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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Jan 25. 2021

샤넬백이 있지만 에코백을 듭니다

샤넬백을 사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샤넬백을 갖고 싶었다. 회사 동료들이 결혼을 하면서 예물, 혼수로 샤넬백을 하나씩 장만하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가면 다들 하나쯤 어깨에 메고 다니는 샤넬백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만 샤넬백이 없는 것 같았다. 20대 때는 영롱하게 빛나는 샤넬 금장 로고가 왜 그렇게 예뻐 보이고 욕심났는지.  

20대 중후반의 내 머릿속은 샤넬백으로 가득했다. 샤넬백은 말 그대로 내 로망이었다. 백화점에 가격을 알아보러 가니, 샤넬백은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기 있는 가방은 이미 웨이팅이 걸려 있었고, 언제 재입고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샤넬백은 매년 가격이 올랐다. 사람들은 비싼 가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전히 샤넬백에 열광했다. 샤넬백을 되팔아도 차액이 남는다고 하니 괜히 '샤테크'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샤넬백을 사러 파리에 간다고?

더 늦기 전에 샤넬백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건 20대 후반이었다. 어차피 살 거라면 1년이라도 빨리 사서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은 파리와 한국의 샤넬백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지만 5-6년 전만 해도 파리가 훨씬 쌌다. 한국에 입국할 때 자진 신고해서 세금을 납부하는 것까지 해도 한국 백화점에서 사는 것보다 몇십만 원은 더 쌌다.
때마침 휴가가 나와서 여행지를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리로 마음이 기울던 참이었다. 샤넬백이라는 명분이 생겼는데 여행지를 파리로 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샤넬백을 사러 혼자 파리에 가기로 했다. 여행을 간 김에 꼭 가방을 사 와야지, 이번이 아니면 영영 내 인생에 샤넬백은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tobistj, Unsplash



파리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3일. 하루는 미술관에 가고, 하루는 가방을 사러 돌아다녔다. 파리 시내의 큰 백화점 두세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가방은 없었다. 매장 직원에게 내가 원하는 가방 사진을 보여줬지만, 그 가방은 시즌 백이라서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빈 손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백화점으로 향했다. 여기마저 가방이 없다면, 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또 가방을 사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간 그 백화점에 내가 원하는 가방이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 가방을 사겠다고 했다. 내 인생 최대의 지출을 한 설레는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나의 첫 명품가방. 나는 자진 신고해서 세금을 납부하고, 당당하게 샤넬백을 메고 출국장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샤넬백 들고 버스 타면 사람들이 다 짝퉁인 줄 알아. 샤넬백 사기 전에 차부터 사야 해."

샤넬백도 있고, 차도 있는 선배가 말했다. 당시에 나는 운전도 하지 못했고 차도 없었다. 샤넬백을 메고 다니기 위해 차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식을 가는 날이면 샤넬백을 메고 버스도 타도, 지하철도 타고 다녔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짝퉁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수인가. 내가 이게 찐 샤넬인 걸 아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샤넬백=행복" 이 아닌 이유

여느 물건이나 그랬던 것처럼 샤넬백이 주는 행복도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샤넬백 하나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줄 알았지만, 순간이었다. 샤넬백을 산 그 순간만 행복했다. 내가 돈 벌어서 온전히 내 힘으로 첫 명품백을 장만한 것이 그저 기특하고 뿌듯할 뿐이었다.

막상 샤넬백이 있으니 들고 다닐 일이 없었다. 결혼식도 아닌 평범한 날 들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옷장 한편에 모셔두었던 샤넬백. 시간이 지날수록 샤넬백에 대한 내 관심과 애정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샤넬백은 그저 '결혼식 가방'에 불과했다.  "나도 샤넬백 가방 하나쯤은 살 정도로 먹고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표식이라고나 할까.

샤넬백은 성공한 여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다. 샤넬백을 들고 있으면 마치 나라는 사람까지 명품이 된 것 같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은 한낱 샤넬백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먼저다

내가 샤넬백을 갖고 싶다고 할 때마다 우리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명품만 사면 뭐하니?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라며 등짝을 때리셨다.
"사람이 명품이어도 명품을 들어야 더 빛나 보이는 거야!"


나는 지지 않고 말했다. 이제는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십분 이해가 간다.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아무리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녀도 부럽지 않다. 단지 '신상인가 보다, 예쁘다!'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나도 명품 가방을 사야겠다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샤넬백을 산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일 년에 샤넬백을 드는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요즘 나는 에코백이 제일 편하고 손이 자주 간다. 360일 에코백을 들고 5일 정도 샤넬백을 든다. 아니 어쩌면, 5번보다 적을지도 모르겠다.


샤넬백을 사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샤넬백 산 것을 후회하느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그때 샤넬백을 사지 않았더라도 그 돈을 분명 다른 곳에 썼을 것이다. 샤넬백은 이렇게 현물로 남아있으니 꽤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만약 20대 후반에 샤넬백을 사지 않았더라면, 명품백이 결코 내 삶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을 '더 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요즘 매일 글을 쓰며 성취감을 느끼고, 책을 한 권씩 완독 할 때마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샤넬백을 산 순간보다 지금의 나 자신이 더 기특하다. 샤넬백을 산 그때의 나보다 에코백을 든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든다.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샤넬백은 나에게 행복의 본질을 알려주었다.

명품백보다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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