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말하기 게임 만들기 팁 3

좋은 질문 하기

by 예나

영어로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아이들은(듣기는 영어로 말하는 나의 말을 50~100퍼센트 정도 이해 가능한 정도, 말하기는 생각은 한국어로 하더라도 영어 단어나 문장으로 더듬더듬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 영어 게임이나 놀이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좋아하는 수업이 있다. 바로 내가 준비한 질문들에 답하는 시간이다. 이 수업은 점수 내기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다. 그냥 내가 준비한 질문들만 난이도에 맞게 정리해서 가지고 가면 수업 준비 끝이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질문들을 적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답할 때 듣는다. 어떤 노력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따로 노트를 준비해 가서 이 아이들의 답변을 적어와야 한다.


내가 질문을 하면 아이들이 가끔 뭔가 엄청난 통찰력을 담은 것 같은 답변을 툭툭 던진다. 당연히 나도 이 수업을 아주 좋아한다. 질문만 잘 만들면 아이들의 창의력 넘치고 섬뜩하고 특이하고 괴상하고 무섭거나 슬프기도 한 다양한 생각들을 끌어낼 수 있다. 어린아이들과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로 꺼내는 능력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라 자신의 뇌가 너무 빨리 움직인다고 느끼는 것 같다. 아이들은 좋은 질문과 자신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어른들의 귀를 아주 좋아한다. 아이들은 배우거나 질문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멋진 대답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내 사촌동생이 4살 때 다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사과 만드는 법> 알아? 누나는 몰라, 알려줘." 사촌동생은 1초의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일단, 사과를 하나 먹어.
그다음에 다 먹은 사과를 땅 위에 올려놔.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을 심으면 돼.


이 엄청난 답을 생각하면 지금도 뻐근하다. 다른 사람들도 꽤 감동했던 것 같다. 이 4세 시인의 작품을 라디오에 사연으로 보냈더니 만두를 주길래 받아먹었다.(나는 채식을 하기 때문에 사촌동생에게 다 줬다. 본인 작품으로 탄 상품이니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대답이 나온다. 가끔 바보 같은 질문을 해도 아이들은 좋은 대답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이 전부 그랬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본래 그런 능력을 타고난 것 같다. <기린을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물어봤을 때 어떤 아이는 커다란 냉장고를 만들기로 하고, 어떤 아이는 기린을 일곱 조각 정도로 자르겠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사막에서 기린을 어떻게 데려왔느냐고 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작은 아이들에게서 이런 생각들을 듣는 것이 13년간 나의 직업이었다. 정말 소중한 기억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도 그만 하려니 다시 아쉬움이 밀려온다. 이 일을 그만하고 나면, 이런 소중한 생각들을 이렇게 친밀한 시간과 공간에서 매일 들을 기회가 앞으로 나에게 또 있을까?





좋은 영어 질문이란?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일단 좋은 질문은 간결하고 이해가 쉬워야 한다. 특히 영어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질문이 길어져서 아이들이 질문 자체를 이해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면 실패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답의 종류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의 종류가 정해져 있다면 아이들이 질문을 오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앞뒤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해될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이해한 대로 답변하게 한다. "What is it like to be sad?"라는 질문은 아이들이 "행복이 느껴지지 않은 상태"라고 답할 수도 있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답할 수도 있고,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장황하게 꺼낼 수도 있다. 모두 위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고, 나는 특별히 어떤 종류에 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선물 상자 바라보듯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아예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경우는 질문을 다시 말해준다. "What is your least favorite thing about TV?"이라고 물어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을 대답한다면 "least" 단어의 뜻을 말해줘야 한다.


좋은 질문은 듣는 아이들이 슬프지 않아야 한다. 너무 개인적인 문제를 꺼내야 하는 질문은 피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어린 학생들의 경우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꺼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에게 믿는 어른이 되면 알아서 재잘재잘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이의 사생활을 굳이 나서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학생들의 경우 굳이 부모님과의 관계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싶으면 그런 주제로 이야기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고 시작한다. 그리고 가벼운 질문부터 하는데 일단 그 학생의 가족 관계를 내가 대충 추측할 수 있는 질문으로 한다. 예를 들면 "Use one word to describe your family members (including yourself)." 이렇게 질문하면 아이가 형제자매가 있는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지, 엄마 아빠와 같이 사는지 알 수 있다. 별 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내가 13년간 수업하면서 지켜왔던 것들이다. 어른들과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KakaoTalk_20211205_010143967.jpg 13년 간 모은 질문들이 담긴 커다란 가방은 나에게 소중하다.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닫힌 질문보다는 <Wh>나 <How>로 시작하는 질문을 한다. Yes/No로 대답이 끝나는 질문은 이 수업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학생들의 대답이 짧아지면 학생들도 그게 금방 습관이 되어서 나만 계속 말하게 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 낫다. 아이들은 정말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본래 부모나 선생님으로서의 당신 생각을 아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듣기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내 생각에 대단히 큰 착각이다. 나는 내 학생이 어른이든 아이든 질문 수업을 할 때에는 인터뷰하는 마음으로 진행한다. 인터뷰할 때는 좋은 질문을 생각해서 하고, 질문자로서 입을 닫고 그냥 들으면 된다. 문법 고쳐주느라고 아이들의 말을 끊지 말자. 영어 문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다. 이 글은 아직도 아이들과 재미있게 하는 영어 놀이 시간에 대한 글이다. 질문을 듣고 생각하는 시간 동안 차분히 기다려주고 아이들이 조급해하는 것 같으면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는 말을 해주자. 아이들이 장황하게 답을 내놓으면 다 듣고 나서 아이의 생각을 내가 다시 정리해 이야기하면서 문법을 고치거나 문장력을 키우게 하면 된다. 정리되고 문법이 고쳐져서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라도 자신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면 아이들은 따라 하기도 하고 익힐 것이다. 아이들의 대답을 잘 들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Follow-up questions도 중요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내 말을 정말로 듣고 있다는 확신을 아이에게 줄 수 있고, 말을 해보며 자신의 생각에 논리를 더하는 기회도 된다.





이런 수업은 영어를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세 번째 팁으로 적어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언어 학습을 위해 이 활동이 영어로 진행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전 글에서 탄탄한 한국어가 좋은 영어의 기둥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활동을 한국어로 진행해도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수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진행자와 한 주제를 정해서 토론을 하고는 했었는데, 영어로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일주일 동안 한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내가 할 말을 생각하고 정리해서 적어보고, 토론하는 날 직접 상대방 앞에서 그 생각을 꺼내보고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은 좋은 언어 수업이 되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를 자주 줘야 한다. 꺼내어 말하기 전까지 생각만으로는 내 의견 속 논리의 부족이나 모순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발화된 후에야, '아, 이게 아닌데.'싶어서 내 의견에 대한 확신과 집착을 버리고 다시 생각해본 경험은 우리 모두 분명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하는 말을 내 귀로 직접 들어야만 그게 진정한 내 의견이라는 확신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훈련은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아이들에게 언어와 관련된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울타리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꺼내는 경험을 하게 해서 나의 말, 의견, 확신의 정확한 의미와 차이를 알게 하고, 그 안에 필요한 사고의 과정, 신중함 등을 배울 수 있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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