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서인 Oct 30. 2022

시카고에서 집 가는 길에 만난
토네이도 - 에필로그

시작조차 안 해봤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

한 달간의 미국 여행 그 피날레. 역시나 마지막에도 또하나 만났다. 토네이도. 낯선 이름이지만 쉽게 말하면 폭우를 맞았다. 공항 가는 차 안이었는데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그냥 희미하게 보이는 불 빛들만 보며 겨우 기어갔다. 하마터면 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뻔 했다. 밤 11시 비행기라 그냥 여유있게 공항에서 쉬다 가자는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시카고는 두 얼굴의 도시였다. 어느 곳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는데,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았다. 오죽하면 숙소 흑인 사장님도 시카고의 어느 동네는 가지 말라고 조언해줬을 정도였다. 몇몇 상점엔 총기소유 금지 표지판이 있고, 곳곳엔 깨진 유리창이 있던 시카고 거리. 하지만 반대 쪽엔 분명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이 있었다. 묘한 도시였다.

마지막 날 공항까진 우버로 이동했다. 앱에선 약 40분 거리라고 알려줬다. 분명 여유있겠단 생각이었고, 마침 차를 탈 때도 비는 내리지 않아 아무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 덕분에 우버 기사님도 긴장하고 나도 긴장했다. 손잡이를 꽉 잡은채 빌빌 거리는 차 안에서 버티다 보니 겨우 공항에 도착했다.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있었고, 기사님도 지친 기색이다. 나는 감사의 감사를 인사를 건네며 공항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하마터면 비행기 놓칠 뻔 했다. 폭우가 내리면 우버도 못 잡을 뻔 했을테니까.



비가 점점 거새지더니 나중엔 앞이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공항 역시 정신 없었다. 연착이 되었던 건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인파 속에서 겨우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엔 빈자리가 꽤 많았다. 폭우 때문인지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방송에선 그 분들을 부르는 소리가 한참 들리다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승무원 분이 오셔서 자리를 옮겨주셨다. 그분들껜 죄송하지만 덕분에 쾌적하게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골아떨어졌다. 말 그대로 '눈을 감았다 뜨니' 도착이었다. 확인해보니 시카고에서 인천까지 15시간 정도라는데, 정말 중간에 깨지도 않고 푹 잤다. 기내식도 안 먹었다. 대신 목베개를 하고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집에 간다니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너무 편하게 잘 이용했던 아시아나 항공


LA,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샌프란시스코, 뉴욕, 나이아가라폭포, 시카고, ...

돌이켜보면 한 달 동안 정말 '꾸역꾸역' 여행을 했다. 요즘 유튜브에서 해외여행 브이로그가 꽤나 유행인데, 그분들 못지않게 에피소드들이 풍부했던 여행이었다. 첫날부터 캐리어를 잃어버리고, 그랜드캐년 오지에선 차 사고를 당하고, LA 어느 도시에선 새벽에 핸드폰과 돈이 없어 몇 시간을 방황하다, 중간에 감기도 한 번 걸리고, 마지막엔 토네이도까지. 도시를 이동할 땐 숙소 아낀다고 야간 버스를 탔고, 이외엔 사람 많은 도미토리 룸에서 잤다. 밥도 다 대충 먹었다. 먹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다녔을까 싶다. 고생을 그렇게 해서 그런가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세상 일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또 그 예외성이 뜻하지 않게 재미와 추억을 주기도 한다. 그런 게 인생 아닐까. 고작 한 달 여행으로 이렇게 통달한 듯 말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분명 내 삶에는 많은 영향을 줬던 여행이기에 이렇게 외쳐본다.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 물론 그 뒤에도 문제긴 하지만, 시도조차 안 해본다면 이런 광경들을 봤을 수나 있었을까?



이전 15화 뉴욕 정상에서 JayZ 듣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