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생인 큰 아이의 짧은 겨울 방학이 오늘 마지막 날이다. 방학이 3일이라니. 코로나 19로 생겨난 전에 없던 상황이다. 지난 이틀은 아내가 반차를 내고 일찍 집으로 왔고, 오늘은 내가 직장에 연차를 쓰고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덕분에 오늘 하루 어린이집을 쉬게 된 둘째까지 해서.
눈뜨자마자 자기들과 놀아달라 아우성인 녀석들. 갓난쟁이들이 아닌지라, 모른 채 하면 툴툴거리며 지들끼리 노는터라, 푹 쉴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픈 유혹에 빠지기 딱 좋은 날이다. 새로 산 커다란 티비가 넷플릭스 콘텐츠들과 그동안 못했던 PS4 게임 타이틀을 즐기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나를 잡아끄는 건 두 아이들의 고사리 손들. 그래, 좋다. 마음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층간소음 발생 우려를 비롯, 귀찮음과 유치함을 이유로 아이들과의 몸으로 노는 놀이를 해 준지가 제법 됐다. 코로나에 혹한까지 겹쳐 밖에 나가기도 어렵겠고.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한 판 하지 뭐.
"이 녀석, 우리가 가만두지 않겠다. 내 칼을 받아라!"
"오빠, 조심해! 내가 마법을 쓸게!"
거대한 아빠 로봇을 쓰러뜨리기 위해 남매가 최선을 다해 협공을 펼친다. 장난감 방에서 심사숙고 끝에 집어 든 무기들로 어떻게든 이겨보려 애쓰는 녀석들. 조금 버겁기는 해도 오랜만에 땀 흘려 노니 아빠도 아니 즐거울 수 없구나. 한 시간을 서로 '싸우고' 나니 셋 다 기운이 쪽 빠진다. 얘들아, 점심 먹어야지? 오늘 같은 날에는 무조건 짜장면이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좋은 아빠로 완전 무장한 아빠는 의기양양하게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이후에는 기기를 이용한 게임의 향연이다. 큰 아이의 친구들 틈에 섞여 휴대폰 레이싱 게임을 한참 하다가,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제시되는 색깔의 판 위에 올라서서 생존하는' 게임까지 같이 즐기고, 패드를 움켜쥐고 주먹을 휘두르며 티비 속 캐릭터가 되어 상대와 대결을 펼치기까지 하고 나니, 시간은 후딱 흘러가 버린다.
이제 셋이 함께 식탁에 앉아 큰 아이는 문제집을, 작은 아이는 스케치북을 펼쳐 각자 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옆에서 브런치를 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일기 같은 글이 돼 버렸다. 아이의 방학 덕분에 한 주의 가운데 선물처럼 찾아온 휴식을 생각보다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이 기분 좋음을 남기고 싶어 쓴 글이다.
어떨 때는 부모로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뭔가 거창한 것을 해 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교육적이고 창의적인, 다양하고 의미 있는 경험들을 시켜줘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의무감 같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채 그냥저냥 같이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 다 큰 성인으로서 자기희생이 제법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웬만한 건 다 내려놓고 최대한 유치뽕짝으로 놀다 보면, 어느새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