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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 Jul 14. 2022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

한 야장(冶匠)에게서 배운 삶의 자세

“내일 안성에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또다시, 그리고 갑자기 퇴사를 결정하고 놀게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나는 무슨 연유 인지도 모른 채 그저 교외로의 외출이 반가워 흔쾌히 함께하겠노라 했다.


안성의  한정식집에 모여 앉았다. 함께 가자고 제안을 주신 J님과, C 교수님,  S선생과  따님. 대부분아직 서로 낯선 다섯은 어느 조용한 식당 룸에 둘러앉았다. 말이 한정식집이지 사실 낡은 식당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라한 외관과 낡은 가구들이  인상과 달리 음식은 정갈했다. 나는  모습이 그날 만난 S선생과  닮은 것이었다고, 그렇게 기억한다.


대화는 주로 S선생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거의 외부인에 가까웠던 나는 대화에 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맨 구석에 앉아 조용히 경청할 뿐이었다. 솔직히는 당시 자리가 내게 썩 편안했던 건 아니었지만, 차분하고 힘이 넘치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어느새 그의 인생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S선생은 이제 한국에 거의 남지 않은, 붉게 익은 철을  없이 두드리는 대장장이, 야장(冶匠)이다. 지금에야 시간이 흘러 대장장이가 귀해지고,  가치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오랜 시간 그저 고된 노동으로 밥을 벌어먹고사는 그야말로 ‘천한대장장이에 불과했다.


그는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대한민국 1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남들은 절대 기간 안에  맞춘다며 거절하는 건도 척척 납품해냈다고. 하지만 그건 실력이 뛰어나거나 특출난 재능을 져서 그랬던  아니고,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해서 가능했던 거란다.


선생은 호미로 유명하다. 농기구는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오면 필요에 따라 제작한다. 매번 ‘자체 제작으로 만들어주다가 보니 지역마다 농기구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랐다. A/S 해주거나, 다음번에도 똑같이 만드려보니 문제가  복잡해서, 한번 만들  반드시  개씩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호미는 하나둘 모여 단순한 농기구가 아닌 자료로 남게 됐다. 오랜 시간 대장간 구석에 쌓여 있던 호미들은 이제  닦여 박물관으로 갔다.


“옛날에는 그냥 천 것이었지. 누가 하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아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한 거지. 그런데 나는 항상 더 잘하고 싶었어. 숭례문 복원도 그거 안 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숭례문 복원에 참여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에게는 이제 스승도 제자도 남지 않았다. 매일같이 뜨거운 불기운 앞에서 망치질하지만 도무지 ‘내가  나아지고 있는지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니 조상들, 선배 대장장이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지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들의 기술로는 이런 걸 못 만들어. 세상이 이렇게 발전해가는데도, 우리는 선조들 발끝에도 못 미치는 거지. ”


아쉬움을 말하는 선생의 눈은 오히려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가 말이야.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의 힘이 없는 거라. 나이가 육십이 넘어서 칠십을 바라보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지. 몇 년 전에도 누가 와서 배워보겠다고 하더니 2년을 못 채우고 나갔어.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랍시고 사람들 이 가끔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다 한 때 거든. 사실 이렇게까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가 않다고. 나는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거야.”


“그런데 재밌는 게 말이야. 나는 자꾸 힘이 달리는 게 느껴지니까 항상 사람들이 ‘예전만 못하다’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거든? 그런데 요전에 어떤 할머니가 부엌칼을 가져온 거라. 내가 동네 사람들이 칼 같은 거 가져오곤 하면 갈아주기도 하거든. 그런데 이 할머니가 가져온 칼은 도저히 못쓰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할머니, 이런 칼은 못써. 그냥 여기 있는 거 하나 가져가.’ 그랬더니, ‘내가 이 칼을 여기서 샀는데’ 그러더라고. 깜짝 놀랐지. 그래서 칼을 이렇게 다시 보니까 아니 진짜 내가 만든 칼이더라고. 나는 내가 늙어서 힘이 없으 니까 당연히 지금은 예전만 못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이 두드려온 세월을 무시할 수가 없는 거였더라고.”


그날 안성에서 보낸 시간은 시골 내음, 정갈한 밥상, 온통 그을리고 구부러진 채 바닥을 구르던 쇳덩이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남 들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자부심을 가지고 망치를 두드려 온 한 인간의 삶.


그해 초여름 시작된 글쓰기는 어느새 2년을 향해 나아간다. 가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진 채로 빈 종이를 바라본다. 그렇게 어떨 땐 기어코 써 내려가고, 어떨 땐 결국 잡은 펜을 내려놓는다. 어쨌든 결국 마지막엔 또 종이를 꺼내 들고 기어이 연필을 손에 쥔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영 부족해도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는 것. 내가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고, 그 삶을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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