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작업 장갑을 벗고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마스크의 코받힘과 콧등을 밀착시킨다. 새벽안개처럼 안경 렌즈를 뒤덮는 김서림 탓.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일하고 있다지만 함부로 마스크를 벗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여기 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다들 긴장도가 높은 상황이다. 수십 명의 시민들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하루하루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도 모이려 들지 않는다. 최대한 동선을 줄이고 타인과의 만남을 자제한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서는 비교적 안전하다 여기며 생활했던 터라, 사실상 이번 사태가 우리 지역민들이 맞이한 첫 팬데믹인 셈.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고,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방역에 구멍을 낸 지자체 행정을 향한 원성과 더불어 생업에 지장이 생긴 자영업자들의 한숨들로 넘쳐난다.
공장 직원들의 얼굴에는 빠짐없이 마스크가 씌워졌다. 사실 코로나와 무관하게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하는 우리의 일임에도, 다들 잘 쓰지 않았다. 숨쉬기 불편하니까.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기름 섞인 공기와 미세한 쇳가루가 지금 당장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목전까지 들이닥치자, 묵묵히 입과 코를 막고 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질병 그 자체에 대한 공포도 상당하지만, 이 공장 안 사람들의 진짜 걱정은 개인 방역을 준수하지 않다가 전염병에 걸려 이 곳에서 자기 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에 급급한 이 작고 척박한 공장에서, 아픈 동료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걸리면 큰일 나는 거야. 생각해봐, 우리 같은 조그만 공장에서 확진자 나오는 순간, 전부 자가격리되고 공장 문 닫는 거야. 완전 폭탄 떨어뜨리는 거지."
"설사 누가 코로나 걸렸다가 다 낫고 돌아와도 아무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을걸? 너 때문에 우리가 괜히 손해보고 고생했다며 눈치 엄청 줄 건데, 어떻게 다시 출근해서 일을 해? 알아서 퇴사해야지."
"여기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코로나 확진자라고 소문 쫙 퍼져봐, 아무 데도 안 받아줄 걸? 아예 다른 데 가서 살아야 될지도 몰라."
"야, 너 어제 몸 안 좋아서 안 나온 거라며? 혹시 코로나 아니야? 내 옆에 오지 마라! 훠이, 저리 가 저리 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들을 서로 뱉어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버린다. 그러고는 누가 그 뻘 구덩이에 떨어지든 나만 아니면 된다는 듯, 나 말고 다른 누가 이 공장의 '1호'로 어서 등록되길 바란다는 듯, 스스럼없이 타인의 불행을 희망하고 간절하게 자신의 안녕만을 기도한다.
별 일 없이 멀쩡한 오늘은 네가 나의 동료지만, 저 구덩이로 떨어진 내일의 너에게 나는 결코 손 내밀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현실. 이것이 어쩌면 이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남길 가장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