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빌딩의 당신
203호
관리네임 ‘할.머.니’
계약 때, 입주 시에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했다. 너무 조용한 분이라 입주자들 사이에선 같은 입주자이신지 모를 정도. 나 역시 오가며 간혹 뵈었을 때 인사드린 게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
홀로 집을 나오셨단다. 무심히 걷다 들르신 곳이 안양천 변이었고, 천변을 걷다 눈에 띈 건물의 그림. 고양이 그림을 보시곤 잠시 멈추어 서셨다했다. 캣타워에서 동물을 돌보는 일을 보려는 마음으로 방문 하셨단다. 중개사는 할머니께 설명했다. 그런 곳이 아니고 월임대료 매우 싸게 시작할 수 있는 숙소이자, 혼자 사는 사람만 입주 가능한 곳 이라고. 헌데 그 즉시 계약. 입주 조건이나 실제 물건을 오셔서 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으셨다나. 의아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혼자이신데.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다시 살폈다. 가족 관계는 알 수 없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라는 외로운 사실 외엔 알 수 없었다. 주로 오전에 한 번 동네를 소일삼아 다녀오시는 것으로 일과는 충분하다 하셨다. 그리곤 주로 집에 계신 듯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층에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께서 입주하게 되었다는 점. 두 분이 연배도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되시리라 믿었다.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오히려 반대 성향의 201호 할머니와는 더 잘 맞으시리라 생각했다. 결과는 전혀 아니었지만.
201호 할머니는 정 반대의 성향이셨다. 항상 TV를 크게 틀어 놓으셔서 202호 입주자로부터 소음신고도 한 번 있었고. 동네를 다니시며 각종 송사를 돌리셨다. 그 중에서도 203호 할머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 동생뻘인데, 불쌍하다’는 주제로 쏟아 내시는 게 문제가 되었다. 오피스텔 근처 두 곳의 중개사에게 커피를 대접 받으러 가신다는 목적으로 자주 방문해서는, 203호 할머니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셨다. 이야기의 시작은 불쌍하다 이지만, 시간이 가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중개사들이 듣기에 버겁다 싶을 정도. 심각하게는 위로가 아닌 비아냥까지.
심지어 203호가 자신의 동생인데 돈이 많다며, 그 입주공간을 담보로 자신과 거래를 하자는 비현실적 이야기로 변질하기 시작. 당연히 건물주가 있고, 엄연히 초기 입주비용에 있어서 보증금이 없다는 특이한 조건의 캣타워 룰을 잘 알고 있는 중개사들은 단번에 거짓말임을 알았다. 그리고 201호 할머니가 이 같은 행태를 보이시는 걸 주의하기 시작했다. 201호 할머니의 203호 할머니에 대한 악의적 거론이 거듭되었고 결국, 적개심 수준까지 발전했다. 오죽하면 중개사들에게 건물주에게 이야기 좀 하라 엄포를 놓으셨단다. 결국 201호 할머니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중개사들에게 201호 할머니가 가시면 외부 물건을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거나 하며 자리를 비워버리시라 조언했다.
이 즈음이 되니 중개사들은 203호 할머니의 자세한 속사정을 이야기 해주었다. 사연은 이랬다. 40여년 가까이 결혼생활하며 사남매를 키우셨고, 가족 뒷바라지로 인생을 사셨단다. 남편을 따라 봇짐 하나만을 가지고 이사해 온 뒤 연고도, 지인도 없는 타향에서 살아오신 인생. 사남매 출가시키기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었고. 수입은 모두 남편이 관리했으며, 생활비만 겨우 받아 생활. 자식들 뒷바라지만 생각하며 살아오신 듯 했다.
할아버지의 가부장 성향은 나이가 들수록 사그라지지 않았고, 할머니는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말을 섞는 건 오로지 막내 딸 뿐이었는데, 막내딸마저 전근 가는 제 남편과 해외로 떠났다. 이때가 정말 홀로 남게 된 것. 그리고 그때부터 이혼을 준비해야겠다 결심하셨다. 조용히 동네 파출부, 가사, 음식점 주방 보조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하셨는데, 그 와중에 남편마저 은퇴 후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전락.
삼남매 중 해외로 간 막내 외의 두 아들은 출가 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지원은커녕 자신들의 사정만 채우려는 욕심으로 그득했다나. 이때부터 60을 넘겨 은퇴한 남편은 시시때때로 해결되지 않는 자신의 욕구를 술로 풀었고, 갖은 잔소리와 폭언 심지어는 그간 없던 폭행까지 행사하기 시작. 할머니는 남편의 폭언과 폭행에 기절하신 경험까지 있었고, 결국 편지나 쪽지도 남김없이 조용히 집을 나오신 거라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떠나온 것은 사실 지독한 현실로부터의 회피 아니었을까.
첫 입주 연 계약하실 때, 할머니는 중개소에서 혹시 건물 청소부는 구하지 않는지 물으셨다고 한다. 당연히 나를 들어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걸로 설명 드렸다나. 당시 청소 관리는 별도 회사에게 맡겼었고 할머니께는 이미 일하는 사람이 있음을 설명 드렸다. 할머니의 자세한 사연은 모른 채.
실상은 더 힘겨웠다. 할머니의 외출은 예상했던 운동이나 친구 분들을 만나기 위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가족으로부터 외면 받았다는 사실에 힘겨워 할 겨를도 없으셨다. 매일 아침 나가시는 건 생활을 위해 하루하루 벌어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중개사는 내게 건물 임대인에게 이 사정을 좀 전달해 달라 부탁해왔다. 오랜만의 타인과 식사 자리였는데. 실로 슬픈 점심을 멀게 될 줄은 몰랐다.
단 한 번도 입주자의 사정에 맞추어 캣타워 룰을 바꾼적 없다. 단 한 번 도 입주자의 사정을 감안해 월세나 임대료를 조정해 드린 적 없다.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세상에 홀로선 할머니. 할머니가 무엇을 잘못한게 없다. 할머니는 그저 가족을 위해,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치열하게 살아오셨다.
어쩔 수 없다.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상황. 마음이 약해졌다. 이래선 안 되는데. 내가 세웠던 룰을 내가 어겨야 하는 마음 아픈 상황. 결국, 할머니 입주 후 3개월 시점부터는 할머니의 월세를 면제해 드렸다. 그리고 힘들게 이 일 저 일을 찾으러 다니시는 시간도 꽤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결국, 계약되어 관리를 대행하던 업체 담당자에겐 미안하지만, 업체의 젊은 청년들은 기회가 더 많은 삶이라 생각했다. 양해를 구하고, 관리 대행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할머니께 건물 전체 관리 중 일부(택배우편물 관리, 1층 필로티와 공용 오피스 청소, 그리고 건물 청소)를 맡겼다.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60을 넘기신 할머니께서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으실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한 당신의 내면을 보여주셨다.
전구교체 하나 어찌 부탁드려야 하나 싶었지만, 어느새 오래된 것들은 교체되어 있었다. 린넨과 준비 박스가 쌓인 건물 지하 창고까지 싹 정리되어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관리 대행업체보다 할머니가 두 배의 일을 해내고 계셨다. 월세를 면제한 것 외에 오히려 일 하시는 만큼의 식비와 생활비까지 드리게 되었다. JH나 황 여사가 안다면 큰일 날 일이지만 난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식 된 자들이 한 번 찾아오지도 않는, 황혼의 슬픈 상황을 홀로 방에서 이겨내셔야 하는 할머니를. 그냥 내 할머니로 생각하기로 했다. JH와 황 여사에겐 이야기할 필요조차 못 느낄 정도로, 할머니는 내게 남다른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셨다.
202호
관리네임 ‘미.장.원’
캣타워 룰에 광적으로 흥분했던 친구다. 초인종을 누르자 났던 둔탁한 걸음걸이 소리와는 달랐다. 문을 열자마자 건네어 오는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톤 앤 매너. 머리는 길게 풀어 곱상하게 땋아 내려갔다. 그리고 한 두 가닥은 다시 묶어 올려 마치 뒤에서 보면 리본을 연상케 했다. 처음 캣타워 안내문을 전달하던 날이었다. 안내문을 받아들고 문 안으로 뒤돌아 들어가는 이 친구의 장딴지까지 덥수룩하게 난 털과 근육을 보고서야 여자가 아닌 남자임을 알았다.
항상 옆으로 메는 가죽 가방을 들고 다녔다. 용모는 전형적인 회사원 같았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헤어스타일과 퇴근 시 보이는 손의 검은 자욱은 흡사 미술학도 같았다.
입주 후 두 달 쯤 되었을 때인가. 202호가 왁자지껄 했고, 잠시 201호에 관리차 들렀던 나는 조용히 벽을 타고 들려오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들은 같은 미용실 직원들이었고, 각종 배달 음식이 도착할 때부터는 여느 청춘과 같이 웃음소리가 떠나갈 듯 했다. 대화는 끊임없이 시끄러운 수준까지 발전했고, 이윽고 한 두 명은 목소리가 커지더니 연신 욕이 튀어 나왔다. 다행히 서로에게 향하는 항변은 아닌 듯 했다. 한 명이 욕을 하면 박장대소. 그리고 또 한 명이 욕을 하면 동조가 뒤따랐으니까. 그들은 같은 미용실의 원장과 재미있던 손님들에 대해 한참을 추억하며 웃었다.
- 언제 머리하러 오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찾아와도 되요. 우리 고객님 같은 분들 이야기 잘 들어 드려요.
명함을 건네는 그에게 내 더벅머리는 못참아 줄 수준이었는지.
키도 한 뼘 정도 나보다 높은 시선을 가진 그. 얇게 뜬 눈은 엷은 미소를 내려 보내고 있었다. 여성 같은 느릿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힘 있게 튀어나온 목젖은 살짝 이질감마저 느껴져 아무 대답 없이 시선을 바꾸었다.
명함엔 헤어디자이너 유스 박이라 써져 있었다. 난 그가 박 누구인지, 유스는 또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 (미장원 직원이구나. 매월 출퇴근 하며 돈은 벌겠구나)
가 허락해줄 수 있는 관심의 범주였을 뿐.
월세는 밀리지 않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아오는 손님이 시끄럽고 늦은 새벽에나 돌아가는 것 외엔 문제없었다. 며칠을 함께 지내서 문제를 일으키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치고 특이 했으니까. 조금은 다르고 조금은 예쁜 5층 차도녀와 마주쳤을 때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뒤돌아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특이한 자존감이랄까. 그는 타인의 헤어스타일 말고는 별 관심 없는 미용사였다.
특이한 것은 날 만날 때마다 시선을 놓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관심의 표현이라기 보단,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한낱 알바생의 더벅머리에 한심스러운 마음이었을 뿐이리라. 내 컨셉이고 난 불편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친구 마음에선 가방 안에든 가위가 들썩들썩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