨앗은 앞에 얘기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탈상일에 조카와 질녀들과 줄줄이 피워냈던 이야기 꽃이 맺은 씨앗이다.
이 산문의 면면에 시간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싶다. 부모님의 어린 아들들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는 불가능한 꿈을 구현하는 들뜬 느낌과 함께, 지난 세기 중반 동족상잔 전쟁 이후의 가난했지만 성장과 번영의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대의 한줄기 뿌리를 기록한다는 보람도 있을 것 같다.
욕심으로는, 추억 속의 일상 이야기가 모여 먼 훗날 아버지의 증손자가 지난 세기에 아들 다섯을 낳고 기르셨던 증조부 증조모를 그려볼 수 있는 동화일 수 있다면 좋겠다. 줄줄이 풀려나올 글들이 나와 시대를 함께 살았던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에겐 시간 여행 상자가 되고 그들의 아이인 MZ또래에게는 꿈꾸는 상자가, 그들의 아이에게는 전래동화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