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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r 15. 2023

이탈리아에선 왜 토끼를 즐겨 먹어요?

< 어멋! 이탈리아, 이건 맛봐야 해! > 이탈리아 토끼 요리

"2023년은 토끼의 해니까 토끼 고기 먹으러 갈래"

"엥? 토..... 토끼를? 그 이쁜 토끼를 불쌍해서 어떻게 먹어....."

"응?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나? 송아지도 아기 돼지도 병아리도 참 이쁜데......"


그러게요. 어쩌다 이렇게 토끼 고기를 애정하게 되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토끼 고기를 몇 번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토끼가 맛있다고 하면 대부분 토끼한테 미안해서 어찌 먹냐, 굳이 토끼까지 먹어야겠냐 하시니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 이쁜 토끼가 맛있기도 참 맛있습니다. 육류지만 흰 살에 과하지 않은 지방도 가지고 있으니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역 사람들은 토끼 요리를 사랑한답니다. 포도밭 산책 길에서는 어김없이 산토끼 한 마리쯤은 늘 마주치게 되지요.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착한 식재료가 맛도 좋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 그래? 토끼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고? 그렇다면...... 어떤 요리가 있는지 들어나 볼까?"


톤노 디 꼬닐료(Tonno di Coniglio)

이탈리아 어로 톤노(tonno)는 참치,  꼬닐료(coniglio)는 토끼입니다. 그런데 톤노 디 꼬닐료? 토끼로 만든 참치? 참친데 토끼로 어떻게 만들어요? 허허허, 그러게요.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 주 사람들은 바다와 거리가 있는 곳에 살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생선 요리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그래서 장거리 유통이 가능했던 소금에 절인 멸치 아츄게(acciughe)와 상하지 않도록 익힌 후 올리브 오일에 넣어 병조림을 한 참치 똔노(Tonno)가 피에몬테 주 전통 요리에 단골손님으로 쓰인답니다. 여러분들이 들어보셨을 친꿰 떼레(Cinque Terre)가 있는  리구리아 주(Liguria)에서 귀하게 모셔왔지요. 그런데 귀하신 몸값 자랑하시니 어디 먹고 싶어도 자주 먹을 수가 있었을까요?

궁하면 통한다고, 누군가 아주 깜찍하고 기발한 생각을 해냈군요. 번식력이 뛰어나고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 쉽게 키울 수 있는 토끼의 하얀 살코기에 착안한 것이지요. 토끼에 양파, 당근, 셀러리를 넣고 푹 익힌 후 살만 잘 발라 올리브 오일을 넣고 병조림을 해 보니, '어라? 이거 모냥새가 딱 참치 병조림인데 토끼 고기로 만든 참치라고 부르자!' 스토리가 상상이 되시지 않나요?

농담을 좋아하는 장난끼 가득한 이탈리아 인 기질이 요리 이름에도 묻어나네요. 실제로 피에몬테 주의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에게 미소를 선물하기 위해 '톤노 디 고닐료'를 참치 통조림 캔 모양으로 세팅을 해서 손님 상에 내기도 한답니다.  


라구 디 꼬닐료 (Ragu di coniglio)

'라구(ragu)'하면 다진 고기에 새빨간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드는 볼로네제 고기 소스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음~ 그런데 담백한 토끼 고기 라구 드시고 나면 아마 다른 라구 생각이 안 드실 겁니다.

"그럼 토끼 라구에는 토마토소스가 안 들어가나요?"

"넵!"

"그럼 라구가 빨갛지 않고 하얗겠네요?"

"넵!"

하얀 라구라니...... 희멀거니 니맛내맛도 없을 것 같은 뭔가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그런데 그게 의외로 맛이 있답니다. 강하고 자극적인 맛보다는 섬세하고 우아한 맛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토끼 라구를 좋아하실 것 같군요. 생고기일 때는 연분홍 빛이 영롱한 토끼 고기는 익히고 나면 색도 희고 맛도 섬세하다 보니 페어링 해서 마시는 와인은 물론, 요리에 쓰는 와인도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을 넣어 잡내를 잡아 준답니다.

토스카나 주에 가면 멧돼지 고기로 만든 라구에 넓은 면 생 파스타 빠빠르델라(pappardella)를 드셔야지요. 피에몬테 주에 오시면  새하얀 토끼 라구에 얇게 자른 생파스타 따야린(Tajarin)이 제격입니다.


플린( Plin )

손으로 꼬집꼬집 꼭꼭 꼬집어 만드는 이태리 식 작은 고기만두 '플린(plin)'에도 전통 레시피에는 고기 속으로 소고기, 돼지고기, 토끼 고기가 꼭 함께 들어갑니다.  


토끼 고기 롤 (Coniglio arrotolato)

뼈를 모두 잘 발라낸  후 속을 채워 토끼 고기 롤을 만들어 오븐에 구워 내기도 하지요.


토끼 오븐 구이 (Coniglio al forno)

이탈리아 요리에서 빠지면 섭섭한 채소 삼총사 양파, 당근, 셀러리와 토끼 고기를 넣고 강한 불에 그릴 했다가 화이트 와인을 넣어 부드럽게 익힌 후 다시 높은 온도의 오븐에 넣어 색을 내는 겉바속촉 토끼 오븐 구이도 일품이랍니다. 랑게(Langhe) 지역과 가까운 로에로(Roero)의 전통적인 오스테리아 '오스투 디 디듄(Ostu di Djun)'에 가시면 겉은 부드럽고 속은 쫄깃한 기가 막힌 토끼 오븐 구이를 맛보실 수 있답니다.


토끼 숯불 통구이 (Coniglio alla Griglia)

토끼를 통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숯불 위에서 그릴해 만드는 요리입니다. 사르데냐 섬에 가면 새끼 돼지 통구이 그릴이 유명하지요. 피에몬테 주 알따 랑가(Alta Langa) 가는 길목에 위치한 'Filippo Oste in Albaretto'에 미리 예약을 하시면 토끼를 통으로 숯불에 구운 요리를 맛보실 수 있답니다.


"그렇게 맛있다는 토끼 요리에 와인이 빠지면 되나요? 와인은 뭘 마실까요?"


글쎄요, 담백한 흰 살 생선 토끼 고기엔 화이트 와인 어떠세요? 이왕이면 이 지역 와인으로 추천합니다.


하얀 복숭아 향과 오렌지 꽃 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혀 위에서는 적당한 산도와 짭짤함 마저 느껴지는 로에로(Roero) 지역의 화이트 와인 아르네이스(Arneis) 한 잔 곁들여 보세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비집고 나오는 미소는 덤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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