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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May 14. 2023

시계를 쳐다보지 않은 게 얼마만이더라?

모처럼 약속이나 외출 예정이 없는 일요일이다. 창문 사이로 흘긋흘긋 새어 들어오는 아침햇빛이 너무나도 선명한 쪽빛이어서 자연스럽게 '묵혀두었던 겨울 이불을 치우자'는 계획이 즉흥적으로 생겨났다. 세탁기에 이불을 쑤셔 넣은 다음, 어차피 세탁기가 우렁차게 돌아가는 동안에는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싫을 터라 가볍게 커피를 내리고 어제 산 잡지를 펼쳤다.  책의 내용이 취향에 딱 맞았던 것도 있지만, 세탁이 다되었다는 경쾌한 멜로디가 울릴 때까지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딱히 수험공부하듯 스스로 집중해야겠다고 의식을 모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두툼한 겨울 이불을  널고난 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제야 시계를 확인했다. 스스로 놀라웠던 점은 배꼽시계가 생각 이상으로 정확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의 이불빨래가 돌아가는 약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집중을 하고 제법 즐겁게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최근엔 번아웃인지 뭔지 모를 탈진감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나를 찾아오는터라, 퇴근하면 해야 될 일들을 빼곡히 적어놓고서도 정작 계획대로 실천한 적이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SNS에서 유행하던 뽀모도르 공부법(시간을 30분 등 자신만의 단위로 정해놓고 일정시간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는 시간관리 테크닉)을 따라 해보며 간신히 의지를 붙잡아둘 정도였다. 그렇게 할 일을 처리하고 나면 스스로 보상으로서 1시간의 취미시간을 가지는 것이 요즘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었는데, 그 취미시간마저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적이 많았다. 왠지 모르게 의무적인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무엇이 달랐을까? 점심을 먹는 내내 그 차이에 대해 곰곰이 고민을 했다. 일요일의 나른함? 좋은 온도와 햇빛? 아니면 어제 기분 좋게 운동하고 잠든 게 영향이 있었나? 딱 하나의 방정식으로 명료하게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하루 시계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는 물론, 퇴근하고 나서도 쫓기듯 살고 있었다는 자각이 생겼다. 


'시간은 금이다' 


이제 어느 위인이 말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이제는 쉬는 일조차 피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풀기 위해 경로를 짜고, 맛집을 미리 알아보고, 최대한 낭비 없는 동선을 짜려하지 않는 가. 아무 정보 없이 어떤 일에 도전해 보기엔 시간이란 기회비용은 너무나 비싸졌다. 돌이켜보면 계획 없는 여행, 그날 즉흥적으로 밤새 달린 술자리,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해 엔딩까지 달려본 게임을 즐긴 것은 '시간이 금'이라는 자각이 없던 더 어린 시절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어릴 때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시간뿐이니까 그 가치를 몰랐던 게 아닐까? 좋게 말하면 나이를 먹으며 조금은 노련해졌고, 나쁘게 말하자면 항상 무언가에 쫓겼다. 그러나 즐기는 일에 한해서는 시간에 쫓길 필요가 있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달리기는 사냥감을 쫓거나, 무언가로 부터 도망가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을 땐 일부러 핸드폰과 시계를 안 보이는 쪽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펼쳤다. 거창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무언가 변했을까 궁금했는 데, 금방 시계를 확인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더라. 역시 깨달음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깨달음이 나와 동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딱 내가 읽고 싶은 만큼만 읽고, 좀이 쑤신다 싶을 때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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