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빌딩의 당신
캣타워를 운영하고 1년이 된 시점에서야 집들이란 걸 했다. 집들이. 보통은 짝을 이룬 새 삶의 시작에 축복을 받는 다는 이 행사. 어느 때부턴가 부동산 보유의 재력을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는 행사로 퇴색했지만.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음주가 곁들여 져야 하는 행사. 서로 축하한다는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 이런 방식만 있는 건 아닐 진데. 모두들 그러라했다. JH가 권유했다. 부모님을 모셔서 정돈된 모습을 한 번 보여 드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도는 자신이 보고 싶어서 였으리라. 하지만 외톨이처럼 살아가는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현실을 기억하라는 듯 집들이를 강권했다.
휴일 오후 출입이 가장 적은 시간대를 골랐다. 건물을 본 아버지는 외관의 벽화처럼 생긴 고양이 그림을 의아해 했고, 어머니는 호기심어린 눈빛이 가득했다. 옆에선 JH는 의외의 말로 둘러댔다.
- 안녕하세요. 윤호의 친구 종훈 입니다. 윤호의 파이낸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 저 그림은 건물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제안했고요.
왜 그렇게 설명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의구심을 일거에 없애는 효과로는 충분했다. 잠자코 있는 아들의 태도에 미심적다는 눈치는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JH의 순발력에 한 동안 고양이 그림만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는 에둘러 표현하셨다.
- 요즘 세대들에게 잘 맞겠네, 맞아. 건물도 감각이 있어야 해.
건물 임차인들 눈에 띄는 건 불편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때부터 빠르게 걸었다. 건물 입구를 천천히 살피시려는 어머니께 얼른 타시라며 손짓하고 6층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꽤 넓은 6층 실내 공간과 건물 뒤쪽으로 난 큰 거실 창을 바라보고 앉았다. 대충 시킨 음식은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가져오신 음식이 자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 보시는 것처럼 연면적/건폐율 모두 견고한 건물입니다. 이 동네에선 쉽지 않지만 임대수익률도 9~17%까지 기록할 정도로 꽤 좋은 편이고, 몇 년 뒤의 환금성 생각한다면 투자대비 매매 수익률 25% 정도 예상합니다.
JH의 설명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놀라신듯 했다. 어느새 나는 어린 자식으로부터 성공한 건물주였다. 부모님은 안도 보다 놀라움 그 상태. 당신들의 경제적 개념보다 더 빠르게 급성장한 내 모습을 무척이나 놀라워하셨다. 박수까지 치시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손사래로 말리실 정도였으니까.
식사 후 건물을 돌아보고 싶다는 아버지. 좋다며 나서자는 어머니. 두 분을 막아섰다. 임차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며 말렸다. 마뜩찮은 표정이셨지만, 임대차 관리 관계나 아르바이트생처럼 살아간다는 설명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자세히 했다가는 분명 대리인을 세우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길 하실 테니. 조용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모시고 와서 만족해하며, 안심하고 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오늘의 목표니까. 당신의 아들이 크게 문제가 있어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안온한 상황이라는 점. 이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오롯이 자신의 삶을 가꾸고, 성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드리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나왔다.
- 아버지가 오늘 같은 날 할 이야기는 아닌데 말이지. 흠.
- 여보. 왜 그래요. 잘 살고 있는데.
- 잘 살고 있는데 알 건 알아야지.
- 아서요.
- 무슨 말씀이신데요?
두 분 모두 JH를 바라보셨다. 눈치 빠른 JH는 잠시 공용공간에 시설을 볼 일이 있다고 일어섰다. 꼭 하셔야 할 말씀인지, 어색하게 일어나는 JH를 두 분 모두 말리지 않았다. JH가 자리를 피하고 셋만 남은 거실.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단다. 안색은 이상이 없어보였는데 지난달 판정 받으셨다. 몰랐다. 생각해보니 그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이 건물에 들어설 때에도 내 입장만 고려하고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지 못했다. 다시 자세히 뵈니 어머니 안색이 달리 보였다. 어두운 피안은 눈 밑과 턱 선을 타고 목까지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갑상선 암과 협심증이 함께 왔고, 지난달 암조직을 걷어 냈고 경과를 살펴봐야 한단다. 어머니 블라우스 끝 단추까지 채우고 수술의 자욱을 감추셨다. 슬프다기보다 당혹스러웠다. 어머니는 나를 유일한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셨지만, 난 그저 무심히 내 앞길만 바라보고 왔다. 조용히 고개가 떨구어 졌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걱정할 수준 아니야. 경과는 좋아지고 있어. 걱정마라.
아들에게 안심시키려 하셨지만, 흔들리는 눈망울로 어머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손을 잡으려 조용히 다가가 앉았다. 괜찮다며 웃으셨다. 이제 더 나아질 일만 있으니 괜찮다며.
- 그래서 말인데. 우린 네가 이제는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 네? 가정이요?
하실 말씀 이란 건 이것 이었다.
- 그때 목표가 너의 공간이라고 했었니? 이미 너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아니니. 이제 함께 잘 지켜나갈 사람을 만나야지. 안 그래?
- 네. 어머니. 아···네.
무슨 생각에선지 어머니 말씀에 짧게 답했다. 곁에 아무도 없고, 떠오르는 이도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상황에 답할 수밖에 없었다. 급작스레 알게 된 상황.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있는데 약속하라신다. 그것도 올해 안에. 알겠다고만 말씀 드리니 바로 일어서셨다. 돌아가 좀 쉬시고 싶다고. 일어서시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JH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수익률 좋은 상태이니 이제 홍보를 좀 할 생각입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잘 쉬시고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고했다며 다음에 보자는 내게 JH는 쉴 새 없이 업무 이야기를 했다. 귀에 들어오는 JH의 말이 귓가에서만 맴돌았다. 기억나지 않을 듯 했다. 모든 일과를 마친 밤. 나는 오늘의 집들이가 무슨 의미를 만든 건지 어리둥절하면서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버지 차에 오르시던 어머니는 너에 대한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셨다. 다짐을 받으시려는 듯 했다. 마음속에서 외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고. 어머니 건강이 더 걱정이라고. 하지만 이내 웃으셨다. 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무언가 준비 된 듯 한 흡족한 표정의 어머니. 더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 사람을 사귀어 본 게 언제였나. 그런 시도를 하거나 관심을 가졌던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어찌해야 하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보니 어렴풋이 생각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 였구나. ‘단답형’이라 불리며 고되게 살던 내게 위안이 되어 주었던 그녀. 토악질 짙었던 밤을 잊으라 해 주었던 그녀. 소연씨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비록 내가 고양이 같다는 이상한 평가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그녀. 재미없다며.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을 그녀가 당시엔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 기억 속에는 그저 고마운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짝사랑 이었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첫사랑. 소연씨였다. 얼굴을 기억해보려 했다. 전체적인 이미지와 얼굴을 떠올려본다. 아쉽다. 더 잘 해 볼 것을. 난감하다. 그녀의 얼굴이 자세히 떠오르지 않는다.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지면 뭐하나. 매력적 이성을 만나도 그것이 매력인지, 중요한 기억에 담아야 할 자세도 잊고 사는 나 같은 놈에게.
그때였다. 불현듯. 그녀의 얼굴에서 이것 하나 만은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명확한 기억의 이유도. 오늘 뵈었을 때 어머니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 하셨다. 어머니의 미소도 오랜만이어서 더 좋았다. 아들을 사랑하는 미소이고 그 미소는 어머니의 눈매만으로도 충만했다. 그래서 였다. 소연의 눈망울의 느낌은 어머니의 미소와 닮았다. 그제야 기억에 떠올랐다. 그녀의 눈매가. 허겁지겁 탕비실로 숨어든 나를 보고 웃어주던 그녀의 그 눈망울과 눈매를. 어머니의 그것을 닮은 그녀의 눈망울을. 밤사이 생각은 깊어지고, 소연의 눈망울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마음속에 일과 중 이성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목표를 하나 더 세웠다. 목표는 달성할 수 있는 것을 세워왔다. 지금까지도. 이번에도 해내리라. 어머니와 나를 위해서. 아니 진정한 ‘사랑’이란 걸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래 찾아보자. 만나보자. 가급적 어머니의 눈망울을 닮은, 따듯하게 날 바라봐주는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자. 함께 미래를 그려갈 사람을 만나보자.
- (헌데 어떻게)
의지는 충만하지만 현실은 비루하군. 소위 말하는 놀아본 사람이나 안다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관찰은 해도 관여는 해본 적이 없구나. 암담하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이 있다. 급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인연은 오로지 준비를 잘 하고 있으면 오게 되어 있다. 난 관여는 못해도 관심은 깊고 또 길다. 이번엔 그 잘하는 집중을 좀 더 살려서 표현이란 걸 해봐야지. 물러서지 말아야지. 누군가 내게 다가와 준다면 나도 물러서지 않고 함께 서서 이야기 해봐야지. 생활 반경이나 환경도 고려해야겠지. 환경. 그래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봐야지. ‘가까운 곳에서부터. 그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때였다. 그 눈망울이 그 눈망울이었다.
어디서 분명 보았다. 한 순간에 느꼈었다. 그래. 작년 가을이었다. 평상 위. 그녀. 차.도.녀. 그녀의 눈에서 소연의 눈을, 아니 어머니의 눈을 본 것 이었다. 이성으로서가 아닌 임차인으로서만 바라본 내게 그나마 남겨진 기억. 고작 홀로 사는 삶에 집중해 온 게 다지만 한 번 보았던 그녀의 눈에서 였다. 그날 밤. 평상 위 그녀에게서 느낀 걸, 다시 만나면 알 수 있으려나.
부모님이 다녀가신 후 똑같은 꿈을 몇 일째 꾸었다. 그저 끌리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였다. 그렇다. 소연. 내 처음이자 그랬던 그녀에 대한 표현. 좋았었다. 그 눈망울과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 아니면 그 눈망울을 닮은 여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여인을 만난다면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또 생각이 치밀었다. 그녀다. 그 눈망울은 그녀였다. 501호의 그녀.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끝까지 이야길 들어봐야겠다. 501호 차도녀. 사람일은 모른다더니 이렇게 다시 관심을 가져봐야 할까. 그래도 차디찬 그녀. 지금까지 관심은 아니더라도 관찰한 모습만 정리해볼까. 항상 목표를 두고 차분히 정리 했듯이, 임대차 계약서를 시작으로 그녀에 대해 정리한 명부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은 항상 동일하다. 퇴근시간은 1년 새 많이 바뀌었다. 어떤 날은 오후에, 어떤 날은 새벽. 그 정도도 좀 심했다. 휴일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그 짧은 시간마저 도도하게 느껴진다. 주로 휴일 아침 1층 공용공간에 등장하는 그녀는 매번 비슷한 세탁을 처리하고 책을 들어 탁자에 앉아 기다린다. 귀에 꼽은 이어폰과 음악이 지나가는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인 냥. 나는 철저히 외면당한다. 직업은 회사원. 170cm의 키에 항상 몸매가 드러나는 옷맵시, 그리고 자극적인 향수. 전형적인 도도한 외모. 이런 특징을 증명하듯, 날 외면하는 시선은 도도한 자아를 극렬히 투영한다. 말투는 직설적이 지만 무례하진 않다. 물론 내겐 무례했던 적은 있다. 직설적인 그녀.
그러던 어느 날 휴일. 공용공간의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 세탁세제 부탁하셨다면서요.
눈앞에 책을 고정하고 음악을 듣던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또 나를 외면한다.
- 빨래가 많은가 봐요?
이번엔 힘주어 크게 말했다. 이번에도 외면하면 돌아서리란 다짐으로. 그제야 이어 셋을 빼며 그녀는 내게 시선을 맞춰주었다.
- (그래! 이 눈망울이다. 기다렸던 이 눈망울.)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 살짝 흔들리는 것 같지만 가장자리의 검은색이 더 짙어 보이는 이 눈망울.
- 섬유린스 부탁하셨다면서요. 필요하세요?
- 네. 구비해 주시면 좋죠. 헌데 한참이 지나서야··· 이제야 말을 거시네.
- 네?
- 그날도 단 번에 도망가시길래.
- 아 그날은 불편해 보이셔서···
뒷말을 흐리는 내게, 기억하는 표정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확신에 찬 듯 거침없이 물어왔다.
- 너 몇 살이야?
- 서···서른일곱인데요.
- 난 서른 넷. 대충 비슷한 나이니까 말 놔도 되지? 이 건물
- 아르바이트 같던데··· 고작 이런 거 하려고 회사 그만 둔거야?
- (아니 이···게 무슨. 내가 기대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 윤호씨 아냐? 맞지? 나 기억 안나?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