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야장(冶匠)에게서 배운 삶의 자세
“내일 안성에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또다시, 그리고 갑자기 퇴사를 결정하고 놀게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나는 무슨 연유 인지도 모른 채 그저 교외로의 외출이 반가워 흔쾌히 함께하겠노라 했다.
안성의 한 한정식집에 모여 앉았다. 함께 가자고 제안을 주신 J님과, C 교수님, S선생과 그 따님. 대부분이 아직 서로 낯선 다섯은 어느 조용한 식당 룸에 둘러앉았다. 말이 한정식집이지 사실 낡은 식당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라한 외관과 낡은 가구들이 준 인상과 달리 음식은 정갈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그날 만난 S선생과 꼭 닮은 것이었다고, 그렇게 기억한다.
대화는 주로 S선생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거의 외부인에 가까웠던 나는 대화에 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맨 구석에 앉아 조용히 경청할 뿐이었다. 솔직히는 당시 자리가 내게 썩 편안했던 건 아니었지만, 차분하고 힘이 넘치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어느새 그의 인생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S선생은 이제 한국에 거의 남지 않은, 붉게 익은 철을 쉼 없이 두드리는 대장장이, 야장(冶匠)이다. 지금에야 시간이 흘러 대장장이가 귀해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오랜 시간 그저 고된 노동으로 밥을 벌어먹고사는 그야말로 ‘천한’ 대장장이에 불과했다.
그는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대한민국 1등’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남들은 절대 기간 안에 못 맞춘다며 거절하는 건도 척척 납품해냈다고. 하지만 그건 실력이 뛰어나거나 특출난 재능을 가져서 그랬던 건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해서 가능했던 거란다.
선생은 호미로 유명하다. 농기구는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오면 필요에 따라 제작한다. 매번 ‘자체 제작’으로 만들어주다가 보니 지역마다 농기구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랐다. A/S를 해주거나, 다음번에도 똑같이 만드려다 보니 문제가 영 복잡해서, 한번 만들 때 반드시 두 개씩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호미는 하나둘 모여 단순한 농기구가 아닌 자료로 남게 됐다. 오랜 시간 대장간 구석에 쌓여 있던 호미들은 이제 잘 닦여 박물관으로 갔다.
“옛날에는 그냥 천 것이었지. 누가 하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아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한 거지. 그런데 나는 항상 더 잘하고 싶었어. 숭례문 복원도 그거 안 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숭례문 복원에 참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에게는 이제 스승도 제자도 남지 않았다. 매일같이 뜨거운 불기운 앞에서 망치질하지만 도무지 ‘내가 더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니 조상들, 선배 대장장이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지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들의 기술로는 이런 걸 못 만들어. 세상이 이렇게 발전해가는데도, 우리는 선조들 발끝에도 못 미치는 거지. ”
아쉬움을 말하는 선생의 눈은 오히려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의 힘이 없는 거라. 나이가 육십이 넘어서 칠십을 바라보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지. 몇 년 전에도 누가 와서 배워보겠다고 하더니 2년을 못 채우고 나갔어.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랍시고 사람들 이 가끔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다 한 때 거든. 사실 이렇게까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가 않다고. 나는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야.”
“그런데 재밌는 게 말이야. 나는 자꾸 힘이 달리는 게 느껴지니까 항상 사람들이 ‘예전만 못하다’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거든? 그런데 요전에 어떤 할머니가 부엌칼을 가져온 거라. 내가 동네 사람들이 칼 같은 거 가져오곤 하면 갈아주기도 하거든. 그런데 이 할머니가 가져온 칼은 도저히 못쓰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할머니, 이런 칼은 못써. 그냥 여기 있는 거 하나 가져가.’ 그랬더니, ‘내가 이 칼을 여기서 샀는데’ 그러더라고. 깜짝 놀랐지. 그래서 칼을 이렇게 다시 보니까 아니 진짜 내가 만든 칼이더라고. 나는 내가 늙어서 힘이 없으 니까 당연히 지금은 예전만 못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이 두드려온 세월을 무시할 수가 없는 거였더라고.”
그날 안성에서 보낸 시간은 시골 내음, 정갈한 밥상, 온통 그을리고 구부러진 채 바닥을 구르던 쇳덩이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남 들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자부심을 가지고 망치를 두드려 온 한 인간의 삶.
그해 초여름 시작된 글쓰기는 어느새 2년을 향해 나아간다. 가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진 채로 빈 종이를 바라본다. 그렇게 어떨 땐 기어코 써 내려가고, 어떨 땐 결국 잡은 펜을 내려놓는다. 어쨌든 결국 마지막엔 또 종이를 꺼내 들고 기어이 연필을 손에 쥔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영 부족해도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는 것. 내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고, 그 삶을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