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gabond Feb 12. 2024

새벽녘 단상


감 중에 가장 영적인 것은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삶에서 보는 것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사회 문화 속에서 제한

나의 경험 속에서 제한

나의 지식 속에서 제한

나의 사유 속에서 제한.

즉,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좋은 것이 누구에게는 좋고, 누구에게는 좋지 않는 등

모든 것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사라지는 요즘이다. 



뭐, 동일한 것을 다르게 보일 수 있게 하는 요소는 세상에 수두룩하며 

그 요소들의 정당성을 굳이, 제대로 물어보는 요즘은 아니다.

그저,

마치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지금껏 축적된 경험과 사고방식 아래, 내가 해석하는 식으로, 자동으로 전환되어 '진실' 혹은 '사실'이란 이름으로 머릿속에 입력될 뿐이다. 

그렇게 내 머릿속의 지식과 사고를 기반으로 빙글빙글 우리는 평생을 살아간다.


.


그런데 조금이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 숙고를 해보자면,

삶이란,  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이 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 믿고 살아가기에

드넓은 대지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 무한한 우주 

그 아래, 우리 인간은, 그저, 날뛰어 봤자  우물안 개구리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함은 물론,

탄생과 죽음

세상의 숱한 어둠과 밝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개인의 삶은 극히 좁고,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에

불투명한 영역에 대한 단순히 우리는 교만과 자만으로

때론, 게으름과 태만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삶을 살아갈 뿐이다. 

왜냐?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영역은

뭐라 나불거리든 정답이 없다

개인의 선택.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렇듯,

우리는 개인의 선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 아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 중,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며, 우리 식대로 해석하며 판단하며 살아간다.


교만과 자만, 게으름과 태만, 무관심 이런 태도 모두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려는 태도 경향 시도 없이

딱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


그런 기반 아래서 삶은

불공평하고, 부조리하고,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혹은 시시하고 재미없고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기도.



보이는 것으로만 세상을 판단하고

보이는 세상의 가치로 삶의 목표를 설정하면 삶이 퍽퍽하고 힘겨워지는 것 같다.

너무도 쉽게

내가 누구인지 그 의미를 잃어버린채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양

내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외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면서

그저 무리중의 한명으로

그 안에서 칭송받을 수 있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삶.



보는 것이 영적이라 하는 이유는,

보는 것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수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삶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듣는것으로 가는 길



삶 아래, 소명이라는 것, 운명이라는 것

그것은 내 안에 빛을 찾아 나가는 것 아닐까.

그 빛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


내가 찾아야 할 보석은, 내가 따야 할 별은,

나의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그런 명백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것.


보이지 않는 그것을 찾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삶의 목표로 가져갈 때

밖으로 빛나게 하려는 시도 안에서, 그제서야 삶이 충만해지고 바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바보같이 보여도, 존경과 가치가 없는 것 처럼 보일 지라도,

내 안에 빛나는 빛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진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에 대한 존중 아닐까 하는 진지한 물음.


삶은 비밀 안에 쌓여 있는 것 같다, 겹겹이.

그 비밀을 겉어내는 것

비밀을 파헤치는 노력을 평생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각자 파헤질 웅덩이가 숙제로 남아 있으며,

남의 비밀에 어슬렁거리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는듯.

그러나 남의 비밀에 더 관심 많아 어슬렁 거리는 모습이 우리 삶의 모습

아니 여전히 나의 모습

나의 태도.


지금껏 내 삶의 대한 숙고

용기와 게으름 타파가 우선 시급하게 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새벽녘의 시간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