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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유럽에 온 것은 11살 때였다. 그 여행에서 기억나는 것은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추위와 커피 향기, 그리고 나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수도 없이 말하던 엄마의 모습이다. 진짜 금쪽이 둘 데리고 엄마 혼자서.. ㅋㅋㅋ
영국 땅에 발을 들이자마자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커피 향기였다. 내가 커피 향을 몰랐었나 싶을 정도로 진하고 생경했지만 바로 이게 진짜 커피 향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집은 커피를 내려마시는 집도 아니고 특별히 부모님을 따라 카페에 갔던 기억도 없어서 모르고 살았다. 내 몸이 알지 못했던 처음 맡는 어떤 것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도 있을까? 몸이 카페인에 약해서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지만 그때의 진하고 고소한 커피 향은 잊을 수가 없다. 첫인상이 커피였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어디를 가도 나는 커피 향기로 그 여행을 기억했다. 나에게 유럽은 커피였다.
22년이 흘렀다. 지난 22년 간 나는 유럽을 다시 온 적이 없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도 유럽을 다시 온 적이 없다. 11살 때 이후로 처음 유럽을 가는 것이라고 하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니가 유럽을 간 적이 없다고?”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는 일은 미국을 오고 갔기 때문에 익숙했다. 공항을 좋아하고 오래 비행기를 타는 것, 경유하는 것도 나름 즐기는 편이라 유럽이 멀어서 못 온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 대한 기억은 몇 조각 남아있지 않지만,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유럽을 안다고 생각했다. 여행할 때 가본 곳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유럽을 가봤다고 생각하고 안 온 것이다. 내가 반복해서 여행했던 곳은 순전히 가기 편해서 자주 갔던 일본뿐이다.
재작년 여름쯤 어떤 그림책 작가님을 만났는데, 그 작가님이 내게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업을 들어볼까 하고 상담을 간 것인데, 그림책 그림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대신 아동 도서 작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가보라고 나에게 조언했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당연히 익숙한 것이지만 가 볼 생각은 못했다. 유럽은 가봤기 때문에 내가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가려면 딱 그것만을 위해서 유럽을 다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작가님은 딱 그것만을 위해서 유럽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작가님을 만났을 때 나는 아직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천천히 수업을 줄이고 있었고,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서 작가님을 찾아간 것이긴 하지만 누가 물어보면 나의 직업은 아직 선생님인 때였다. 내 포트폴리오를 보며 작가님이 나에게 말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꼭 가보라고. 가서 이 그림 꼭 걸고 오라고.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포스터를 오전에 가서 걸어놓으면 오후에는 다 찢어지고 다른 포스터에 덮여있을 거라고 해서 넉넉하게 준비했다.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명함과 엽서, 키링도 준비했다.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교육 사업에 맞춰져 있던 나의 웹사이트는 일러스트 작가 포트폴리오 느낌으로 바꿨다. 출발 몇 달 전부터 드로잉 챌린지에 참여하며 포트폴리오 작품 수를 최대한 늘리고 작품의 질도 높이려고 노력했다. 분명 1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출국 직전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사실 지금도, 준비를 충분히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 검색 실력이 부족한 건지 몰라도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가려는 작가 지망생들의 로그를 찾기가 어려웠다. 구글에서 대충 검색해 가며 준비했다. 원래 철저하게 준비하기보단 닥치는 대로 하는 편이다. 부족한 게 있으면 부족한 대로 부딪히면 되지 뭐.
어젯밤 11시 5분에 볼로냐 땅에 도착했다. 아동도서전 시작 3일 전에 온 것이다. 도시를 좀 둘러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어젯밤, 오늘 내내 비가 온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춥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여행을 시작하며 꼭 지키자 했던 것들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했던 건강한 습관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여기서도 하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
1. 몇 년간 주 3회 꼭 해왔던 운동은 여기서도 한다.
2.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었던 책을 여기서도 매일 읽는다.
3. 매일 그렸던 그림을 여기서도 매일 그린다.
4. 매일 쓰진 않았지만 여기서는 매일 글을 쓴다.
5. 1년 내내 집 밖을 나가지 말라면 기꺼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집순이지만 여기서는 매일 나가서 여행한다.
오늘 아침 근처 헬스장을 찾아가서 운동을 했다. 볼로냐는 일주일만 머물기 때문에 1일권으로 결제해서 갔지만 한 달 살기를 할 체코와 포르투갈에서는 1달권을 끊어서 할 것이다.
지금은 구글 평점 4.9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벌써 여기 와서 마시는 세 번째 커피인데도 11살 때 맡았던 진한 향기는 없다. 이탈리아 하면 커피 아니었나? 아무래도 다시 온 유럽은 커피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주변이 다 시끄럽지만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습관처럼 길빵을 한다. 길을 걸을 때 사람이 있으면 거의 무조건 담배 냄새도 함께 한다.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익숙하다. 이탈리아는 유럽의 한국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일랜드도 그렇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친절도나 표정이 낯설지 않다. 22년 전, 좋은 호텔에 머물렀는데도 아예 갈색으로 나오거나 커피포트 안 하얗게 불순물이 쌓이던 수돗물이 충격이었는데 샤워기 필터를 괜히 가져왔나 싶을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마셔도 된다길래 수돗물도 마음 편히 그냥 마시고 있다. 그래도 아리수만 못하겠지? 유럽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조각되고 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꽤 자주 보여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그런 횡단보도에 설 때마다 가장 처음 마주하는 차의 운전자가 항상 속도를 줄이고 지나가라고 손짓해 준다.
도서관을 가려고 대학가 쪽을 걷는데 Ai Weiwei의 전시가 진행 중인 걸 발견하고 바로 들어갔다. 대단히 큰 전시관은 아니었는데 영상을 다 보느라 두 시간 넘게 보다 나왔다. 그중 하나는 81개의 질문에 대답하는 영상이었는데 Ai가 AI에 빙의해서 대답하는 인터뷰였다. 이런 아재개그 스타일의 인터뷰 영상 좋아. 나머지 하나는 다큐멘터리로 2010년에 뉴요커 잡지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존재만으로 중국 전체를 움직이게 하고 변화시키는 단 한 명의 아티스트. 길거리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것만으로도 반독재 혁명 운동 행위가 되는 예술가. 중국 정부는 해외 팬이 많고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는 함부로 죽일 수 없지만 그 옆에 앉아있는 중국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에서 볼 수 있듯 아이 웨이웨이도 폭행을 당했다(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투옥과 죽음의 위험을 안고도 좋아하는 가수를 만난 듯 설레하며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 중국인들. Ai Weiwei: Without Fear or Favour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로 아주 볼만하다. 한국에서 하는 아이 웨이웨이 전시를 놓쳤는데, 이렇게 보니 운명 같다. 전 세계 어디든 대학가 근처 전시들은 보통 학생 할인이 되고 꼼꼼히 신분증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니 직원이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면 혹시 학생 할인이 되는지 물어보자.
아 그리고 오늘 운동을 하러 다녀오는 길에 바지를 잃어버렸다. 좋아하는 운동 바지였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들고 다니다가 어디서 떨어진 것 같다. 하늘하늘 찰랑찰랑 거리던 천이 너무 부드러워서 생긴 일. 좋아하는 바지였는데 아깝다. 그래도 겉옷 잃어버리지 않은 게 어디야…
여행 중 호스텔에 머무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라면 볼로냐에 올 때 Dopa Hostel을 강력 추천한다. 깨끗하고, 향기도 좋고, 가성비 좋고, 위치도 좋고, 직원들이 친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