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쉼, 가족을 위한 수고
<오늘의 기본> - 소원
p.285) 그런 안락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라는 마음가짐, 더 나아가 생활에의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안락함은 편안함이다. 편안하다는 것은 쉼을 의미한다. 몸이 아프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 세탁기가 없던 시절. 빨간 고무대야에는 항상 무언가 담겨 있었다. 어떤 날은 옷이, 어떤 날은 이불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바쁜 엄마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빨래판을 대야에 걸쳐 놓고 왼손은 옷을 받치고 오른손은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며 문질렀다. 이불빨래는 맨발로 대야에 들어가 질근질근 밟았다. 그땐 고통이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바쁜 엄마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퍽 뿌듯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빨래와 청소는 고통이 되었다. 걸레를 손으로 빨고 무릎을 꿇은 채 방바닥을 박박 닦고 나면 어깨와 무릎이 저려 왔다. 양말 몇 개만 빨아도 어깨가 욱신거렸다. 어느 순간 쾌적하고 깨끗한 집보다 고통 없는 몸이 더 중요해졌다. 청소를 미루면 쾌적하진 않지만 고통은 없었고, 고통은 없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불편한 마음의 원인은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책임감의 무게였다.
아이들이 자라고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일은 점점 뒷전이 되었다. 크게 벌진 못하지만 일을 놓기엔 경력도 나이도 아쉽다. 그렇다고 가사 도우미를 쓰기엔 부담스럽다. 결국 마음이 불편해도 눈 질끔 감고 청소를 미루는 몸의 편안함을 택했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 해야 할 일 목록 1순위는 집정리이지만 현실은 늘 밀려난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 편안함이란 결국 고통 없는 쉼이라는 것을.
이쯤에서 '안락함을 위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저분한 집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건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집안일이 쌓여갈수록 '왜 나만 해야 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고 그 생각은 곧 짜증으로 화로 가족을 향한 날 선 말로 바뀌었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엄마를 위해 빨래를 하며 느꼈던 뿌듯함. 그 감정의 뿌리는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집안일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그저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기쁨은 사라졌다.
나에게 안락함은 곧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다. 편안함이 안락함이라면, 나는 가족이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눌 때 가장 편안하다. 짜증이 아닌 미소를, 냉랭함이 아닌 따뜻함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고단함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라 생각한다. 삶의 먼지를 닦아내듯, 빨래와 청소 같은 평범한 일상이 가족에게 편안함을 제공한다면 그 또한 나의 기쁨이자 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