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벨베데레 궁전
쇤부른 궁이 워낙에 을씨년스러웠어서인지, 아니면 벨베데레 궁전정원에 그래도 비교적 초록색이 많아서 그랬는지 훨씬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햇볕은 조금 났지만 가끔 빗방울이 날리기도 하는 신기한 날씨. 가이드 선생님이 티켓을 구입하러 가신 사이에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잔뜩 찍는다.
개인적으로는 비엔나가 음악회 외에 가장 기대한 것이 클림트와 에곤 쉴레였기 때문에,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 좀 든다. 괜히 들뜬 마음에 궁전 안쪽마저도 쇤부른 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쁜 기분.
엄마, 아빠의 얼굴도 정원에 드리운 햇볕처럼 조금 더 밝아진 기분이 들었는데, 온전히 같은 기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심 처음으로 '그 유명한' 클림트를 만난다는 설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셋이서 들뜬 얼굴을 하고 마주한 첫 작품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전혀 생각지 못한 작품이지만 너무나도 잘 아는 그림이어서 그랬는지 엄마, 아빠는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꽃을 숨기지 못했다. 가이드 선생님의 '동아전과'이야기에는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클림트를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기뻐했는지도 모르겠다.
맨 먼저 마주한 클림트는 <portrait of woman>. 사실 클림트의 경우 <키스>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부모님께도 익숙하겠지만, 작가 자체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까 싶어서 미리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여드렸다. 물론 우리가 이제는 오스트리아에서 볼 수 없게 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보모님과 클림트 사이의 장벽이 조금은 허물어지지 않았을까?
실은 나 역시 클림트에 대해 많이 알고,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번 벨베데레 궁전에서 마주한 클림트는 새로운 면면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사실 유명한 작품, 잘 아는 작품은 아무래도 금박이 가득하다 보니, 전혀 새로운 풍경화들 앞에서 나는 제법 오래 머물렀다. 결국엔 기념품까지 구매해서 왔다는 비화 아닌 비화.
그렇게 내심 조금 기괴했던 에곤 쉴레까지 꼼꼼히 챙겨 본 뒤에 투어는 마무리를 위해 슈테판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 가이드 분은 남은 일정에 방문하면 좋을 장소와 음식점들을 끊임없이 추천해 주셨다. 이때쯤엔 사실 비가 제법 두껍게 내리기 시작했고, 피로도 슬 몰려와 집중력이 다소 저하된 상태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인지, 덕분인지 우리는 크게 고민 않고 가이드 분의 추천 맛집으로 식사를 하러 향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팀들도 모두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렇게 첫 끼니는 슈니첼, 카레, 닭고기 샐러드. 와인을 곁들인.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가장 입맛에 맞았던 맛있는 식사였다. 어지간히 정신이 없기는 했는지, 여행 내내 이 식사는 인상에 크게 남지 않았는데도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역시 여행은 과정 중과 종료 후의 감상이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나 싶다.
식사가 끝나자 세시 즈음을 지나 크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여행 첫날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인 지라 무리하지 않고 숙소로 복귀하기로 했다. 나도 그렇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에서는 무엇보다도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대신 우리는 아침에 가볍게 보느라 부족했던 장보기를 보충하기로 했다. 아침에 먹을 샐러드와 빵, 과일들을 비롯해 오스트리아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디저트 '자허 토르테(살구쨈 초콜릿 케이크)'까지 마트산 냉동으로 구입했다. 또, 우리는 샴푸, 바디워시 등 목욕 관련 용품들을 여행용으로 챙겨갔는데, 현지에서 머무는 동안 쓸 만큼 작은 용량의 제품을 사서 쓰고 버리면서 다니자는 계획이었다(P가 최대치로 철저했던 부분: 짐을 가볍게 하자). 그런데 의외로 마트에서 워시류를 잘 찾지 못해 꽤 애를 먹었다. 바디워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샴푸가 없어서 사실 이틀가량을 찾지 못해 나중에는 조금 노심초사했다는.
숙소로 복귀한 우리는 가볍게 저녁을 차려먹고, 곧 있을 음악회의 음악을 예습 겸 미리 들으며, 어제 못다 푼 여독을 풀며, 그렇게 마무리했다.
첫날을 마무리하면서, 내심 우려했던 투어를 맨 첫날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무리해서 첫날 이른 아침부터 투어를 예약한 까닭은 계획 없는 P 3인의 여행기이기에, 첫날 흐르는 대로 주변을 탐색하다 보내면 어째 마지막에 가서는 첫날이 아쉬움으로 남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부모님은 투어 만족도가 높았고, 심지어는 비엔나에 대해 제법 아는 체를 하며 가고 싶은 곳들을 읊었다. 아, 흐뭇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