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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Jan 04. 2021

올해는 욕심내기로

예전보다 더, 남들보다 더

 

 얼마 전 집에서 영화 '테넷'을 다시 봤다. 극장에서 한 번 보고 넘기기엔 제법 복잡스러운 이야기인지라, VOD 서비스로 출시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더랬다. 게다가 영화 본편과 더불어 제작 과정에 관련한 감독과 배우들, 제작진의 인터뷰 영상을 같이 볼 수 있는 것도 기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였으니 말이다. 다시 봐도 영화는 재밌었으니 넘어가고, 부록인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그만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버린 게 이 글의 시작이다.


 스케일이 큰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만든 이들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에 대한 내용. 천재 감독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영화를 향한 열정과 노력이 펼쳐지고, 그 위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자신의 역량을 수놓는 과정들이 쭉 이어진다. 최고의 촬영 감독이 거대한 아이맥스 카메라를 짊어진 채 배우들과 함께 뛰어다니고, 연출진과 미술팀은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고 규모와 디테일에 입을 다물기 힘든 세트장을 짓는다.


 특수효과와 스턴트팀은 최대한 CG를 쓰지 않으려는 감독의 요구에 맞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3주간 빌려 자동차를 뒤집고 역주행하길 반복하고, 실제 사용 중인 공항에다 건물을 짓고 거기에 실제 여객기를 갖다 박는다. 음악감독은 대본만 보고 작업실에 앉아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촬영 스케줄에 동행하며 현장을 목격하고 배우들을 인터뷰하며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배우들은 이러한 제작 과정에서 얻는 현장감을 바탕으로 훨씬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테넷'을 제작하며 난다 긴다 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도전이었고, 하루하루 배워가며 일했다는 이야기를 쭉 듣다가, 동경과 부러움을 느낀 동시에 질투와 좌절감으로 범벅이 된 채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타공인 최고들이 모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해내고, 다시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다는 그들의 으쓱거림을 보고 있자니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저러한데, 나는 이게 뭔가? 이 나이 먹도록 내 일에 전문성은 고사하고, 아무런 열정도, 애정도 없는 공장의 단순노동을 위해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고 사는 내 신세는 무언가 말이다.


 힘들게 영상을 다 보고 방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한숨 자고 일어나 다시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내 신세 탓이다. 뭐가 문제일까? 이러라고 만든 제작 영상은 아녔을 텐데, 왜 난 엉뚱하게 기분을 잡친 채 누워 잠 못 들고 있어야 하나? 그래, 나도 잘 나가고 싶은가 보다. 나도 내 분야에서 정점에 올라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과 함께 일하며 웅장한 족적을 남기고픈 욕심이 있나 보다. 근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조금 의외다.


 '어라,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정말 그런 걸까? 늘 승부욕도 없고 욕심도 없이, 남들이 잘되던 말던 신경도 안 쓰고 사는 그것이 선이라 여기던 내가 이제는 바뀐 걸까? 나도 더 잘해보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만족하고자 애쓰는 인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건 아닐까? 곤두박질쳤던 기분이 조금씩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좋겠다. 2020년은 40년을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살아온 나를 알아가는 한 해였다. 심리상담을 받고, 캠핑을 다니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집을 사서 이사 온 과정까지 돌아보면, 작년 한 해는 이제는 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를 흔들고 깨닫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렴풋이 그 변화가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니, 그제야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내 기분이란 녀석은 완전히 좋아지고도 남았던 것이다.


 나도 욕심 좀 부리고 살자. 예전보다 더, 남들보다 더 잘 살려고 기 좀 써 보자. 초조함도 느끼고, 조바심도 내 보자.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되는 건 더 잘 되게 해 보자. 시간도 잘게 쓰고 뭐든 열심히 하려고 아등바등거려 보자.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도달하려고 노력해보자, 아니 무조건 도달하기로 하자.


 이렇게 작년에서 올해로 넘어오며 얻은 성과이자 다짐을 짧은 글로 옮겨본다. 부디 일 년 뒤에는 질투와 좌절 말고, 성취와 뿌듯함으로 도배된 문장만이 내 글에 가득하기를 스스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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