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신점에 맛들려 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을 찾아다녔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맞는 이야기 하나 하지 않고, 검증할 수 없는 말만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생각나는 것은 두가지다. 여러 무당에게 골고루 들은 이야기인데, 하나는 일확천금을 벌 수는 없어도 통장에 돈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집안에 술독에 빠져 죽은 조상이 있다. 첫번째 내용은 애매하긴 하지만 천 원 단위라 출금하지 못하는 돈들이 남은 통장을 보고 납득했다. 영원히 난 일개미로 살아야겠구나. 두번째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용하구나 싶었다. 무당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날이 좋으면 좋다고 마시고, 비가 오면 온다고 마시고, 그냥 모든 일상에 술을 곁들이는 조상이 있다. 그리고 결국 술독에 빠졌다고 한다.
내 친가는 모두가 굉장한 주당이다. 가족끼리 모이는 날에는 시장에 가서 막걸리 두 말을 산다. 말은 말통을 뜻하는데 흔히 주유소에 기름 받으러 가는 그 플라스틱 통을 말한다. 그리고 이 두 말의 막걸리를 10명도 안되는 가족이 한 자리에서 마신다. 내력인지 간 해독력이 뛰어나서 다들 인사불성이 되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어서 이전처럼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자주 모여 마신다. 그리고 이 피는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라인의 친척들은 사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내가 막내이다보니 그들이 술을 먹을 20대때에 나는 초딩이었다. 그리고 친척들은 만나면 항상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 '예전에 네 엄마랑 어찌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그때 나는 아마도 자고 있었을거다. 아무튼 일가친척이 모이는 자리가 생기면 항상 술이 빠지지 않는다. 요즘 사회에 어울리지 않게 같은 라인들끼리 친하다보니 자주 만나는데, 그때마다 술을 곁들인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성격이라 그런 자리를 전혀 나가지도 않고, 집에 돌아가면 술을 못하는 사람처럼 굴기 때문에 내가 제일 약하다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콜중독이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꽤 오래됐다. 친구들보다 술이 쌔고, 취하지 않고, 취해도 마시는 중간에 깨고, 숙취가 없다. 술주정도, 술병도 나지 않으니 메가히트리버를 가지고 있는게 틀림없다. 나는 영락없는 조상의 자손이었다. 물론 나 또한 이전처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소주가 주종이었다면 이제는 맥주만 마시는데, 문제는 한번에 마시는 맥주의 양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제는 1.6리터 피쳐 두병도 거뜬하다.
마시는건 상관이 없지만 횟수가 문제인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코로나에 걸렸을 때와 수술했을 때를 빼고는 매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한달 이상을 계속 마셨다. 참아야지, 끊어야지, 줄여야지 해도 항상 퇴근길에 맥주를 사들고 가는 나를 볼 수 있다. 하물며 나는 자정이 지나야 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졸려 죽겠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술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강박도 생겼다. 이제는 간이 아프다.
그렇다고 다음날 영향이 있는건 아니다. 아주 가끔 평소보다 많이 마실때는 다음날 속에서 술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 외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다보니 또 퇴근길에 맥주를 사서 들어간다. 이제 나는 성인병이 무섭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나는 아마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몰라 술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나 잘못된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이제는 술이 아닌 무슨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를 모르겠다. 매운걸 먹으면 더 화가 나고, 운동을 해도 벅차니 짜증이 난다. 생각이 많아 독서를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사로잡힌다. 결국 나를 멈추게 하는건 술밖에 없다.
이런 술주정뱅이의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하면, 나는 진정으로 술이라는 것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으니 매일같이 마시고 있지만 매일 아침 내 흰자위가 누렇게 됐는지를 확인하고, 불어버린 윗배를 만지고 있다. 내장지방이 끼는걸 보니 이제 지방간도 곧이구나 싶다.
건강한 삶은 누구나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삶에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할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렴 언젠가는 내가 술을 멈출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