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던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그제야 배가 조금 고파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주말 저녁, 무언가를 ‘밖에서 간단하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람처럼 이탈리아 인들도 먹는 것에 진심인지라, 한 접시만 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딱 한 접시만 간단하게 먹고 싶을 때는 레스토랑이나 오스테리아, 뜨라또리아에 가면 안 된다.
간단한 토스트나 샐러드를 먹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 와인 한 잔에 간단한 안줏거리를 시킬 수 있는 비네리아 혹은 에노테카에 가야 한다. 꼭 탄수화물을 피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핏쩨리아가 제일 만만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살다 보니 한국처럼 배달 서비스도 없고, 가볍게라도 남이 해 주는 끼니를 먹으려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어둠을 뚫고 15분 운전을 해서 도착한 알바 Alba. 늦은 시간이지만, 예약 없이도 운 좋게 핏쩨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 점심을 거르고 첫 끼로 피자를 먹자니 빈속에서 구겨 넣지 말라고 아우성을 친다. 어찌어찌 맥주 한 잔에 피자를 해치웠다.
커피도 한 잔 시켰다. 한국에서는 한겨울에도 ‘얼죽아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던데, 이탈리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위는 없다. 그냥 아메리카노라도 입맛에 맞춰 마시고 싶을 땐, 에스프레소를 큰 컵에, 뜨거운 물은 따로, 알아서 농도를 조절해 마신다.
시험 기간 도서관에서 공부할 땐 자판기 따뜻하고 달달한 믹스 커피도 즐겨 마셨는데, 이탈리아에 오고 나서는 이상하게 단맛보다는 짠맛 추종자가 된 지라, 설탕은 넣지 않는다.
커피를 주문하자 홀직원이 백설탕, 흑설탕에 설탕 못 먹는 이를 위한 당뇨 환자용 감미료까지 가득한 설탕 상자를 내민다. 이탈리아 인들 중에서도 가끔 작은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을 두 세 봉이나 털어 넣고 커피가 아니라 무슨 커피에 녹인 걸쭉한 커피 설탕 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고맙지만, 설탕은 됐어요.” 하자, 홀서버는 대뜸 “O~~~ Caffè amaro, come la vita?” 하고는 싱긋 웃으며 설탕 바구니를 치운다.
인생처럼 쓴 커피.
설탕 없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이탈리아 인들이 으레 하는 말이다.
30ml 쓴 에스프레소 한 잔은 4그람짜리 설탕 한 봉지면 그만이다.
인생에는 어떤 감미료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