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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 Feb 26. 2022

산책길에 일본어를 중얼거리다가

산책을 하다 구토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고. 그러다 <구토>라는 제목의 소설이 생각나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밤에 집앞을 걷다 보면 대체로 어떤 단어나 대사가 생각이 난다. 요즘은 일본어로 된 말을 자주 떠올린다. 일본 영화를 보고 일본 드라마를 보고 일본에 관한 책을 읽고 일본어 회화 공부도 가끔 한다. 일본에 간다면 무얼 할까 상상하다가 그곳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만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환상을 버리려 한다.


일본에 간 적이 있다. 갔을 때 음식이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런 음식만 찾아 먹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대체로 간이 세고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많았다. 라멘은 정말 맛있었다. 면 요리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도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최근에 밀가루 끊기를 시도한 이후로는 모든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게 됐다.)


일본의 첫인상은. 덥고 습하다. 그리고 기차역이 예쁘다. 좀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가려고 교외로 통하는 기차를 탔는데, 기차역이 나무로 된 문과 기둥으로 되어 있어 고즈넉한 느낌이 있었다. 이외에 기억나는 것은 마트에서 사먹은 포도맛 젤리와, 가게 사장님과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말이 안 통해서 애를 먹었던 기억.


다녀와서 한동안 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대학에 다니면서 우울한 기분이 아주 길게 지속되던 시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일본어로 된 것을 찾거나, 일본에 가고 싶어하거나, 일본과 관련된 무언가를 직업으로 삼아볼까 생각했다. 도피처처럼 일본어로 된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다음 날 수업에 못 가고 그랬으니까. 그때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잘 안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돌파가 어려운 것들이 있다. 하지만 떠나는 것이 무언가 가져다준다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걸 받아들 수 있을까. 모든 걸 그대로 둔 채 커다란 가방에 짐을 싸 문 밖으로 나간다면 나는 도리어 도착한 곳에서 매일매일 돌아갈 곳을 상상하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러므로 오늘도 아마 영화를 본다. 어제도 보았던 영화를 다시 재생하면서 그 세계를 잠시 본다.




2022.02.26. 토요일




그저께 본 영화에 나온 매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에 대한 온갖 환상을 갖기에 적합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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