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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Jan 26. 2021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일상, 깨달음

2021년을 맞이하며 계획한 것들 중 하나가 브런치에 일주일마다 글 한 편을 업로드하기로 결심했다. 약 3주간은 미리 써놓은 글이 있어서 따복 따복 글을 올릴 수 있었다. 4주째인 오늘 한계치가 왔다. 어쩌겠는가. 1월부터 결심을 깨고 싶진 않으니 요즘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들이라도 풀어놓을 수밖에.      


최근에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은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뒤늦게 시작했다. 순간의 기분과 감정에 충실한 나였으나 올해 마흔. 나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생각은, 내가 마음에 두고 꺼내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월급 받은 기분 좀 낼까 하고, 치킨을 시켰다. 여러 브랜드 치킨도 많았지만, 하필 그날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전단지를 보고 무심결에 시켰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치느님이 배달 오셨는지 초인종이 울렸다. 우렁차게 대답하며, 현관문을 열자, 헬멧을 착장하고 함박웃음을 짓는 중년의 남자분이 서 계셨다. 건장한 체격에 어찌나 활짝 웃는지, 상대방도 기분 좋게 만드는 웃음이 아닌가. 

    “처음 주문하셨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맛있으면 또 시켜주세요.” 

라고 건네는 인사에, 이 한 마디가 뭐라고 기분 좋아진다. 다정하게 인사말을 건네고 싶어도 잠깐의 낯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말이 아니던가. 이렇게 멋들어지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잠깐의 뻘쭘함을 참을 수 있는, 이 힘을 나는 용기라 부르고 싶다. 그 당시에는 배달 전문 업체가 없었던 때이다. 치킨집 사장님이 닭도 튀기고, 배달도 맡아하던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기분 좋은 첫 만남 이후로, 치킨 10마리를 시켜 먹고, 한 마리를 공짜로 먹게 되었다. 

    “쿠폰을 10개나 모으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희가 양을 넉넉히 넣었습니다.” 

열 개의 쿠폰을 모아서 사 먹는 공짜 치킨뿐만 아니라 사장님의 감사함도 전달되어, 치킨집의 열혈 고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한 마음을 입말로 전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분이다.      


  치킨 집 사장님을 떠올리면 또 다른 한 분이 딸려 나온다. 이제 그분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몇 년 전 충남에서 일을 하다 전북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특성화(실업계) 고등학교에는 처음 근무를 하게 되어 마음이 복잡했다. 학생들이 보통이 아닐 텐데, 나는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나보다 덩치 큰 아이들한테 내가 잡아먹히지나 않을까. 학교는 왜 이렇게 시골 구석에 있는 것인가. 새로운 근무지가 결정 나고,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대감 없는 두려움만 자꾸 커져 나갔다. 제가 이 학교에 올 사람입니다, 하고 첫 방문 날짜를 잡아보기 위해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에 마음은 풍선 터지듯 확 쪼그라드는 참에, 

   “안녕하십니까. 0000 고등학교입니다.” 

라고 전화를 받는다. 중년 여성의 푸근한 목소리.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엉켜 있던 마음속 실타래가 주르륵 풀린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발령받은 김 00입니다.”

라고 말을 하자마자, 

   “어머~~~~~~~~~~~~~ 반가워요, 선생님. 저는 교무실무사예요.” 

기대 이상의 반가움을 표현해주신다. 오호라, 이 학교 아니 이 실무사님이 계신 곳이라면 가볼만하겠는데. 사람 마음 알 수 없다더니, 나는 실무사 님의 목소리에 홀딱 빠져 금세 마음이 바뀌었다. 며칠이 지나고 학교에 찾아가 교무실무사님을 만나 뵙고, 이 학교가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학교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푸근하고 넉넉하게 인사하시는 모습.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오셨어요.” 

힘찬 목소리와 처음 본 사람에게도 몇 번 본 것 마냥 인사말을 건네주신다. 그 모습에 긴장하고 온 학부모들의 마음도 무장 해제시켜버린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욕도 잘하고 성질도 잘 내는 아이들과 복 작복 작대다 결국 아이들이 욱하다 내뱉은 몇 마디에 나는 눈물 흘린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셔서 나 대신, 

    “저런 @#$%^$%&$^&$%&$#$%. 여기가 지들 안방인 줄 알아.” 

라며 걸쭉하게 뽑아내신 진정한 마음의 소리에, 내 눈물은 멈추고, 마음은 개운해졌다. 몇몇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무실무사님을 만나 보았다. 학교 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실무 사라는 직함이 낯설 것이다. 교무실 일을 보조하는 역할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학교 안은 다양한 사람들이 구성을 이루고 있다. 교사, 교무실무사, 영양사, 조리종사원, 행정업무 담당자, 미화원, 방과 후 강사, 스포츠 강사, 배움터 지킴이 등등, 학교라는 단어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모여있다. 이제까지 만나본 학교 안의 사람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일을 가장 사랑하고, 즐기며 하신 분이 바로 특성화고에서 만난 교무실무사님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중요하지 않구나,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구나를 실제 사람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학교 안의 여러 일 때문에 눈물짓는 사람들은 그분을 찾아가 하소연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고, 머리를 자르거나 새 옷을 입은 날이면 가장 먼저 찾아가 하루를 살아갈 기분 좋은 말 몇 마디를 얻어 오기도 했다.      

 

   나는 치킨 집 사장님, 교무실무사님처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왜 갑자기 사람에 대해 관심이 가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을까.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던 날, 2020년 12월 31일이었다. 책을 빌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하고 싶었으나 이런 말을 한다는 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하고는 싶어 망설이다, 결국 말을 하기는 했으나 너무나 작은 소리로, 너무나 빠르게 해 버려서 상대방이 알아 들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도서관을 나오는 길에  나는 이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구나. 나이 먹는다고 알아서 척척 되는 것이 아니구나. 살아가면서 매 순간 놓치지 않고 연습하는 것이었구나. 12월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는 상대방에게 힘을 주고 싶었는데, 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다니. 치킨집 사장님과 교무실무사님의 인사는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딸려 나온다. 나는  ‘말의 힘’을 받아 오기만 했지, 내가 ‘말의 힘’을 내뿜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달라져야겠다. ‘말의 힘’을 전달하는 한 사람으로! 내가 느끼는 고마움과 반가움을 한껏 담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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