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다른 인연

고양이 빌딩의 당신

by 스티븐

왜 몰랐을까. 분명 중개사로부터 전해 받은 입주 임대 계약서에 쓰여 있었을 텐데. 아무리 그녀와 이별했어도. 흔한 이름이라 생각했을까. 그랬던 게다.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아서. 임차인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고, 모든 사정을 일일이 이해해 주려 했다가는 수익률은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시점. 1년 가까이 멘탈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경험해본 터였다. 해서 이름보다는 관리 네임을 두고 관리했다.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거나,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해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녀가 동명이인일 뿐으로만 생각했을 게다. 그저 ‘차.도.녀’ 라고는 기억해도 ‘이.소.연’ 으로 판별하진 못했다. 아니 안했다가 정확하겠다.


헌데, 어차피 만날 인연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눈매와 눈망울에 익숙했던 걸까. 사람일 참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녀의 외모는 많이 변해있었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옛 소연씨의 이미지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렵게 물어보고 들은 답으로는, 정확히 견적 1,900. 이마는 꽤 넓어졌으며, 눈의 좌우 트임은 선명해졌고, 턱은 양악술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였나. 아니면 내 관찰력이 변한 건가. 변하지 않은 건 그녀의 눈망울 뿐.


그래. 어찌 모르겠나. 눈을 감고들은 목소리였다면 기억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는 척을 하고, 이야길 먼저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반가운 나머지. 모른척했던 그녀가 오히려 야속했다.

내가 내 스스로를 임대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 그녀의 눈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펀드매니징 업무를 하며 수천만 원에 가까운 분기별 인센티브를 받아가던 내가, 추레한 복장으로 옥탑 방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철문 뒤 막긴 공간의 사람으로, 독거를 자처한 알바 생으로 변해버린 내 모습이. 충분히 이상하고, 한심하지 않았겠나.


- 너무 흔해서.

- 응?

- 생긴 것도 행위도 모두. 업으로 들고나는 투자 거래장이 그리 싫진 않았어. 투자정글의 재미도 매력 있었고. 헌데 부장급 정도를 꿰어 차려면 좀 달라져야겠더라. 인상이 너무 평이하다고. 그 할머니도.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사람으로 남기엔 부족하다고.

- 아 그랬군. 그 할머니?

- 응 그 할머니. 우리 싸운다고 헤어지라던 그 할머니.

- 아 그 이상한 할머니. 그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도 했던가?

- 아니. 난 사실 그 할머니한테 재미삼아 자주 가곤 했어. 남자들이야 능력 좀 보여주고 수익률 가지고 싸움하는 모습 보여주면 되잖아. 여자는 남자처럼 해도 안되는 게 여의도자나. 그래서 했어. 좀 더 편한 얼굴로 아침을 시작하고 싶기도 했고. 됐지? 이제 왜 했는지는 묻지 마.


그 이 상은 묻고 싶은 것도, 물을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10년 만에 만난 소연씨는 당차게 변해있다. 어쨌거나 더 세련된 소연씨가 내 인생에 재등장 해주었으니까. 손쉽게 반말을 내뱉는 그녀가 밉지 않다. 언제든 재회하면 반가울 여자. 다시 만난 것 자체가 신기했고, 하필 이 건물에서. 허긴 여의도가 여기서 가깝기는 하다. 마음속에 일었던 바람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 이 상황이 좋으니까. 그저 좀 더 편하게 말을 이어갈 그녀를 다시 만났으니까. 용기를 내보자.


- 아니. 그럼 이야길 해주지. 난 꽤···.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 말했잖아. 그날. 옥상에서. 기억이 나냐고. 네가 도망갔잖나.


그 여름밤의 그날.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취기가 가득한 그녀가 했던 말. 내겐 하소연을 시작하는 임차인만 그득한 시절의 또 다른 상황이라 여겼을 뿐.


첫 회사의 짧은 기간 동료였고, 나와는 네 살 차이. 평상시 사람들과의 대화, 일의 결과, 살아온 이야기들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나와 동격이었다. 마주 보고 대화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소담하고 여성스러운 말투였던 과거의 그녀. 이젠 강한 어조의 직설적으로 변한 지금의 그녀가 내겐 반갑기 그지없다. 그렇게 그녀는 내가 만나고 듣고 지내기에 완벽한 여자로 변모해 있다.

다만, 한 가지 그녀가 가진 콤플렉스 하나라면 짧은 학력. 전문정보산업고 고졸. 그녀는 4수를 한 끝에 입사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노력파 중의 노력파 아니겠는가. 그 남다른 노력은 입사 후에도 자신만의 능력을 그대로 펼쳤다. 그리고 입사 후 1년 만에 서류처리나 하던 그녀는 정직원으로 승진발령.


난 그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콤플렉스를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내겐 전혀 문제될 사항도 아니었으니까. 돌이켜 보면 그녀가 가진 깊은 내면과 지혜는 충분하고도 완벽했다. 아니 나는 오히려 격차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세계는 경제 경영을 공부했던 나보다 월등했고, 내가 회사를 나올 때 즈음 그녀는 오히려 투자1실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승승장구 하던 모습이었다.


아름다웠다. 키 170cm의 큰 키에, 마르고 예쁜 전형적 여성미를 가진 그녀. 화려하기 보단 단정하지만 정도 있게 차려 입었다. 윤기 있는 긴 생머리에선 항상 꽃향기가 피었다. 모 없는 계란형 얼굴라인과 단정한 자태에서 그녀는 워킹 걸이자 도시감각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라도 그녀에게 연애 담론을 궐기하듯 나 홀로 전율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내면은 고양이보다도 한 수 위의 여우이자, 프로중의 프로다. 10년 만에 만난 그녀는 견적 1,900이 아닌 화장품 1,900만 원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생각하자. 내 기억의 그녀도 다르지 않기에 마음속에 충분하다. 이소연. 이제 난 그녀와 새로운 관계로 가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닐까.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소연씨는 여전히 연염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헤어지자마자,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 차이자 마자부터 그리워했고, 잊지 않았으며, 최근에 바라온 당신이라는 여자를 이렇게 재회했다. 내가 고마웠다. 우린 어쩌면 고마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인연 일거야.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도 분명 인연이 되는 방법 중 하나일거야.


그 후로 우린 다시 자연스레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담소를 나누는 사이. 그 관계가 된 것이 좋았다. 우연이지만 반가운 재회. 그 뒤로 우리는 좋은 관계가 되었다. 나는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해서 우선 나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바꿨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꼬박꼬박 반응 했고, 동공을 최대한 키우고 그녀의 모든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가 힘들어하면 슬픈 표정을, 그녀가 즐거워하면 함께 웃었다. 크게. 소리 내어. 그녀의 모든 생각에 들어가 있을 순 없어도 한참을 고민하지 않아도 바로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

그녀와 재회 후, 한 달 여가 되어 갈 때부턴 만나는 횟수도 꽤 늘기 시작했고 장소도 편해졌다. 다시 돌아온 봄처럼. 평상에서, 공용 오피스에서, 그리고 주변 탄천에서 동행했다. 부모님이 다녀가신 정이 남긴 자리에 그녀가 찾아왔다. 찾아온 그녀는 내게 축복과 같았고, 그녀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 과정이 나 스스로 놀라울 정도였다. 내 스스로가 많이 바뀌었고 그녀에게 ‘최선’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녀도 무심히 한 마디 남겼던, ‘재미없다’던 때와는 많이 달랐다. 우린 좀 더 가까워졌다. 옛날처럼 모진 구석에 앉아 받았던 심리적 압박감은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내게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어느새 우린 주말을 항상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 함께 가 주었으면 하는 곳이 있어.

- 응. 어디. 어디든 가자. 오늘도 즐겁게.

- 그럼 놀라거나 부담 가지지 말고 식사하고 오는 걸로.

- 도대체 어느 맛집이길래. 오케이.


여느 때처럼 그녀는 또 즐거운 주말 데이트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해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난 그녀와 함께 우리 본가를 찾았다. 집에 들어서려니 멈칫 놀라던 그녀에게 힘주어 이야기 했다.


- 소연씨가 처음이야. 우리 집에 온 내 첫 여자친구.


망설이던 그녀는 다시 내 뒤에 섰다. 부모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놀랐다. 그녀도, 어머니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 우리의 모습에 당황하셨다.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자리에, 준비되지 않은 일상의 밥상으로 식사를 하는 걸 원했다. 좋은 것도, 나쁠 것도 없이. 어머니는 그녀의 면면을 유심히 살피셨고 아버지는 연신 웃기만 하셨다. 식사를 마칠 무렵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안도하셨다. 무엇보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사이였고, 10년 만에 다시 만났으며, 그녀는 지금 같은 건물에 입주해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반색하셨다. 되레 지금까지 왜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냐는 반응으로 마무리. 어머니의 수술 소식에 힘들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운명 같은 재회로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어쩌면 예정된 일 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택시 안에서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려 캣타워 1층 공용공간에 들어서, 문을 닫을 때 까지 말이 없는 그녀. 그녀 뒤의 꽁무니만 따라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돌아서며 내게 짜증을 냈다. 왜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 그 자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의 의미가 있는 자리인 건지 그녀는 삼켜두었던 질문을 질곡처럼 줄기차게 뱉어냈다.


- 가족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리고···


뒷말을 머뭇거리는 내게 그녀는 싸늘하게 돌아섰다.


그 후로 우린 만날 때 마다 집안 이야기가 나오면 다투기 시작했다. 기억으로 셈 해 봐도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치러야 하는 말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편하지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성급하다는 그녀. 이해는 하지만, 30대 중후반이면 그녀와 나 모두 이른 나이가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서는 것 자체가 좋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고. 그녀의 미소가 사랑스럽게 느껴졌으며, 그녀의 향기는 내게 행복을 만드는 에너지다. 처음배우는 사랑. 이런 게 사랑이구나. 아마도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녀에게 고백해야겠다. 다만, 고백하기 전 내 주변의 가족을 먼저 만나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고 싶다. 물론 경험도 없고, 미숙했으며, 경황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도 살짝 당혹스럽다. 그녀는 집안 이야기를 꺼내면 화제를 돌리거나 자신의 집안 이야기는 피했다. 과감하게 그녀에게 고백하자.

그래 다투는 와중에 그녀도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알지만’ 이라고 했다. 그 순간엔 내 심장은 눈치 없이 전율했고, 화를 내는 그녀 앞에서 내 표정은 흠칫 미소를 뗬는지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본 그녀도 살짝 멈추었고 웃었으니까.


그 때다 싶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 이젠 말하고 싶어. 함께 하자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돌아온 그녀는 대답은 단호했다.


-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한지 몰라? 현실이자나. 난 아직도 펀딩 수익률에 신경 써야 하는 이 증권사에서 수수료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윤호씨는 이런 건물 아르바이트생으로 살고 있잖아. 여기서 더 나가는 건 무리야. 우리 깊이 있게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냐?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 뭐? 뭐라고?


끝내다니. 이 표현을 들으니 문득 또 다시 명동 골목에서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두 번째 싸움인가? 아니 헤어짐이라 했던가? 다시 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또 다시 그녀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헤어질 순 없다. 어떻게 다시 만난 사이인가. 무엇보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재회한 인연 아니던가. 이 인연을 이런 이유로 무너뜨려야 한다면 도대체 그럼 어떤 게 사랑이고, 무엇이 인연이란 말인가. 안 된다. 이번엔 그녀를 다그쳐서라도 잡아야 한다. 헤쳐 나가야 한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와 나의 사랑에 있어 이런 미숙한 설명만으로 확인하려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현실인 것을. 그녀와 미래를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집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보기에 내 신세가 미래를 함께 하기엔 한낱 추리닝 차림의 아저씨 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 싶었다.


퇴근길의 그녀는 피곤해보였다. 한 참을 힘들어하며 돌아서던 그녀를 막아섰다. 궁지에 몰리면 모서리를 찾는 나를, 이런 내 성격의 문제점까지 잘 아는 그녀. 내가 단호하게 보였는지 날 무시하거나 모로 세우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방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이야길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어떻게 지내왔으며, 어떤 투자를 이어나갔고, 누구를 만나 어떤 조언을 들으며 이렇게 성장해왔는지. 어떻게 내 공간을 만들어왔는지.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차근히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피곤한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채근하지 않고 더 자세히 차분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그녀의 태도는 조금씩 온화해졌다. 피곤해하던 그녀는 무엇보다 코앤증권 이후 JH를 만나 이루었던 모멘텀에선 놀라며 격하게 돌변했다.


- 혹시 석종훈씨?

- 어 알고 있던 사람이야?

-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자나. 개미군단 대리인. 그 중에서도 큰 개미. 그 사람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고? 정말이야? 그 사람이 윤호씨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어쩌면 그녀가 종사하는 업도 투자 쪽이니 당연히 이름이 알려진 정도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JH는 큰 개미 일 뿐만 아니라, 최근엔 몇 개의 회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투자사에서도 모시지 못해 안달하는 대상이라며. 소연씨 표정엔 화색이, 내가 그리도 사랑하는 눈망울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이 건물을 만들게 된 모든 과정을. 그녀의 표정이 또 변했다. 한 번 놀란 표정이 아니라 안도한 듯 한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왜 안도하는 것인지 안다. 내가 순진한 것인지 날 순수하게 바라봐 줄 것 같았던 그녀에게서 느꼈다.


그녀에게서 좀 더 바랜 회색빛의 도시 냄새가 났다.


- 너무 성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것 알아. 고민해보고 우리 미래도 함께 할 수 있을지 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눠보자고 말하고 싶어. 난 지금도 성실히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살아왔어. 이젠 소연씨와 그 무엇을 더 만들고 함께 나누고 즐겁게 삶을 여행하는 관계가 되길 바래.

- 알았어. 번듯한 직장을 갖는 윤호씨를 바랬는데 듣고 보니 이상해. 생각해볼게. 피곤할 테니 내일 더 이야기 하자.


그녀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할 수 없었다. 첫 이별 때에도 무심히 던졌던 그 ‘재.미.없.다’는 표현이 내겐 길게 상처로 남았었다. 고양이 습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 공부해야 이해했을 정도 였으니까. 이번에도 다르진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다음날 벌어졌다. 다음날 벌어진 그녀의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할머니가 이야기한 세 번의 이별이 현실이 될 수 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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