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공장 노동자로 살기 위해
'나이도 어린것들이 공장 같은데라도 들어가서 일할 생각은 안 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인기를 얻는 동시에 그것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개인방송 BJ들이 많다는 인터넷 기사 밑에 달린 댓글 하나였다. 그것을 무심코 읽은 순간, 그날도 공장에 나와 땀 흘려 일하던 내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졌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살라는 저 말이 뭐 그리 문제겠냐만은, 은연중에 깔린 것만 같은 비하의 뉘앙스를 애써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내가 내 일이 하기가 싫어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설사 내 마음의 문제라 할 지라도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그것도 지방의 소도시에 작은 하청공장 노동자를 업으로 삼는 것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저 댓글을 단 이의 바람과는 달리 그 누구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물며 방송한답시고 카메라 앞에 앉아 떠드는 대가로 많은 돈을 버는 이들이 인터넷 댓글 하나에 자기 삶을 바꿀 리가 없다. 더러운 곳에서 힘들게 일하며 적은 돈을 벌어가고자 스스로 이곳에 걸어 들어올 리 만무하다.
가끔씩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이번에는 꽤 오래 휘둘리는 중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게 끔찍이도 싫다. 더위 탓일까? '코로나 블루' 같은 건지도 모른다. 한 여름 불볕더위에 안 그래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장 안에서, 마스크로 코와 입을 틀어막은 채 쇳덩이를 들었다 놓는 하루 10시간의 노동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여름이 지나면 덜하겠지? 코로나가 끝이 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 밤이 지나면 밝아올 새로운 노동의 한 주를 다시 보낼 생각에 주말의 끝자락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던 와중에 여섯 살배기 둘째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웃으며 글 쓰는 아빠 옆으로 쪼르르 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 종이 접기를 한다. 정해진 과제를 미뤄 혼이 난 큰 애는 소파에 앉아 실뜨기로 양손을 요리저리 움직여 가위와 빗자루 등을 만들어 놀며 빠진 기운을 채우는 중이다. 집은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지만 뭐 하나 부족함 없이 갖춰져 있다. 나쁘지 않다. 아니, 나는 분명 남들 못지않게 행복한 삶을 산다.
부자는 아니지만 풍요롭고 여유 있다. 가족은 화목하고 모두가 건강하다. 늘 맛있게 먹고 편히 잔다. 빚은 있지만 문제없고, 적게라도 어느 정도 남들에게 베풀며 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매일을 공장에 나가 땀으로 일궈내는 나의 노동에서 비롯된 것들이기에, 나와 내 가족에게 나의 일은 분명 귀하고 소중하다.
다른 누군가 내 고생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대단한 노동강도도 아니고, 내가 번 돈이 그 문제적 유튜버들이 번 돈보다 더 가치 있다 믿지도 않는다. 그저 나를 채우고 싶다. 고된 노동을 핑계로 자꾸 흘려보내는 나의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다. 꿈꾸던 나를 잃어가는 내가 나를 힘들게 한다.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단 다짐과 바람이, 어느 순간 이룰 수 없는 환상이라 여겼다. 그렇게 공장에 갇힌 내 처지와 현실로 도피만 일삼아 온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지나버린 시간만큼 나를 웅크리게 만들었다.
며칠 전 본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에서 주인공이 툭 하고 던진 대사 한 마디가 마음속 깊이 쿵 하고 자리 잡았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내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잖아요.
공장 일이 싫은 건, 공장 일이 끝나면 그 무엇도 채우려 들지 않는 내 게으르고 무기력한 일상이 싫어서다. 결국 나의 일을 사랑하려면, 일하지 않을 때의 나를 바꿔내야 한다. 공장 노동자로서 돈을 벌고 그걸로 내 가정의 화목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나는 결국 텅 빈 내 속을 채우고 그것들을 다시 글로 뱉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 깨달았지만 애써 모른 채 해 왔다.
1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고 타올랐던 글쓰기를 향한 의지와 욕구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모두 잠든 이 밤, 내 마음속 자리한 누군가가 다시 한번 나지막이 읊조린다.
"지금 포기하면, 네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