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따라 시간도 흘러가겠지
퇴직이 한참 남았지만, 하게 된다면 하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공립도서관에 가서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는 일이다.
공립도서관은 여러모로 즐겁다.
대학도서관과 달리 수험생이 적어 공기가 무겁지 않다.
내가 도서관에서 충분히 즐거워도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 언덕배기에 있기에 가는 길에 적당히 땀이 흐른다.
출퇴근마저 사라지면 영영 사라질 내 삶의 신체활동이 계속될 수 있다.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어 경제적이다.
얼마 되지도 않을 퇴직금으로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산다면 결론은 뻔하다.
구내식당 정도면 나한테는 맛집이다.
정식이란 메뉴는 매일 반찬이 바뀐다.
여유가 쫌 생긴 날에는 정식보다 천 원 비싼 돈가스를 먹고,
스스로가 작아지는 날에는 천 원 더 싼 잔치국수도 괜찮다.
자판기 커피는 동전이면 그만이기에,
그동안 돼지저금통에 모아두었던 동전이면 일 년은 거뜬하다.
그렇지 않을 것으로 확신이 들지만,
책이 지루해지는 날에는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보면 된다.
19금 영화는 뒤통수가 뜨거워서 못 보겠지만,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 명화는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책을 보다 문득 고개를 들면,
도서관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에서 걸려있는 사계를 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흘러가는 시간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