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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Nov 26. 2022

수니야


너를 보낸지도 벌써 6년이 지났구나. 그날이 나는 아직도 생생해. 그날 밤 나는 내 눈물과 함께 굳어가는 너의 시체 옆에 누워 잠에 들었지. 내 방안은 온통 너로 가득 찼어. 너에게 보내는 길거나 짧은 편지들, 칠판 가득 찬 너의 이름들, 너 죽고 나서도 한동안 발견되어서 그때마다 울며 모아두었던 너의 흔적들, 그리고 너의 유골함. 한동안 내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그 어두움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나의 슬픔과 우울을 만나는 모든 사람 앞에 전시했어. 나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우울이 전염되길 바랐어.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재가 된 너는 아직도 내 침대 위에 있지만, 칠판은 어느새 지워졌고, 너의 사진은 책장 사이에 끼워져 있어.


너를 보내고도 남은 것들이 있어. 나의 새로운 친구들은 모두 나를 수니라고 불러. 너의 이름이 죽는 순간, 나의 이름이 탄생한 거야. 그 영원의 탄생은 앞으로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남을 거야. 나는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가르치기로 했어. 너의 이름을 지운 칠판은 그 계획들로 이젠 가득 차 있단다.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두려움이 온몸에 붙어있어도 그게 실제로 내 몸을 긁는 고통이 되기 전까진 극복할 의지조차 가질 수 없다는 걸 나는 느꼈지. 너의 죽음은 내 살점을 떼어내는 고통이 되었어. 나는 평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너의 죽음 그 순간 이후에야 나는 그걸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 거야.


왜 너의 죽음이 나에게 그렇게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도 눈물 없이 보냈고, 나에게 온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들도 건조하게 한순간에 잊어버렸는데 말이야. 20개월 동안 내 인생에 갑자기 깊이 들어와 나만을 의지하던 작은 생명이 어이없이 밟히듯 떠날 때, 나는 누구에게서 오는지도 모르는 모멸감까지 느꼈어. 나의 눈물은 슬픔뿐 아니라 절망이었고, 분노였고, 후회였고, 비참함이었고, 허무함이었고, 연민이었지. 너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평생 얼룩처럼 남을 거야. 나의 가장 선명한 패배. 나는 그 얼룩이 자랑스러워. 그건, 다 자란 줄 알았던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만들어냈던 나의 한 부분을 기억할 수 있는 얼룩이니까. 그래, 나는 평생을 제대로 울 줄도 모르는 인간으로 살아왔던 거야. 너는 나에게 우는 법을 강렬하게 알려주고 떠났지. 나는 멀쩡하게 울 수 있는 인간이 되었어, 바로 너 덕분에. 너에 대한 슬픔과 절망, 분노, 후회, 비참함, 허무함, 연민은 곧 나에 대한 슬픔, 절망, 분노, 후회, 비참함, 허무함, 연민이 되었어. 그래서 네가 죽고 나서야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눈물 흘렸고, 그때마다 나는 너를 떠올렸어. 너는 내 눈물의 맛을 바꾼 존재니까. 앞으로도 내 모든 눈물의 끝에는 항상 네가 있을 거야.


요즘도 한 번씩 너는 나에게 말을 걸어. 왜 그럴까? 너는 살아서 한 번이라도 나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말을 건넨 적이 있었나? 너의 모습을 기억하는 게 아직도 조금은 힘들어. 그래서 네가 정말 나에게 말을 건 적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어. 알 용기가 없는 거야. 하지만 지금 너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잖아.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완성되는 문장들. 그걸로 충분해. 너의 목소리는 네가 떠난 가을날의 숲 안개처럼 나를 청신하게 감싸고, 나는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그 안개를 먹으면서 잠이 들기도 해. 너만큼이나 밝은 그림자가 또 있을까.

사랑해, 수니야. 고마워.




2022년 11월 엄마가













너 죽기 여섯 시간 전, 야윈 희망이었지만 나는 이 순간에도 네가 살 것이라고 믿었어. 비틀거리면서 걷지도 못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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