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빌딩의 당신
201호
관리네임 ‘애증의 빈방’
공실 룸이다. 의도한 바는 없다. 1층의 필로티와 공용 오피스 공간을 제외하면 내겐 애증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그저 때가 되면 채워지겠지 싶다.
사실 첫 번째 입주자는 나였다. 공용공간에서 가까운 곳,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했었다. 불과 1개월을 견디지 못했다. 가장 편한 공간으로 생각했고, 건물 관리에 있어서도 적합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적합’ 이라 함은 나뿐만 아니라 임차인 모두에게도 적용되었다. 내가 관리 아르바이트 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날 더 쉽게 생각했다. 나를 쉽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메시지나 메일도 없이. 사전 일언반구 연락도 없이. 거침없이 요구했다.
옆집이 마음에 안 든다. 전구가 왜 노란색이냐. 엘리베이터에 떼가 탔다. 심지어 1층 공용공간을 집들이 공간으로 쓰겠다. 입주자들의 폭풍 같은 요구뿐만 아니라 개인 송사 토로 대상으로 여겼다. 오늘 회사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힘든데 엘리베이터의 진동이 크다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를 갖는 것인가. 집나갔던 강아지를 다시 찾는다면 들여오겠다는 반려애 강조는 굳이 왜.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남은 문제로 월세를 한 달 미루겠다는 통보까지. 201호 입주자가 아니라, 건물 들어서면 들르는 경비처럼 여기고 드나드는 입주자들의 인식 변화가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서 건물 입주 시작 한 달 만에 황 여사와 김 대표의 조언을 기억해, 접근이 어려운 6층 공간을 재구성해서 도망쳤다.
두 번째 입주자는 30대 남자였다.
계약서에 특이점도 없었다. 그냥 평범해보였다. 평범한 것이 어렵고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배우게 된 계기. 입주 2개월 차였나. 갑작스럽게 202호 미장원 친구의 메시지. 무슨 가스냄새가 나지 않냐 며. 그럴 일이 없으리라 생각해서 우선 무시했다. 누군가 잠시 음식을 하려다 난 거겠지 라며.
이윽고 들리는 뜻밖의 화재 경보. 이쯤 되니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윽고 2층 공간에 스프링클러가 돌기 시작하더니만, 모든 공간엔 굵은 소나기처럼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스터키와 소방호수를 연결한 수전을 들고 달려가 문을 열었다. 코를 찌르는 듯 한 시큼한 냄새가 방안으로부터 퍼져 나왔다. 이 난리 통에 방안의 30대 남자는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 방 중앙엔 큰 등산용 버너 위 번개탄.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소리를 질러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여 가슴에 손을 올려보니 작은 움직임. 다행히 미력하게나마 숨은 쉬고 있었다.
놀란 가슴 쓸어내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202호 미장원 친구는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유스 박은 소리를 지르며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갔다. 뛰어 나가는 것 까진 좋았는데 방안을 정확히 보지 않았던 모양. 불이난 줄 알고 뛰어나가며 소화전 위 방화 화재신고 버튼을 힘 있게 눌러버리는 바람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벌어졌다. 1층 필로티 구조의 중간 차단막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는 영화처럼 잽싸게 차단막 밑으로 슬라이딩 했다. 데굴 구르며 넘어가더니 벌떡 일어서서는 얇은 미소까지 선보이는 여유는 어디서 발현된 걸까?
바로 119에 신고했다. 다른 신고와 겹쳐서인지 구조대는 10분 뒤에서야 도착. 병원으로 옮겨진 뒤 그는 음압병동에 입원했다. 일주일이나 뒤에야 돌아온 그에게 따듯한 환대는 없었다. 그를 맞이해 준 건 냉정한 종이 한 장. 문틈으로 넣어 신발장 앞에 떨어진 임대 계약 해지 통지서. 그는 하루 뒤 조용히 짐을 빼고 사라졌다. 그는 입주자 중 내가 유일하게 경험한 공포의 자살시도자 였다. 어디에 가서도 이런 공간을, 슬픈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단호하게 대응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적법한 캣타워 룰에 따라서.
세 번째 입주자는 60대 중반 할머니.
남다른 외모. 입주 계약 시 몸에 치렁치렁 걸쳐진 각종 장신구로 유별난 분이었다. 금과 은으로 충분히 점철되어 있는 빛나는 자태? 때문에 임대료도 안정적으로 납부해 줄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첫마디부터 신뢰감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 내가 이런 곳에 입주해서 살 사람은 아닌데. 잠시 이사 계약이 꼬여서 왔어요.
두 달만 기거하겠다며 단기 계약했던 기세와 달리 3개월 차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사 갈 기색은 없고, 오히려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남의 힘을 빌려 사는 행적을 보이고, 203호 할머니에 대해 이상한 소문까지 퍼뜨렸다. 타인을 이용하는 이기적 행위는 나를 포함한 사람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도가 심해지자 할머니 주변에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 둘 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할머니의 각종 요구사항은 단문 메시지로 응대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하루에도 건장한 어깨남 여럿이 201호에 드나드는 기이한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시켜먹는 중국음식 배달원에게 팁을 줘서 보내는 날도 많아졌단다. 1층에서 만난 배달원에게 201호 안의 모습을 물었다. 방 안은 담배냄새로 자욱하고 거실에 펼쳐진 식탁 위에 화투장이 오가더란다. 분명한 경고가 필요했지만 캣타워 룰의 안녕과 질서 조항 외엔 그다지 해지의 사유가 되지 못해 고민만 하고 있었다.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탓일까. 결국 일이 벌어졌다. 아마도 임대사업자에겐 가장 큰 사고가 아닌가 싶다. 문은 잠긴 채. 밀린 월세 독촉에도 답이 없다. 마음대로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상태다. CCTV상의 공용공간을 지나간 기록도 없다. 이 문제의 할머니가 사라졌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 넘어 어느새 한 달. 그렇게 무단 거주 상태가 돼 버렸다. 오히려 이게 더 초조하고 피를 말렸다. 법적으로 임대한 공간엔 주인이라도 마음대로 들어가 볼 수 없다. 계약서상의 연락처만이 유효한 점거를 풀 수 있는 해결책 이었지만 연락을 도통 받지 않으니. 어떤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고, 음성통화 신호에도 무응답. 부동산 중개사에게 부탁해 별도의 번호로 연락하면 받다가도, 캣타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6개월간의 치열한 명도 소송에 들어갔다.
소유권에 대한 지루한 명도소송. 이 소송에서 그 어떠한 점거의 권한이 없는 계약의 해지상태. 법률적 여신 기한은 지났으며, 물적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그 뒤로도. 지리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런 조처 없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답답한 마음조차 잊혀 갈 즈음.
법원의 허가가 떨어졌고, 드디어 변호사와 경찰 입회하에, 201호의 문을 열어 이전처리 가능한 날이 찾아왔다. 비주거 사실 확인이 되고나서야 201호는 온전한 공실로서의 상태를 다시 만들어냈다. 결국, 6개월간의 201호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이렇게, 임대사업에 있어 가장 치명적 입주자들을 거치며 이 201호실은 애증의 공간으로 전락했고, 아쉽게도 여전히 공실 상태다.
그리고 봄
그렇게 201호를 제외한 입주자들의 공간은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 동안은 따듯한 난방을 잘 관리해주면, 입주자들은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다. 건물 내외로 움직임도 둔화되었다.
년여가 가까이 지나고. 다시 따듯한 봄이 되면서 새 임차인이 생기거나 별다른 움직임이 있겠거니 했지만, 다행히 큰 변화는 없었다. 201호엔 봄이 다 되어서야 20대 후반 늦깎이 대학생 하나가 입주했다. 공부벌레마냥 책만 들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월세는 꼬박꼬박 부모로 부터 입금되었다. 이런 입주자들이 오히려 크게 요구사항도 없는 터.
공실 없는 건물이 된 만큼 잘 가꾸고 싶었다. 해서 입주자들 사이에서의 분위기도 좋게 개선시켰다. 1층공용 생활공간에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들여놓았다. 입주자에겐 동네 빨래방보다 반값에 사용료를 받되, 모인 사용료는 다시 입주자들의 생활공간에 활용했다. 그리고 그 내역도 그대로 공유했다. 공용공간 비치용 독서를 위한 책들을 구매했고, 택배 배달원들을 위한 음료와 냉장고를 비치했다. 그래서인지 1층의 공용 오피스공간은 어느새 입주자들의 살림살이와 잠시 거쳐 가는 회의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입주자들 사이에 오가며 인사하면서 안면이 서거나, 이 동네 생활시설을 공유하는 이야기를 소재삼아 커피 한잔을 나누는 훈훈한 모습이 종종 연출되었다. 의도했던 바대로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좋았다. 이를 본 주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장기 환금성 개선에도 좋은 모습이라며, 1년 만에 공실률 0에 가까운 오피스텔로서 가치가 오르고 있다고 했다. 역시나 JH의 컨설팅이 좋았고, 황 여사의 가이드도 좋았다.
새 봄의 어느 날 휴일아침. 공용공간의 각종 집기류를 원위치에 가져다 두고, 청소를 하시던 203호 할머니 눈 앞 바닥으로 티셔츠 하나가 떨어졌다. 바구니에 빨래 바구니를 나왔던 501호 차도녀가 다시 집어 들었다.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많은 빨랫감이었다.
- 아니 꽤 많네.
- 아 안녕하세요. 네. 일주일치 몰아서 하다 보니 그런가봐요
- 묵혀두고 오래 두면 옷감만 상해. 그때그때 세탁해야 오래입어.
- 네? 아 네. 여기 사시는 분 아니셨어요?
- 응. 우리 구면이지? 오가며 자주 본거 같아. 나 2층 살어.
- 아가씨는?
- 저는 5층이여. 회사일이 좀 바빠져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렇네요.
- 바쁘면 나한테 맡기던가.
- 아 아니에요. 제가 해야죠. 제 빨래인데.
- 그래도 그렇지 빨래가 너무 많네.
- 아 사실 조금씩 자주 하는 건 집에서 하고요. 이렇게 많이 모였을 때에만 여기서 해요.
- 그렇군. 내가 말이야 할 일 없이 지내다보니 말이우.···응? ···흠.···
말 끝나기도 전에 세탁기 앞으로 가버리는 차도녀에게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못했다. 무의미한 대답이 돌아올게 뻔해 보였다. 모처럼 휴일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집에서나 자주 입는 칠부 나팔바지 편한 차림. 한 움큼 빨랫감을 집어 세탁기에 넣고, 액체세제를 부어넣고. 다시 허리를 구부려 빨랫감을 확인하고 세탁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불현듯 뭔가 빠진듯했다. 차도녀는 결국 할머니께 물었다.
- 할머니 여기 섬유린스 같은 건 없어요?
- 섬유린스? 그런 건 없어요. 여기 청년에게 부탁해보면 되지 싶은데.
- 청년이요?
- 아 이 건물 옥탑방에 사는 거 같던데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부탁하면 된다고.
- 아 알바생 말씀이시군요. 그런 것도 부탁하면 줘요?
- 응 웬만하면 해주더라고. 한 번 부탁 해보슈.
정확하진 않지만 지난 가을엔가 만났던 그 청년. 아니 바보씨. 눈썰미도 없고, 말주변도 없으며, 대화법도 서툰 그 친구. 그 바보씨는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 생각한다. 1년 가까이 되도록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뭐가 아쉽나. 뭔가 설명할 타이밍도 지난 듯 했고, 어떻게 설명할지 귀찮기만 하니 그냥 이즈음에서 그만두자 싶었다. 필요하면 섬유린스 정도야 5층에서 가지고 내려와서 사용하면 되니까.
세탁이 시작되고 드럼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남아있는 시간을 나타낸다. 1시간 10분. 냉장고를 열어보니 캔 커피가 보여 하나 들고는 옆 소파에 앉았다. 블랙 아메리카노는 따듯해야 제 맛일 진데 너무 차다. 한 모금 삼키며 또 더듬어 생각해 본다. 이 지겨운 생활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사는 이유. 지금까지 지내온 방식. 나누고 소유하고 버렸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을 산다. 과거는 기억해봐야 과거다. 미래는 있는 자들, 기억하는 자들, 좀 더 번듯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지내온 이들을 위한 것 아닐까. 지금의 상황 모든 것을. 부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 것이 아닌 내 생활이 지금 안온하다 느껴도 되는 걸까. 물마루에서 쓸려 내려오는 불안감이 계속 차도녀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잠시 잊고 싶었다.
이 선배는 더러운 펀드매니저 업계에선 대선배였다. 이 선배에게서 멘토링을 받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선배는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배경이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부드럽지만 명확하고, 간결하지만 온정이 있었다. 그래서 더 따르고 싶었다. 그녀의 사람 조종 능력은 대단했다. 잘 신고 다니는 구두였는데, 그 중에서도 하이힐을 즐겨 신었다. 하이힐의 색상도 다양했는데 볼 때 마다 매번 색이 달라졌다. 같은 디자인 이었던 것 같지만 흘깃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디자인이었다. 함께 간 백화점에서 보았다. 구두를 하나 사러 가서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 보통은 구두 자체를 살펴보기 바쁠 텐데 선배는 좀 달랐다. 구두를 판매하려는 점원부터 공략했다. 점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피곤해 보인다고 말을 건 다음, 점원의 사생활 이야기까지 유도하며 들어주었다. 그리곤 5분 뒤면 어느새 이름, 근무하는 날, 사는 곳, 다른 일 중에 하고자 하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원하는 구두를 원 없이 신어보면서도 점원에게 끝까지 환대를 받고서 마지막에 하나를 매우 큰 할인 폭으로 얻어낸다.
그렇다. 선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살짝 물었고, 듣고 나서 긴 호흡으로 공감했다. 이 더럽고 남루한 남자들만의 정글 같은 세계에서 공감이란 기술이 이 선배의 사람을 다루는 핵심이었다. 그런 선배가 딱 한 번의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이후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잠적 생활을 한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이 선배와의 지난 기억에 입 꼬리 사이로 핏 소리를 냈다. 안되겠다 이 선배와 이야기를 더 나누어 봐야겠다.
- 할머니. 저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갔다가 다시 올게요. 혹시 세탁기 다 돌아가면 연락 부탁드려도 돼요?
- 글쎄. 내가 그 때까지 있으면 연락 주리다. 너무 기대는 말고 아가씨.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