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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 Feb 22. 2022

굼벵이로 소라게 금붕어와 살기

회사 면접일과 보고 싶었던 연극 날짜가 겹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도 겹친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딴 길로 새서 다른 곳으로 갈지, 연극을 보러 가다가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고 쭉 모르는 곳으로 갈지 잘 알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별로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다가오는 것이 반갑지 않은 때에 아마 필요한 것은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다. 마음을 정리해야겠다 다짐하기 전까지 나는 살아만 있는 굼벵이가 된다. 굼벵이는 구글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성충이 되기 전의, 하얀색 불투명한 애벌레다. 어렸을 때 키운 장수풍뎅이는 성충이 되지 못하고 굼벵이 상태에서 죽었다. 그 장수풍뎅이 굼벵이를 어떻게 했던가.


아파트 화단에 흙과 함께 버렸다. 어쩌면 죽지 않았는데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꿈에서도 굼벵이가 나왔다. 자꾸 커지고 자꾸 집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무서웠다. 죽지 않은 채 버려진 많은 동물들은 자유를 되찾았을까, 아니면 흙속에 파묻혀 죽어서 더 큰 자유를 만났을까 아니면 무언가에 먹혀 자유를 잃어버렸을까.


두 가지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 하나는 장수풍뎅이가 되지 못한 굼벵이. 두 번째는 금붕어 두 마리였다. 빨간색과 검은색 금붕어. 금붕어 전용 먹이도 가지고 있었다. 베란다 탁자 위에 늘 있었다. 금붕어는 예쁘지도 않고, 어항도 예쁘지 않았고, 먹이를 먹고 점점 커지기는 했는데, 그게 어떤 보람을 준다기보다는 아 커졌구나. 좀 더 배가 부풀었구나. 괜찮을까? 그뿐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촌동생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빨간색 금붕어를 손에 쥐고 쥐었다폈다 하면서 그 금붕어는 죽었다. 죽어서 아마 부모님이 어떻게 처리를 했다. 나는 그때도 관심이 없었다. 금붕어가 진짜 죽었던 것인지, 그리고 남은 검은색 금붕어는 어떻게 됐었는지, 함께 죽었는지, 하나는 계속 키웠는지 그런 것들. 기억이 없다. 그보다는 사촌동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왜 물 속에 있는 그걸 집어 올렸지?


금붕어를 손에 쥐며 놀았던 사촌동생의 집에서는 소라게를 키웠다. 빨간색 소라 안에 징그럽게 생긴 갑각류가 있었다. 역시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그 동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이 새하얀 모래 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라게 두 마리는 인공 모래가 담긴 작은 바구니에서 살았다. 처음보는 질감의 모래였고, 바구니는 대리석 같은 광택이 나는, 둥그런 것이었다. 사촌동생네 집은 가구가 많지 않고 텅 비어 있는, 깔끔한데 해가 들지 않아서 낮에도 조명이 차가운 집이었다. 그 거실 한쪽에 놓인 소라게가 사는 인공모래가 담긴 동그란 바구니. 그 소라게는 어떻게 됐을까.


강아지 키우는 사람의 브이로그 영상을 본다. 그 유튜버는 작년엔가 고양이를 구조했다. 구조해서 다른 집에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키우게 되었다.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여자 둘이 사는 집.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 그 사람은 향수나 디퓨저를 치웠고, 고양이 간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으며 다른 할 일을 하다가도 고양이가 오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채널 초반엔 사고를 일삼던 강아지들은 어느덧 장성해 의젓해졌고 사람 손을 타는 동물은 그 아기고양이뿐이었다. 그 집을 지켜보는 것이 꽤 재미있어서 본 영상도 또 보고, 틀어놓고 할일을 하기도 하고 했다.


이 모든 생각은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할머니는 집에서 금붕어를 키우고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금붕어를 키운다. 금붕어 카페다 가게 이름이. 금붕어를 왜 좋아하는지 그런 설명은 없었지만 일단 금붕어는 키우기가 편리한 동물이다. 인테리어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엄마가 왜 금붕어를 키웠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엄마는 동물을 싫어했다. 금붕어 같은 것도 분명 안 좋아했을 것이다. 그 시절 엄마는 부업을 했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고객이 될 사람들이 집으로 올 때가 있었다. 집은 늘 깨끗하고 거실 선반 위에는 빈틈없이 시계나 성모상 같은 것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항을 사기 전까지 그 탁자 위에는 뭐가 있었는지. 아마 장수풍뎅이 집이 어항과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으니 풍뎅이와 금붕어 사이 잠깐 머무른 물건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부부는 고양이를 키운다. 적막한 공기가 흐를 때 고양이들 밥 챙겨주고, 사라진 고양이를 찾다가 관계를 회복하고... 아무래도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생물들은 바쁘다. 사람들 돌보랴 자기 취미하랴 인간 놀아주랴 먹이 먹어주랴. 밖에서 찾아 먹는 먹이가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용 생선 캔 따위 정말 맛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생물을 키우게 될지 누구와 함께 살게 될지 잘 모르겠다. 긴 시간 혼자 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살아있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만 무서운 만큼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었던 다른 존재와 기대어 살 수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멀리 떨어진 사람과 의지하며 살 수도 있고, 하늘나라로 간 존재와 교류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보이는 것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내가 느끼는 만큼, 내가 기억하는 만큼 뻗어나갈 수 있다. 지금 내 방엔 아무것도 함께 사는 생물이 없지만 나는 가끔 소라게를 떠올린다. 손 위에서 죽어가는 금붕어를 지켜본다. 그들 옆에서 굼벵이처럼 움직였다 멈췄다 하는 나를 상상한다.




2022.02.22. 화요일




모란디의 정물화. 글을 읽고서 이 그림을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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