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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 Sep 05. 2022

다가오는 트럭 앞에서

피로가 평소보다 유난을 떠는 월요일 아침, 지하철 역사에 자리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내가 일찍 올라온 편이었던지 서너 명에 불과하던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금세 큰 무리가 되어버렸다. 하필 이때, 하필 오늘 신입 직원이 들어왔는지, 그는 밀린 컵들을 줄 세우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주문한지 벌써 10분쯤 지났지만 그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이 앞선다. 최대한 표정을 펴고 서 있기로 한다. 그가 빠릿빠릿하기보다는 차라리 좀 더 차근차근하는 편이 우리에게도 더 낫다는 걸 안다.


출구로 나오자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린다. 어렵게 받아든 커피 덕에 오늘도 성실한 직원은 글렀다. 출근 시간은 9시, 빠르게 걸으면 10분, 천천히 걸으면 5분쯤 전에 도착할 수 있다. 


'출근 시간 전에만 도착하면 됐지.'

비도 오니까, 우산도 들어야 하고 커피도 들어야 하니 느긋하게 걷기로 한다.


저 멀리 덩치 큰 트럭이 느릿하게 다가오자 몇 걸음 앞서 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황급히 앙쪽으로 갈라져 총총 뛴다. 비가 와 날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 눈에야 통통거리며 뛰는 모습이 꽤 귀엽고 조금 징그러운데, 사실 저들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조금 서글퍼진다.


얼마 전에는 여름휴가를 대신해 본가로 갔다. 아빠 눈 옆에 미처 아물지 못한 커다란 상처가 있기에 나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찼다. "으이그. 아빠 또 술 마시고 고양이 괴롭혔죠? 딱 봐도 병원가서 꿰매야 됐구만 저걸 그냥 뒀네…." 한심함과 속상함이 뒤섞였지만 밉게 얘기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빠는 낄낄거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아니, 내가 화장실갈라고 딱 방안에 들어가서 불을 켰는데, 이게 어질!하더만 그대로 꼬꾸라졌다니가. 그랬더만 손잡이에 부딪혀갖고 이래 됐다." 그 순간의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나는 훌쩍 어른이 되었다. 세상이 미루고 미뤄 인정해준 청년으로서의 시간도 곧 막을 내린다. 내가 나이를 먹고 변해가는 만큼 내 부모의 시간도 늙어가고 있다. 나의 시간이 슬그머니 무서워지자, 부모의 시간은 이제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에 가까워졌다.


조금은 더 힘이 넘치고, 욕심은 훨씬 많았던 얼마 전까지, 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하루가 달리 아저씨에서 할아버지로 변해가는 그 모습이 속상했다. 자식이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알아서 착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바라듯이, 자식도 부모가 알아서 건강히 오래 살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바심을 냈다. 건강검진도 열심히 받고, 제발 이런 잘못되면 큰일 날 시골에서 살지 않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 주었으면 했다. 뒤바뀐 처지 속에서 잔소리꾼이 된 자식들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흘리는 아빠 때문에 나는 종종 부모를 잃는 상상 속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우리 저녁 나가서 먹을까?"

집순이들은 그저 족발을 시켜 넷플리스나 보고싶지만 아빠는 자꾸 나가자고 한다. 그렇게 등 떠밀려 도착한 고깃집에서 아빠와 나는 소주를 두 병 시켜다 각자 자리 앞에 놓고 자주 잔을 맞댄다. 조금은 알딸딸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역시나 또 개구진 표정을 앞세우고 고양이에게로 간다. 술 냄새를 귀신같이 맡은 녀석은 캬악캬악 아빠더러 오지 말라고 난리다. 그러면 아빠는 더더욱 낄낄대며 녀석을 잡겠다고 손가락에 힘을 준다. 오늘도 아빠 팔에는 상처가 하나 늘지 싶다.


문득 나는 그가 충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니다. 문득이 아닐 수도 있다. 은퇴를 기점으로 그는 어떤 목표에 도달함과 동시에 모든 목표를 잃었다. 우리는 그가 새로운 목표를 찾길, 더 생생히 살아있길 바랐지만 그는 아무래도 더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목표를 잃은 것보다 미련이 없는 그 모습이 더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트럭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다. 즐겁게 사는 중에도, 좌절하는 중에도, 달리는 중에도, 또 멈춰선 순간에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트럭이 오고 있음을 마음 한쪽에 기억한다. 그건 때로는 힘을 내게 하고 때로는 절망케 한다. 트럭이 매 순간 달려오고 있음을 알지만 어쩔 수없이 최대한 그 앞에서 노닥거리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나 역시 그 트럭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마는 것인지 모른다.


이제 더는 아빠가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고 투덜대지 않는다. 그가 원치 않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후회없이 걸어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미련없이 다 해냈다. 그러니 다가오는 트럭 앞에서 종종걸음 하기 보다는 그저 이 순간에 즐겁게 지내겠다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니 존중해주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런 자세가 멋지다고 인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빠보다는 한참 이르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바들바들 떨며 매순간을 목숨 건듯 살지 말자고. 조금 더 느긋이 걷고, 시답잖은 일에 더 많이 낄낄거리자고. 다가오는 트럭 앞에서 종종거리는 대신 환한 얼굴로 춤을 추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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