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그랜드캐년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광활하게 뻗은 그랜드캐년.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 생각만 해도 감동적이고 짜릿할 순간임이 분명했다. 전날 많이 걸어서 그랬을까 일어나는 게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어쩌면 생에 한 번뿐일 수도 있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일어났다. 불빛 하나 없는 새벽의 그랜드캐년은 온통 새까맸다. 깜깜한 도로 위에 캠핑카 하나. 그렇게 조용히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창밖을 보니 사슴 한 마리가 튕겨 나가고 있었다.
미국을 가기 전 그랜드캐년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컴퓨터 배경화면이나 사진에서 많이 봤던 풍경들. 단어 그대로 '자연의 아름다움'의 끝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해서다. 운 좋게 캠핑카 투어를 발견해 1박2일로 신청했고 미국 여행을 가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 날에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아침부터 캠핑카가 고장 난 것이다. 난생처음 도로에서 사슴 튀어나오는 걸 목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슴은 멀리 날아간 뒤 절뚝이며 제 갈 길을 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차가 멈춰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은 터지지도 않고 주변엔 사람 하나 보이질 않았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우리를 도와줄 다른 차가 등장했다. 같은 투어객 한 명이 멀리까지 걸어가 겨우 핸드폰을 작동시켜 911에 연락한 덕이었다. 차량을 옮겨 타고 근처 지역으로 이동하기를 몇 시간, 도착한 후에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하루의 절반 정도가 날아간 셈이다. 여행이 끝나고 투어 비용은 당연히 환불받았다.
기대한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땐 초조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휙! 하고 어긋나버리면 그럴 틈도 없다. 그냥 어안이 벙벙하고 화도 나지 않는다. 특히나 차 사고같이 아찔한 상황이라면 그냥 어이쿠 한 번 하고, 더 큰일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란 마음이 든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그랜드캐년의 주요 관광지들은 그나마 구경하고 왔다는 점이다. 다만 밤하늘의 은하수는 보지 못했다. 대신 광활하고 신기한 모양의 자연물들을 실컷 봤다. 사람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자연만큼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들.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랜드캐년이었다. 자연 때문이었는지 차 사고 때문이었는지는 헷갈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