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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29. 2023

나대지 마

오늘은 24년전 처음만난 동기들과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무슨 동기냐 하면 다름 아닌 발령동기입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처음 발령 받은 곳이 지적장애 특수학교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론으로만 접하던 특수교육의 실전을 경험한 곳. 

그 학교에는 중등에서만 10명의 동기가 함께 발령을 받았습니다. 

언니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지요. 도대체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몰랐던 직장생활을 

동기들과 5년간 함께 하며 선배가 되었습니다. 각 특수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특수학급으로 흩어졌던 동기 여섯이 오랫만에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 나대지 말자."

오늘의 건배사입니다. 경력 20년이 넘어가고 이제는 베테랑으로 불릴 법 하지만 각자의 고민은 끊이지 않습니다. 조울증 학생을 돌보며 자신조차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게 된 언니부터 특성화고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특수학급 소속인 친구의 이야기까지 사례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다가 내린 결론이 바로 나대지 말자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특수학교에서 근무해서 굉장히 주인의식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쳤잖아. 그러다가 특수학급에 갔는데 그 태도가 몸에 베어있더라. 그때는 통합교육이 뭔지도 몰라서 알려주느라 일반교사들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고. 그래서였을까. 여전히 우리반 아이는 내 아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 그래서 오히려 문제인거 같아."

매번 원적학급 교실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를 지도하느라 지친 친구의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인식도 많이 변했어. 젊은 선생님들은 담임이 우리반 아이를 제반 소속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거든.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담임이 해결하려고 노력도 하더라. 그걸 기다려주고 믿어줘야하는데 우리는 그걸 못해. 내 아이 일이니까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할것만 같지. 그래서 오바하고 담임 역할까지 해결해주는 경우가 생겨. 요즘 젊은 특수교사들은 안그래. 기다려. 담임이 해결하기를.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니까. 오히려 담임에게 역할을 안 주는 격이 된다니까."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 나대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역할만 하자. 우리반 아이는 내 아이는 아니야. 우리의 아이지."

몇일 후 하연이가 교실에서 친구와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교과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담임선생님은 아직 인지를 못하고 계셨지요. 

"선생님. 하연이가 반 친구에게 욕을 했나봐요. 수업 시간에 스트레스 받아서 혼자 욕을 한 모양인데요. 그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본인에게 했다고 생각하고 기분 나빠서 울었대요. 우리 하연이가 너무 말썽을 부리는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째요. 애들이 우리 하연이 미워하면 안되는데."

나는 언제나 그랬듯  담임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애들한테 미안하고 고맙다고 뭐 과자라도 주면서 인사를 해야할까요? 애들이 하연이랑 함께 있는게 아름다운 기억이었으면 싶은데 아닐까봐 걱정이에요."

담임선생님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일이 있었군요. 제 수업이 아니라 몰랐네요. 제가 올라가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께요. 그리고 아이들이 하연이에게 정말 잘해줘요. 여자 아이들 몇몇이 말도 시켜주고 잘 챙겨줘요. 그 모습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정말 고마워요. 지난번에 하연이 없을때 제가 하연이 챙겨줘서 고맙다고 인사는 했어요. 그리고 과자 사주고 그러지 마세요. 고맙다는 인사가 필요하면 제가할께요. "

선생님은 낮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20여년동안 "그건 선생님이 좀 해주세요. 같이 데려가긴 힘들꺼 같아요.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데 특수학급에서 수업 데려가서 해주시면 안되요."같은 말만 들어온 내게 그 말은 커다란 울림이었습니다. 나는 하연이 담임선생님의 진지한 태도에 순간 카리스마가 느껴졌습니다. 

"네 선생님. 그럼 힘드시겠지만 선생님께 맡길께요."

나대지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오늘도 나는 살짝 선을 넘어버리고 만 것이지요. 

얼마후 선생님에게서 인터폰이 왔습니다. 

"제가 알아봤어요. 울었다는 친구랑 이야기도 했어요. 하연이가 너를 타켓으로 욕을 한것 같냐니까 아니라대요. 꼭 자기보고 한건 아닌 줄 알지만 기분은 나빴다구요. 그럴수 있다고 인정해줬어요. 특수학급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시고 하연이 지도한다하셨다고 말도 해줬어요.그랬더니 그 친구도 기분이 풀어졌는지 알았다며 가더라구요. 저도 하연이에게 욕하는거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할테니 선생님도 한번더 지도해 주세요."

담임 선생님 인터폰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올라가서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해야하나 망설이던 나에게 선생님은 한 번 더 쐐기를 박아주셨습니다. 

"제가 할께요."

그 아이의 담임은 원적학급 선생님입니다. 출석 체크를 담당하시는 것처럼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공동담임이긴 하지만 내가 가르쳐 줄수 있는 상황은 한정적입니다. 매번 반에서 하연이와 반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차라리 특수학급 교실을 없애고 모든 통합수업에 들어가서 지원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다르게 특수교사는 특수학급 교실에서 반 아이들과 분리된채 수업을 합니다. 아이들이 느끼기에 나는 그 아이들의 교사가 아닌 하연이의 선생님일 뿐이지요. 그러니 자신들의 선생님인 담임 선생님과 수업 장면에 함께 있는 각 교과 선생님들이 책무성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해 줘야합니다. 문제 행동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말이지요. 물론 아이들 숫자도 많고 일반 아이들 보다 더 많은 요구를 가진 특수교육 대상에 대하여 능숙하게 다룰 수 없는 두려움은 이해합니다만 생각의 출발은 저래야한다는 거지요. 각자의 위치에서 통합을 위해 노력할때 하나의 완성된 방향으로 교육이 나아갈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반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아이들도 하연이랑 지내면서 배우는 점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런게 교육이죠. 조금은 불편해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배우는 것."

나는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나대지말자.'는 묵언의 암시를 보냅니다. 내가 교육할 수 있는 부분과 친구들과 지내는 센스는 교육하지만 그 다음은 담당해줄 선생님과 함께 배워나갈 반 친구들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려구요. 그냥 통합교육이 아닙니다. 이렇듯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발이라도 나갈 수 있는 것이 통합교육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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