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함에 잔뜩 절어 있는 몸이 자꾸 새벽 6시를 넘기지 못하고 눈을 뜬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아직 어둑한 방안에서 아무도 볼 일 없는 찡그린 얼굴을 하고 휴대폰을 집어 든다.
[05:13]
도대체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재 시각에 다시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눈을 감는다. 이내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어제 한참 PT 준비로 시끌벅적하던 단톡방의 잘 자라는 인사와 좀체 울릴 일 없던 가족 단톡방 소식. 인사는 됐으니 가족 창을 눌러본다.
막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오전에 엄마 아빠가 넘어갈테니 너희들은 일 바쁜데 굳이 오지 말고… 그래도 상황은 알고 있어야 하니 연락한다. 참조해라.
이름은 어딘지 낯설지만 조금 생각하면 금세 낯익은 얼굴이 떠오르는 새삼스러운 세 글자를 들여다본다. 낯선 만큼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눈을 감고 ‘후우’ 크게 한숨 쉰다. 세 번째로 휴대폰을 집어 든다. 이번엔 코레일 앱을 켠다. 기차 시간을 확인한다. 일정을 생각해보자. 오늘 점심 호텔에서 비싼 거 먹는다고 했는데, 먹고 조퇴할까. 이 와중에도 비싼 밥이 아까운 내가 경멸스러워지려고 하니까 그냥 빨리 내려가자. 시간이 이르니 우선 카톡으로 부음을 전하고 휴가를 쓰겠노라 했다. 기차표를 예약하고, 장례식장에서 보자, 잠시 집에 전화도 했다.
대충 세수만 하고 검정 원피스 걸치고 나왔다. 온다고 말만 하고 줄곧 오지도 않던 비가 웬일로 주룩주룩 내린다. 지하철에 멍하니 앉아 지금의 멍함이 피곤함인지 충격인지 가늠해본다. 정답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냥 눈을 감았다.
이제는 고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무색한 부산은 또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역 근처에서 돈까스를 사 먹었다. 크기가 꽤 컸는데, 평소라면 피곤함까지 겹쳐 절반도 못 먹었을 법한데, 그걸 싹싹 긁어 먹었다. 오히려 다 먹고도 속이 허하다고 느꼈다. 슬슬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지나는 모든 풍경이 그저 생경하다. 이 착잡함이 어두운 하늘에서 오는지, 슬픈 마음에서 오는지 가늠해 본다. 이번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며 무거운 마음으로 열차에서 내린다.
역에서 몇 발짝 안 떨어진 곳이었지만 외진 곳에 있는 장례식장이었다. 조그만 상가 입구 모습을 한 유리문 앞에 작지도 크지도 않은 스크린이 떡 붙어있다. 지금 대여된 식장은 3호실뿐인지 많이 보던 얼굴이 완전히 멈춘 채로 입구에서 ‘나 보러 왔냐.’ 묻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계단을 한번, 두 번, 세 번 올라가, 우산은 우산 꽂이에 넣었다. 젤리 슈즈를 벗고 기차역에서 사둔 양말을 뜯어서 신는다. 엄마가 멀리서 다가온다. 아빠는 친척 어른들과 비석 일정을 걱정하고 있다. 작은집 할머니와 고모할머니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아이고, 니가 여까지 우째 왔노?”- 익숙한 얼굴들과 나란히 앉았다. 엄마가 자꾸 옆에 와서 할아버지께 인사하라고 독촉한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우기다가 결국 아빠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 앞에 선다.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나는 말없이 웃으며 할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할머니는 ‘아니 어떻게 왔어, 어떻게…’ 하셨는데, 그 말이 너무 공허해서 귀에 담기지 않았다.
우리는 모여앉아 밤까지 앉아서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했다. 밖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휴대폰에서는 재난 알림이 계속 울렸지만,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했던 한 사람을 계속해서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들이 좋아서 웃었고, 그이가 없어진 게 슬퍼서 울었다. 나는 늘 타인에 비해 죽음을 더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느낀다. 무뎌지자 노력해도 도무지 무던해지기 어렵다.
3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내세우기 부끄러울 때도 있고, 가끔 너무 길어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삶이 하나의 무대라면 나의 무대 위에는 앞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더 많이 나타날까, 아니면 이 무대를 떠나는 인물이 더 많을까.
어른들의 만류에 밤 기차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차피 일정상 장지까지 함께하지 못하니, 아침에 올라간다고 유난을 떠는 것도 민폐가 될 것 같아 그만 올라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먼저 다가와 꼭 끌어안아 주셨다. 오늘 처음 마주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포옹이다. 나는 왠지 또 눈시울이 붉어진 기분이 들어 침을 크게 한번 삼켰다.
모든 것이 갈팡질팡하는 리허설과 같은 무대 위에서 늘 죽음이 가장 힘들다. 조촐한 나의 무대에서 기꺼이 사랑을 주고간 이들의 부재가 그저 두렵다. 그렇게 떠난 이의 몫까지 살아낼 자신도 없으면서 빈자리에서 무게감을 본다. 든 자리의 가벼움과 난 자리의 무거움을 딛고 다시 일어서 무대로 올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