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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03. 2024

아무것도 없는 팀에 S급 인재를 모셔오려면

정말 간절하면 디테일에 집중하게 된다.

초기 팀 매니징은 원래 미션임파서블인가봐요.


제가 맡았던 팀에 필요했던 직무, 3D 모델러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비율이 적지 않은 직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S급 실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가지신 분들은 굳이 회사로 들어오질 이유가 없어보였고


만약 회사에 들어오신다고 해도 아니다 싶으면 그 길로 프리랜서로 다시 돌아가시면 되는 상황이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직 체계도 완전히 자리 잡히지 못했고 인원도 없고, 3D팀 자체가 처음 생겼으니 보고 따라할 선임도 없는 상황에 그런 분들을 모셔오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쯤 되니 신규 팀을 매니징하는 일이란 원래 말도 안 돼 보이는 미션을 받아 머리를 쥐어뜯고 흙바닥을 구르며 미션을 완수한 뒤, 너덜너덜해진 채로 극한의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포지션인가보다 싶어 이젠 딱히 막막한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상만사는 시작이 반이요, 팀매니징은 채용이 반인 것을 


가장 중요한 초기 팀원으로 특급인재로 모시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프리랜서 활동을 하시는 모델러 분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가능한한 많은 정보들을 모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연락해야 만나주실까?


입사 제안 메일을 써 본 경험이 없던 저에게 감사하게도 사내 채용팀 분들께 입사 제안 메일 양식을 전달해주셨습니다.


받아본 입사 제안 메일 양식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군더더기가 없고 모든 것이 매끄러웠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을 직접 해봤던 저는 


구직 중이 아닌, 심지어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는 S급 인재들을 절실하게 후킹해야하는 상황에서 회신을 받기 위한 방향성과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매끈하지 못하고 전문적이지는 못한, 구구절절한 느낌이 들더라도 


뜬금없게, 제가 왜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프리랜서 생활을 해왔다보니, 


수입이 안정되었어도 느껴지는 그 끝없는 불안감과 사회적으로 붕 떠있는 듯한 공허함,


명함 한장을 건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증명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나를 설명하고 증명하려면 처음 만난 상대에게 구구절절히 설명을 해야만 하는, 그러고도 나 스스로를 충분히 인정받은 느낌을 받기는 굉장히 어려운 그 기분,


같은 공간에서 혼자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며 느끼는, 온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 나만 멈추어있는 것 같은 일종의 공포감과 외로움,


사무실부터 시작해 모든 비용을 직접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실제 소득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순수익,


실무 외에도 생각하고 챙길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많아 실무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길 때 그 아까운 마음 등


프리랜서라면 아무리 수익이 안정되도 느낄만한 감정들과 생각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기업에 입사한 후 이러한 부분들이 어떻게 채워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싶은 분으로서 ㅇㅇ님이 꼭 필요한 이유는 어떤 것이라고 손편지 쓰듯 한분한분께 모두 새로 작성했습니다.


업무 메일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장문의 편지가 되어버려서, 보신 상사분께 '길게도 썼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다행히 그 내용 그대로 메일을 돌릴 수 있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회신률이 100%


그러자 놀랍게도 제가 연락을 드린 수십명의 작가님들로부터 답신을 받았습니다.

                    

'취업 생각은 없지만 한번 커피챗을 하며 회사를 구경해보고 싶다.'며 커피챗을 요청하시는 분도 계셨고,


'원래는 취업 생각이 없었는데 한 번 자세히 들어 보고 싶다.'고 답변 주시는 경우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쉽게 연이 닿지 못한 경우에도 '많이 고민을 했지만 어떠한 사정 때문에 어려울 같다.'며 자세히 상황을 설명해주시고 죄송하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마치 제가 취준생인 제가, 여러 입사 희망 기업들에, 채용 기간도 아닐 때, 하나하나 맞춤 자소서를 적어 지원했는데 그 중 대다수의 기업에 서류 합격을 하고 합격하지 못한 기업으로부터는 자세한 탈락 이유와 함께 따뜻한 조언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디테일을 챙기는 커피챗


정말 입사하고 싶던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된 취업준비생은 어떤 것들을 준비할까요?


예상 질문을 뽑아 열심히 답변 연습을 해보기도 할 것이고, 앞에 면접관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두고 모의로 면접을 진행해볼 수도 있습니다.


해당 기업이 어떤 것들을 필요로 할 지 열심히 조사를 하기도 하고, 후기를 읽어보며 면접관들이 답변에 만족스러워할지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기업이 정말 내가 상상한 모습의 기업인지 자세히 보아야겠다는, 평가자 입장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갈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을 챙기겠지요.


어떤 옷을 입을지 미리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부터 옷매무새를 다듬고 표정이나 말투, 말버릇 등을 점검하기도 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갑자기 요청하실 만한 자료가 있다면 전부 준비해서 챙기고,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준비물을 잊었다면 혼비백산해서 주변에서 사올 수 있다면 사오고, 인쇄할 수 있다면 새로 인쇄를 하고, 퀵을 불러야 한다면 퀵을 불러서라도 받아낼 것입니다.


간절하면 디테일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세한 차이로 인해 당락이 결정되는 일도 실제로 세상에는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입사 제안을 위한 커피챗을 진행할 때 이런 마음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모델링팀장을 맡고 계신 분과의 커피챗이 있던 날, 함께 커피챗에 들어가주시기로 한 그룹장님께서


"명함이 다 떨어졌는데, 아직 배송이 안 왔습니다. 하경님 것으로 챙겨주세요."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바로 그룹장님의 임시 명함을 발급받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기업 공용 명함 제작 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샘플 이미지를 캡쳐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정보 수정을 요청드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원래 명함인 저의 명함과 그룹장님의 명함의 색상이나 사이즈가 묘하게 달라지면 통일성이 없어보일까봐, 저의 정보를 담은 명함도 함께 부탁드렸습니다.


주변의 인쇄소를 찾아가 비싸도 괜찮으니 가장 빨리, 가장 소량으로 인쇄를 부탁드렸고, 점심식사를 갓 마치신 그룹장님께 임시 명함을 건네며 숨도 못 고르고 괜히 심통을 냈습니다.


"미팅도 많으실 분이 명함이 없으시면 어떻게 해요! 특히 저보다 더 윗분인 그룹장님의 명함을 받았을 때 그 무게가 다를텐데 꼭 가지고 와주셔야지요!"


당시로서는 그 작은 부분도 마치 수능시험장에 수험표를 놓고 온 듯한 마음으로 챙기고 있었기에 정말 어떻게 해서든 작은 부분까지 완벽히 준비해서 입사 제안자 분께 좋은 인상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설령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고 우리 팀의 핏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같은 업계의 뛰어난 분께 우리 팀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드리는 것은 기업 브랜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의 프리랜서 시절에는 활동명만 알고 소통한 적이 없던, 업계의 유명한 모델러들은 커피챗, 적어도 화상으로라도 거의 다 만나뵐 수 있었고,


그 결과 아무것도 없던 저희 팀은, 이미 팀과 업무 시스템이 잘 설계된 큰 기업에서 팀장을 맡으셨던 분들, 프리랜서로 어린 나이에도 큰 수익을 내고 계셨던 분 등 정말 뛰어난 스펙을 가지셨으면서, 동시에 모델링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며 유쾌한 분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채용이 반'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멋진 구성원들을 채용하고 보니, 채용이 8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지였던 팀이 꽉찬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정말 남은 20%를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기분에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 하나의 '나보다 훌륭한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의 조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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