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버팀글 Jan 25. 2021

임금 협상에 실패하며



 서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니...
더 이상 협상은 어렵겠네요. 외부기관의 판단에 맡기죠.



   다섯 번에 걸친 임금 협상이 1차적으로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2021년 우리의 노동 가치를 결정하는 자리는 이제 '지방노동위원회'의 손에 달린 셈.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마음이 가볍지만 않다. 이게 최선인가? 좀 더 협상을 해봐야 되는 건가? 끝까지 오락가락한 마음을 붙들지 못한 채 회사 본관 문을 열고 나섰다.


   나는 어느 작은 자동차 부품 재하청 공장의 노동조합에서 사무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작년 12월부터 우리 회사 노동자 측 대표 중 한 명으로 임금 협상 테이블에 앉아 목소리를 내 왔다. 오래전 직장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 덕분에, 우리 정도 규모의 타 업체와 비교해 괜찮은 노동 환경 속에 일하고 있다. 고용주와 마주 앉아 임금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 또한 그 덕분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공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금 협상은커녕 일한 만큼의 제대로 된 대가를 주지 않는 곳도 수두룩하다.


   작년 한 해는 우리도, 회사도 모두에게 다 어려운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외국으로 납품을 가야 하는 제품들이 항구에서 발이 묶이게 됐고, 매출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계들은 작동을 멈췄고, 우리 중 상당 수가 휴업에 들어갔다. 텅 빈 공장에서 최소 인원만으로 운영에 들어갔고, 직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회사의 폐업을 예상했다. 월급이 밀리고, 삭감되면서 한동안 근심 가득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은 부분이 정상화되었다. 올해부터 1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에 특별 연장근무를 신청해서 운영할 만큼 일도 많은 편이다. 직원을 새로 채용했고 설비도 추가로 들여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밀려있던 임금도 해가 바뀌기 전 정산되고, 삭감되었던 금액도 보전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는 회사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인상률만큼의 인상안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요구했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작년에 매출이 줄었고, 해마다 줄고 있고, 올해도 어려움이 예상되니 그건 안될 말이라며 각을 세워왔다. 1.5%라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너무 적었고, 우리는 작년의 고통 분담에 대한 회사로부터의 보상을 좀 더 많은 임금으로 돌려받길 원했다. 주 52시간 근무로 줄어드는 근무 시간 탓에 줄어들게 뻔한 임금도 당연히 문제였다. 어려운 시기인 건 사실이나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서 그 이유들을 나의 세치 혀로 잘 굴려 전달하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다. 어리석게도 나의 화술이 저들을 구워 삶을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보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경청했고, 내가 말하는 우리의 상황과 요구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시간이 길어지고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우리가 제시한 요구안이 너무 현실성이 결여됐다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미는데 무슨 협상을 하겠냐는 성토와 함께 판은 엎어지고 말았다.




   본관을 나와 현장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에 결론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노사 간 입장 차이를 좁히는 해결사가 되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 삶을 지탱하는데 가장 중요한 '일해서 벌어가는 돈'을 내 개인의 능력을 통해 조정해 보고 싶었나 보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해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회사의 입장도 잘 이해하고 배려하며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아직도 나는 현실에 발 딛고 사는 게 어려운 인간이구나. 애초부터 무모한 생각이었다는 걸, 협상이 결렬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다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일은 없게 됐다. 노동자 대표인 노조위원장과 사측의 대표이사, 그리고 외부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몇 명이 우리의 올해 임금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나를 드높이는 문제는 사라지고, 내가 얼마를 받고 일하게 될 지의 문제만 남았다. 그러게, 애초부터 본질은 이거였는데, 왜 혼자 엉뚱한 그림을 그리다 좌절하고 난리였을까?


   회사를 비롯해 다른 모두에게 중요한 건 '돈'이지, 내 '명예'가 아니었다. 이번 협상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에 나 혼자 몰두하면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그 당연한 진리 하나 배운 것으로, 나와는 마무리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관없어, 나만 아니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