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타이밍
아닌 것을 알면서도 쥐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다. 누가 보아도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꼭 붙들고 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무언가와의 연을 끊는 것을 '손절한다'라고 한다. 네이버 오픈사전에 나와있는 ‘손절’은 노력해도 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일 경우 노력을 포기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로 표기되어있다.
주식에서도 손절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앞으로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며 그 주식을 파는 행위를 뜻한다. 손절을 제때 하지 않으면 막대한 피해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그 타이밍을 제대로 파악하여 매도를 해야 큰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타이밍을 안다고 하더라도 결심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면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은 사람들이 왜 나오겠는가. 이미 잃은 돈이 아까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오르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미련하게 붙잡고 있다가 더 큰 손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주식뿐만이 아니다. 일도, 사람도, 사랑에 있어서도 그 ‘때’를 알고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신호’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며, 굳건했던 관계에 혹은 믿음에 금이 갈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손절 타이밍'일 수 있다. 알면서도 더 앞으로 나아갔다가, 큰 손해를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그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결단하고 떨쳐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각자가 모두 다른 타이밍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나만의 타이밍이 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남들이 보기엔 조금 느려 보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의 인생에는 다 정해진 타이밍이라는 게 있고, 너만의 페이스 그대로 가다간 그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허나 나는 이제까지 지나온 나의 모든 순간들과 타이밍들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손해보지 않겠다고 서둘렀다면,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추억들을 과연 가지게 될 수 있었을까? 그런 경험들을 기반으로 깨닫고 배우며 성숙해질 수 있었을까? 그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설령 연애에서의 손절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과 아름다운 추억을 얻었다. 설령 친구 사이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손절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누구인가 알 수 있게 되었다. 설령 답이 없는 회사를 생각보다 오래 다녔다고 하더라고, 그 안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단단해질 수 있게 되었다. 설령 주식의 손절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인생을 배웠다.
타이밍을 단번에 눈치채고 서둘러서 연을 끊었다고 했더라도 '시도라도 해볼걸'이라며 미련이 남을 수 있다.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라면 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미련 없이 끝내는 것을 택하겠다. 그러니 더 이상 ‘조금만 더 빨리 할걸’이라며 지나간 것들을 후회하고 곱씹지 말자고. 그 시간에 지금 내 인생에 있는 타이밍을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며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모두가 너무 앞서지도 않은, 너무 늦지도 않은 본인의 타이밍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