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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Dec 01. 2023

혹한의 식물을 지키고 싶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식물등을 켭니다. 

거실에는 3개의 식물등이 있습니다. 

햇빛이 짧게 들어오는 겨울에 대비하여 식물등을 준비했는데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빛을 쬐기 시작해서 잠자기 전에 비로소 식물등을 끕니다. 남편은 전기세가 얼마인데 식물등에, 서큘레이터에  식물에게 과다 투자가 아니냐며 불만이 많은데요. 식물도 생명이잖아요. 추운데 나만 따뜻하게 있을수는 없지요. 억지로 우겨서 식물등으로 돌봅니다. 하루종일 식물등을 쐰 식물은 겨울임에도 잘 자랍니다. 작은 순을 똑똑 잘라서 화분에 꽂아두었던 장미허브도 수북하게 자랐습니다. 식물등 덕분에 수분이 부족해 자주 물을 주니 더 성장새가 좋습니다. 


 여름처럼은 아니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비록 겨울이라 모든 조건이 식물에게 맞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생명 부지를 하고 있는 거지요. 

오늘은 유독 날씨가 춥다고 하여 든든히 차려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젯밤 사이 찬바람이 세게 분 모양입니다. 집에 있어도 문풍지 사이로 찬바람이 세어들어왔는데요. 밖으로 나서는 순간 알았지요. 오늘의 추위가 보통날은 아니라는 걸요. 아파트 문을 나서다가 슬쩍 정원을 보았습니다.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들이 싸그리 갈색으로 변했네요. 언제 그랬냐 싶습니다. 몇일 전까지 초록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거든요. 아차 싶어 정원에 있던 장미허브를 찾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데 어쩜 저렇게 잘 자라나 싶게 무럭 무럭 자라던 녀석인데요. 아뿔싸. 요 몇일 강추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네요. 적당히 날씨가 더울때는 버텨내던 식물도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감당하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너도 나도 할꺼없이 말라비틀어져 언제 초록이었나 싶습니다. 오로지 상록수 몇 그루만이 그 추위를 버텨내고 있네요. 

집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매번 신경써서 돌보는데도 유약한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요. 막상 매서운 추위 앞에 서니 아무도 버텨내지 못한 것들을 집안 화초들은 평화롭게 이겨내고 있었구나 싶네요. 그러면서 아이 생각이 납니다. 아이도 온실속의 화초처럼 의존적으로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강추위 같은 어려움은 부모가 나서서 지켜주고 안아줘야지 싶었습니다. 강해지라고 자칫 한겨울의 추위같은 어려움에 내몰았다가 아이가 버티지 못하고 끝을 볼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시험기간이라 애들이 너무나 초 예민해.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이 나올거 같다니까. "

중2 딸아이가 시험기간의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시험이 일주일 밖에 안남았어. 게다가 수행평가는 몰아치고. 애들이 모두 제정신이 아닌거 같아."

"너는 어때? 너는 괜찮아 보이는데."

우유와 달큰한 도너츠를 맛있게 먹는 딸아이를 보며 물었습니다. 

"나도 스트레스 받지."

"그래? 너무 평안해 보이는데. 시험점수가 뭐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니. 시험 까짓거 아무것도 아닌데."

막상 시험 점수가 나오면 태연하지 못한 나는 아닌척 한마디 건넵니다. 

"그 정도는 이겨내야지. 세상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그나저나 너 스터디 카페 어디로 갔니? 혹시 거기로 또 간건 아니지?"

아이는 대답을 망설였습니다.아이는 집에서 꽤먼 스터디 카페를 다녔습니다. 시설이 깨끗하고 분위기가 좋다면서 다녔는데요. 어느날 성범죄자 알리미에서 그 건물에 성범죄자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곳 말고 다른 스터디카페를 권했는데요. 아이는 막무가내로 그 곳을 다닌다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너 11시 가까운 시간에 집에 오잖아. 그런데 위험한 사람이 사는 곳에 왜 다니는 거야."

"안 위험해. 그 시간에도 사람들 많아. 다들 돌아다닌다구. 성범죄가 있다고 꼭 그 근처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

아이는 생각을 꺽을 것 같지 않습니다. 시험 점수에는 태연한척 연기라도 할수 있었지만 이건 사안이 달랐습니다. 

"너 그럼 그 스터디카페 옆에 재개발 하는 건물쪽으로 이사가는 것도 괜찮겠네. 그 텅빈 공간들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수도 있는데 거기서 살고 학교 다녀도 괜찮아? 왜 우리가 무리를 해서라도 이 큰길에 있고 안전한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아무래도 이 공간이 안전하니까 그래. 그런데 너는 일부러 그 건물로 공부를 하러 가고 야밤에 그 동네를 돌아다닌다는 거야? 성폭행 당하는게 네 잘못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위험한 공간에 너를 데려다 두지 않는거 너를 아끼는 지름길이라는걸 왜 몰라."

세상도 모르는 아이가 위험한 공간에 자꾸 가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건 백번이고 만번이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식물들을 이 칼바람 혹한의 겨울에 외부로 내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크게 동의하는거 같진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 찬바람을 쐬어보고 버티어보겠다는 건데요. 나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게 있는거지요. 스스로 고통을 겪어보겠다는 아이와 그 바운더리를 좁게 잡고 싶은 나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한동안 계속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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