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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Jun 06. 2023

글 한 편 쓰는 게 힘들어서

아내의 도움을 얻어본다


  현충일 오후, 아내와 동네 커피숍을 찾았다. 음료를 주문하고 아내는 독서를,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나에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이제 상당한 각오와 다짐을 필요로 한다. 안 쓰는 건지, 못 쓰는 건지 그 차이도 이제는 분간이 어려울 지경.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하루 한 편 정도의 글은 써야지 하던 그 옛날 순수했던 다짐은, 이제 편두통처럼 머릿속 한편에 자리한 채 나를 괴롭힌다. 본업인 공장에서의 노동이 힘들고 지겨울수록 외면했던 글쓰기가 눈에 밟힌다.


 하루 10시간씩 공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게 싫다.

 매주 밤낮을 바꿔가며 수명을 갉아먹듯 일하고 싶지 않다.

 나도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멋있고 고고하게, 세련되고 우아하게 일하고 싶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


 나의 글쓰기를 향한 마음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아마 공장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돈이 생긴다면 분명 나는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일하기 싫어서 글을 쓰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욕심이 내 글쓰기의 원천이다. 이것이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쓸 이야기가 없는데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꾸는가 말이다. 일상은 반복되고 고되다. 직업적 성취감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피로감뿐이다. 가족 안에서 행복하지만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까 봐 한 편 불안하다.


 나의 이런 고민과 고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다. 그녀는 수시로 나를 북돋우기도 하고 푸시하기도 한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데 의욕을 불태우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어떤 글을 써 보란 식의 제안도 하고, 이런 문장은 별로단 식의 지적도 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학력과 돌려 말하지 않는 솔직한 성격이 어우러져 한없이 나를 작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는 글을 쓰는 것이 별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창작 행위임을 잘 안다. 그래서 당장의 생계를 꾸리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사십 대 남편의 고민과 방황에 반응하고 도움주려 한다.


 아내는 어느새 읽던 책은 덮고 노트를 펴서 캘리그래피를 연습한다. 힘들게 글을 쓰는 내 옆에서 묵묵히, 마치 힘 빼고 자기처럼 이렇게 쉽게 쉽게, 매일매일 해 보란 듯 행동으로 이야기한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당장 공장 일 때려치우고 글 쓰며 살기는 요원하겠지만, 지금 커피숍에 와서 글 쓴답시고 아내와 데이트하듯 이리도 호사스러운 오후를 보내는 건 가능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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