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수냐 dream chaser냐
나는 현재 아부다비에 거주 중이다.
올해 1월, 나는 한국에 있었다.
당시 한국에선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길거리에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마스크를 낀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났고, 단지 출산을 앞두고 있는 친한 언니를 만났을 때에는 조금 걱정됐지 그뿐이었다.
나는 신종플루에 걸린 적이 있다. 내가 고3이었을 때, 신종플루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다행히도(?) 나는 수능이 끝나고 신종플루에 걸렸고, 그때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누가 내 머리에 폭탄을 심은 줄 알았다. 머리에서 두근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째깍째깍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하나? 정말이지 그 소리가 머리 전체를 너무 울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누워있던 베개를 만져보면 그 베개는 머리의 열 때문에 뜨거워져 있었고,
밤새 머리카락과 관자놀이를 쥐어짜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냥 누워서 병원 갈 시간만 기다리는 그 시간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 확진을 받고 내 방에.. 격리되었다.
할머니가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친척네 집으로 가서 생활하셔야 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서 타미플루 약기운에 헤롱헤롱 한채 잠만 자고 일어나면 조그만 방구석에서 무언가 할 일을 찾아 하다가도 쉽게 질리고 또 자고
꼼짝없이 방에 갇혀 혼자 있던 그 시간은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
물론 현재의 상황은 그 이전의 어느 바이러스들보다 훨씬 참혹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런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정말이지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줘야 한다는 것.
2월의 아부다비는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평화로웠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며 하루하루 늘어가는 한국의 확진자 수를 체크하는 나는 매일 마음을 졸였고
그들의 나라에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아시아 쪽 크루를 제외한 다른 국적의 크루들은 정말 그 심각성을 몰랐다.
2월 초였나 하루는 이탈리아 크루와 코로나에 관해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코로나가 심각하지 않았었다. 그 크루는 코로나라는 것이 소문이라며, 난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에티하드 항공은 2월에도 베이징 비행을 운행하고 있었다. '안전과 위생'이라는 이유로 장갑과 마스크는 허용됐지만, 베이징을 제외하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곳들은 그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란, 이탈리아 등 유럽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가 심각해진 3월
처음엔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을 때에도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하지만 옆 나라 이란의 상황이 심각해서인지 중동도 코로나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3월 중반부에 들어가면서 여러 나라들이 국경을 닫기 시작했고, 3월 셋째 주 나는 인도 비행에 다녀왔는데 국경을 닫기 전 마지막 비행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한 승객들로 가득 차 비행은 만석이었다.
이때까지도 회사에서는 마스크는 불가, 장갑 끼는 것은 허용하였다. 손을 깨끗이 하는 게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룰을 따라야 한다.
이 날 비행에선 많은 승객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았는데, 이를 본 필리피나 사무장이 본인 몸이 안 좋아졌다며 마스크가 담긴 구급상자를 열고 크루들에게 마스크를 낄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난 사무장에게 너무 고마웠다.
사실, 비행을 하며 많이 보았다. 마스크를 끼게 해달라고 건의하는 아시안 크루들.. 우리는 아마 각자 그들의 나라에서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상황이 심각함에도 마스크를 허용하지 않는 사무장과 이에 대해 불만이 없는 크루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손을 닦고 장갑을 바꿔 끼고 소용이 없는 걸 알면서도 기내에 돌아다닐 땐 숨을 최대한 참았다.
대부분 서양의 마스크 문화는 오해를 받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의 마스크 문화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본인의 건강을 예방하는 차원이지만 서양에서는 얼굴을 가리는 행위 즉 마스크를 쓰는 것이 테러 등의 좋지 않은 인식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료에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그들의 그래 왔던 문화가 이해가 가면서도, 그런 당연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걱정이 되었다.
며칠 뒤 3월 24일.
정부 지침에 따라 2주간 UAE의 모든 비행이 전면 금지가 되었다.
모든 비행은 운항이 금지되었고, 모든 크루는 숙소에서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하였다.
아부다비는 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과는 다르게 stay home 정책을 펼치고 있어 집에만 있어야 한다.
정말 필요한 물품(긴급상황)을 사기 위한 경우에만 나갈 수 있으며
약국과 슈퍼마켓을 제외한 다른 곳들은 전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자가격리를 하는 첫 2주 동안은 이조차도 금지되어 집에서만 있어야 한다.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시간인데, 그마저도 같은 층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배치되어 고작 100걸음이 채 안된다.
또한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통금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 시간 동안 헬리콥터로 거리를 소독하기 때문에
통행 자체가 금지되어 위반할 경우 약 70만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리고 현재 아부다비에서 외출할 시, 마스크와 장갑은 필수이다. 위반할 경우 이 또한 벌금을 내야 한다.
격리가 시작되고 한 달이 넘은 현재까지 집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밤 8시 우리는 우리들만의 의식을 치른다.
모두가 발코니로 나와 누구는 노래도 틀고 누구는 접시를 두들기고 어떤 사람들은 박수도 치고 소리를 지른다.
당연했던 시간들이 당연하지 않은 현재 이 상황에서, 잠깐의 5분 동안
집에 갇혀 하루를 보낸 각자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건 아닐까..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앞 건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리는 크루들을 보며 우리는 그렇게 그날의 하루를 위로했다.
하루는 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5분 넘게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는데 처음엔 조금 무서웠다. 나중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예전에 동물병원을 지나가다가 자기 몸짓만 한 크기에 갇혀 아무 의욕이 없는 강아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다.
강아지는 계속 그 작은 공간을 미친 듯이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그 안에 갇힌 채 계속 짖으며 돌아다니는데 말 못 하는 그들의 심정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자가격리를 당해보니 동물들 심정을 조금은 알겠다.
그렇게 시작된 집콕 생활.
나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인생의 숙제들을 맘껏 즐기며 나름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 나에겐 과분한 거라며 망설이고 주저했던 것들을 하며 조금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이 나태한 하루하루에 어떻게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19살 신종플루에 걸려 방구석에 갇혀서 우울 열매를 먹었던 그때와는 달라지려 한다.
2020년 내 서른 살,
20대에는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30대에는 옆을 보고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강제적으로 얻은 이 시간들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이 넘쳐나는 시간이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쉼'이 아닐까? 하며..
반백수냐, dream chaser냐
그건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 '쉼'이 내 앞으로의 시간들을 바꿀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하며!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 거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