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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버팀글 Sep 02. 2021

더 이상 죽지도 다치지도 않기를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한 저녁, 공장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간조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낮에 사고가 있었단다. 제품 포장 라인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한 분이 지게차에 치였다고. 깜짝 놀란 내 두 눈이 휘둥그레지니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며 일단 안심부터 시킨다.


  지게차가 팔레트 몇 개를 쌓아 올려 한꺼번에 들고 움직이다 보니 운전자의 전방 시야가 가려져 있었고, 일이 바빠 정신없이 움직이던 노동자도 다가오는 지게차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게차도 저속 운행 중이었고 부딪힘과 동시에 튕기 듯 몸을 비켜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전하는 이도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 공장의 일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은' 일이라 여기며 근무 중이다. 조선소나 발전소 같은데 비하면 다칠 걱정은 사치에 가깝달까? 하지만 둘러보면 공장 안은 죄다 위험한 것들 투성이다. 한순간의 부주의로 일어날 사고가 큰 일로 이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들 못해도 한 번쯤은 아찔한 순간들을 경험하고는 한다. 그리고 간혹 그것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은 퇴사하신, 꽤 연세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정년이 다 될 때까지 이곳에서 일하셨고, 이후 계약직으로 몇 년 더 일을 하셨더랬다. 나는 입사해서 그 분과는 대략 3년 정도 같이 일할 수 있었다. 워낙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해서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고, 가끔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워 내게 묻고 하셨던 게 어쩌다 나누는 가장 긴 대화였다.


  어느 날 기계 앞에서 한참 일하는 중에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그분이 나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생각나셨단다. 그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는 공구에 결합하는 커터를 다룰 때 주의할 점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커터를 결합하기 전에 가공 여부를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동작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꼭 눈으로 보라며, 절대 감으로 하지 말라며. 그때 알았다. 커터를 잡는 그의 집게와 중지 손가락 끝 일부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작은 공장의 오래된 기계들은 아무래도 사람 손이 더 많이 가기 마련이다. 자동화 설비들에 비해 일일이 공정마다 기계 문을 여닫아야 하고, 기계가 가공을 멈추면 허리를 숙인 작업자의 몸이 반쯤은 기계 속으로 들어가 제품을 넣고 빼내야 한다. 낡은 기계는 수시로 문제가 발생하고, 그때마다 관리자나 직원들은 기계 위로 오르고 아래로 들어간다. 모두들 안전은 뒷전이다.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픈 작업자들도, 일이 빨리 진행되었으면 하는 회사도 모두 관성에 젖은 채 자기 일을 해 내기 바쁠 뿐이다.




  하루에 2,3명씩 '반드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나라.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철판에 깔리든, 컨베이어 벨트에 말려 들어가든, 지게차에 치이든, 떨어지든, 무너지든, 폭발하든, 어떻게든 빼먹지 않고 차곡차곡 죽어나간다. 갑자기 창궐한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아등바등거려온 지난 1년 7개월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한 사망자만큼이나 같은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방역을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노동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국가도, 기업도 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부정하기 일쑤다.


  개인의 안전에 대한 주의와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이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맡겨만 두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스스로 일정 부분의 이익을 포기하고 노동자 안전을 위해 방안을 마련할 것을 자본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같은 규제가 하루빨리 자리 잡길 희망해본다.


  그렇게 이 땅에 더 이상의 김용균, 이선호가 나오지 않기를 빌어본다. 대단한 바람도, 욕심도 아니잖는가? 적어도 나의 일터에서, 일하는 환경의 열악함과 안일함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퇴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함을,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쌓여야 깨닫게 되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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